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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19. 2023

대학생에게도 떡볶이는 필요해

월간 지음지기: 10월 "동네 한 바퀴, 압구정"

“밥은 먹었냐?” 하는 안부에 “응, 떡볶이.” 하고 답했더니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거 먹고 밥이 되냐?” 하는 대꾸는 엄마의 말, “맨날 떡볶이네!” 하는 소리는 아빠의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엄마 아빠는 떡볶이를 간식으로만 여긴다. 하굣길 위 초등학생의 귀가를 막는 길 위의 방해꾼 취급을 한다.


  “순대랑 튀김도 같이 먹었어! 꽤 배부르다고!” 항변하듯 큰 소리 치는 건 나의 말이다. 전공에 이중전공까지, 한 학기 강좌 열 개로 시간표를 가득 채운 대학생의 말이다. 그런데 어째 벌겋고 달달한 떡볶이 소스로 입술을 곱게 바른 모습이 꼭 초등학생 같다. “잘 좀 챙겨 먹어라!” 하는 당부와 함께 아빠는 전화를 먼저 끊는다. 띠리링 하는 통화 종료음이 들리기 무섭게 입술을 삐죽거린다. 반성 대신 한 끼 식사를 손쉽게 해결한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로 한다.


  ‘떡볶이가 뭐 어때서.’



  자타공인 국민 간식 떡볶이에 맛을 들인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그때의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나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것이라면 그 또한 나를 볼 수 없다고 여겼기에, 버스에서 내려 육교를 건너 집으로 걸어가는 내 모습이 아파트 7층 증조 할머니 방 베란다에서 훤히 내려다 보일 거라고는 의심조차 못했다. ‘잘 오고 있나,’ 하면서 나를 몰래 지켜보는 어른들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엄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하곤 했다. “한두번이 아니었어. 육교랑 횡단보도를 잘 건너왔는데 상가 근처만 오면 어디로 싹 숨어 들어가지 뭐니! 꼭 같은 지점에서 모습을 감췄지.” 어른들은 비밀리에 나의 하굣길 관찰 데이터를 쌓았는데, 그 결과 내가 돌연 모습을 감춘 날에는 그렇지 않은 날보다 20~30분 더 늦게 귀가한다는 법칙(?)을 도출해냈다.


  아마도 그 이후, “뭐 하다 왔어?” 하며 취조 아닌 취조를 하던 어른들의 웰컴 인사에 나는 돌연 고해성사 아닌 고해성사를 늘어놓았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에 오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간식 또 먹을 수 있어!” 하는 식탐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 하는 후속 질문을 받자, 양배추도 들어가고 어묵도 들어가 있다면서 떡볶이 한 접시를 신나게 묘사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께서 삶은 계란을 통째로 주셨다고 으스댄 적도 있었다. 단골손님이란 인식이 반장 명찰이라도 되는 것처럼, 뒷짐을 지고 큰소리를 쳤다. 눈을 반짝였고 입맛을 다셨다. 김치를 물에 씻어 먹을 정도로 붉은 양념이라면 으레 겁을 먹곤 했는데 이상하게도 떡볶이는 예외였다. 부실하기 그지없는 나무 꼬치로 이것저것 층층이 찍어 먹는 방식이 꼭 낚시 게임 같았다. 식감도 양념의 강도도 탁월했다. 가래떡은 우물우물 씹는 재미가 가득하다고 생각했고, 달달한 빨간 소스에 푹 절여진 양배추는 질리지 않는 반찬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너무 많이 먹진 말아라. 양치질 꼭 하고!” 떡볶이 찬가에 질세라 엄마가 주의를 주었다. 하교 후 간식 한 상이 차려지는 간이 테이블 앞에 앉으며 생각했다.


  ‘떡볶이가 뭐 어때서!’



  핸드폰 화면을 끄고 나서 각티슈로 손을 뻗는다. 입술을 닦자 벌건 떡볶이 소스가 묻어나온다. 그제서야 삐죽 내밀었던 입을 집어넣는다. ‘양배추만 없지, 그때 그 맛이란 말이지.’ 저녁 식사 뒷정리를 위해 식탁 주변에 늘어져 있던 일회용품들을 한 데 모으기 시작한다. 나무젓가락을 담았던 종이 포장지 위에 ‘쌍둥이네’ 란 글씨가 보인다. 떡볶이를 푸짐하게 담아주던 청년은 사장님의 쌍둥이 아들이었을까?


  쓰레기 분리수거 거리를 한 아름 들고서 집 밖으로 나왔다. 복도식 아파트라 그런지 현관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동네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기껏해야 슈퍼마켓과 편의점 정도 있을 줄 알았던 아파트 단지는 내부에 다양한 상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쇼핑 거리를 이룰 정도로 컸다. 사실상 서울 최대 규모다.


  지상 풍경 중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간판이 하나 있다. 네모난 베이지 바탕색에 남색 글씨로 적힌 신사시장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신사시장은 양옆으로 점포들이 들어서 있고 가운데 공간은 열린 광장 위 매대처럼 활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신선 채소, 정육, 떡, 해산물, 수입 물품, 철물점, 의류 수선 업체까지, 다양한 먹거리와 실속 생활용품들이 혼잡하지만 정겹게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곳엔 방금 전까지 즐겼던 떡볶이 가게, 쌍둥이네가 있다.


  쌍둥이네 떡볶이는 서울 대표 떡볶이로 꼽히는데, 지역 사람들에게 신사시장 떡볶이르 불리는 경우가 더 잦다. 이곳에서 파는 떡볶이 앞에는 ‘학교 앞 떡볶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빨간 비주얼이 무색하게 소스 맛이 달달해서 어린이들도 즐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게 안은 떡볶이 포장 주문을 넣는 엄마들로 가득하다. 앉은 자리에서 먹고 가는 사람들보단 시장에 장보러 나온 김에 떡볶이를 포장해 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빨간 체크무늬 교복 3년, 회색 교복 3년 입을 때엔 오히려 먹을 기회가 잘 없었는데. 초등학생 땐 하루의 2.5번째 식사처럼 먹곤 했는데.’


  신사 시장 간판을 내려다보았을 뿐인데 떡볶이 생각부터 난다. 쌍둥이네 떡볶이가 듣던 대로 맛있었나 보다. 하교길에서 나를 붙잡던 그때 그시절의 빨간 소스를 떠올리게 했나 보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질문들을 던져보지도 못한 채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나중이 되어서야 미련했다고 지칭하는 그 시절엔 하교길에 떡볶이 한 접시 먹을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고, 수능이란 이름의 거대한 산만 보였다. 대학생이 되고 서울살이에 익숙해질 정도로 머리가 커질 무렵엔, 자유로이 질문하고 즐겁게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거무튀튀하고 딱딱한 무언가가 마음에 하나둘씩 차 들어가는 듯한 답답함도 많이 느꼈다. 어른이라 자부하기엔 너무나 자유로웠고 꽤나 불안했다. 그 때였다. 압구정을 집이라 부르며 지내기 시작한 건. 또 그때였다. 생활 반경에 신사시장 떡볶이 가게가 쏙 들어온 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까지, 큰 글씨로 적힌 신사시장이란 글씨를 보면서 마음을 다졌다.


  ‘떡볶이가 뭐 어때서. 대학생에게도 떡볶이는 필요해.’


  깨끗하게 씻은 줄로만 알았던 떡볶이 스티로폼 통에서 연하지만 붉은 물방울 하나가 새어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위 글은 지음지기의 프로젝트 ㄷ(디귿)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동네 한 바퀴, 압구정"에 관한 또 다른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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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필요한 아이> / 최정연 https://m.blog.naver.com/choijungyon/223227725139






“함께 그리고 씁니다. 개인의 일상을 연결합니다. 이대로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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