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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Sep 30. 2020

32. 원상복구를 거부한
네덜란드의 부산항, 로테르담

2016년의 마지막, 냥씨와의 겨울여행 (6)

16.12.30 금요일


모코 미술관을 구경하고서 네덜란드의 부산항, 로테르담(Rotterdam) 행 기차를 타러 중앙역으로 달렸다. 몇 번이나 왔다갔다한 결과, 암스테르담 중앙역이 이제 서울역처럼 느껴졌다. 로테르담은 건축의 도시로 유명하다. 세계대전으로 도시 전체가 없어지다시피 했을 때, 로테르담은 '복구'와 '재건'이 아닌 '창조'를 도시 계획의 철학으로 삼았다. 그 결과, 건축과 영감의 도시로 네덜란드의 부산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축가에 관한 환상이 있다. 건축가는 흔히들 말하는 문과와 이과의 감성을 적절히 섞은 예술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건축가는 머릿속으로 그린 것을 숫자를 통해 몇 번이고 점검하고선 세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보란 듯이 구현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은 건축가의 예술 작품은 공간감이란 체험/느낌을 사람들 사이에 불러일으키고서 동네와 도시, 한 지역의 역사를 써 내려간다. 건축가와 건축에 관한 두루뭉술한 환상으로 로테르담에 관한 환상도 조금씩 키워가고 있던 참이었다. 냥씨와 나는 이제 암스테르담이 아닌 로테르담에 와 있었다.


네덜란드에서의 마지막 여행지인 만큼 쉼을 테마로 냥씨와 나는 도시를 걸어볼 산책 생각만 가지고서 기차에서 내렸다. 로테르담에서의 1박은 숙소부터 특별했다. 일명 '연필과 연필깎이'라는 별명이 붙은 큐브 모양의 호스텔(stayokay hostel)에 방을 예약해 두었다. 모서리로 간신히 서 있는 정육면체의 호스텔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보면 나 또한 기울어진 채로 자는 건 아닐까 했지만 숙소는 매우 편했다. 오히려 독특한 구조 때문에 탐험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큐브 모양의 호스텔 외관과 (냥씨와 나 말고는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여성 도미토리 내부.



호스텔 바로 앞에는 커다란 마켓이 위치하고 있었다. 말발굽 모양을 하고 있는 그 마켓은 'Markthal(눈치껏, 마켓홀이라는 말 같다)'이라 불리고 있었고, 화려한 식료품 조명들을 건물 내부에 조명을 쏘아 대고 있었다. 감자튀김과 홍합요리, 그리고 여행 중 면역력을 챙기기 위한 귤 2kg까지, 로테르담 여행의 장보기와 식사를 해결해 준 고마운 마켓이다. 


시장 구경은 여행 중 내가 꼭 빼놓지 않는 부분이다. 생활력 강한 사람들의 모습과 활기찬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식자재 풍경들이 그렇게나 매력적일 수가 없다. 시장 구경 도중 맛보기로 먹어본 치즈나 올리브 등이 맛있기라도 하면 아,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정말. 



마켓홀의 야경 전경. 밤이 되도록 식료품 조명은 계속 말발굽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마켓홀 내부에서 마주한 '사기템' 하나를 잊을 수가 없다. 각양각색의 토마토들을 파는 가판대였는데, 그곳에서 웬 알약 케이스 혹은 지압 마사지볼 같이 생긴 토마토 케이스를 파는 거다. 일곱 개의 방울토마토를 넣어 다니는 케이스라는데, 1개의 무려 2.50유로나 했다. 가방에 방울토마토를 넣어 다니다가 폭탄처럼 슝 터트린 경험이 있는 그 누군가가 발명(?) 한 거겠지. 그래도 그렇지, 좀 비싸다. 



로테르담 도시를 한 바퀴 크게 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들 몇 가지를 기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입구부터 요란했던) 건축학교 및 도서관의 로비: 편안한 분위기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건축 관련 도서들을 열람할 수 있었다. 의외의 휴게 공간.

길가에 세워진 3D 피카소 상: 어느 각도에서 조각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림이 휙휙 바뀐다. 

이례적으로 나무로 천장을 장식한 대성당: 성당에 들어섰는데 나무 냄새가 확 나서 기분이 묘하게 좋아졌다.

분명 직선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삐뚤빼뚤하던 고층 빌딩: 건축가의 재치가 돋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삐뚤다.


16년도의 마지막이 다가오듯, 냥씨와의 겨울 여행도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17년 1월 1일이 지나면, 곧장 겨울 계절학기를 들으러 파리로 향해야 한다. 오늘 하루, 로테르담에서 푹 쉬고서 내년을 준비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싶다.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세계대전 이후 무조건 원상복귀만이 답인 것처럼 도시를 계획하지 않았던 게 신의 한 수였다. 로테르담이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면, 유럽의 어느 이쁘장한 항구 도시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6년도에 처음 밟아본 로테르담은 고요한 가운데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군데군데 들어서 있는 '여유롭고도 장난기가 많은' 도시였다. 이런 도시는 로테르담 밖에 없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최근 들려오는 얘기로는 친환경 도시로도 거듭나고 있다고 하니, 파리 기후변화 협약과 함께 환경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을 선도하고자 하는 유럽연합의 목소리에도 힘을 실어줄 중요한 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다시 한번 로테르담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채소가게 아주머니께서 토마토 케이스를 아직도 팔고 계시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때에도 계속 팔고 계시다면, '아 이건 운명이구나' 하고서 하나 기념으로 사들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계획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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