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이데 전주현 Jan 25. 2024

기지의 독일어

뉘른베르크, 독일

독일어에서 '-er'라 쓰고 주로 '어'라고 발음하면 되는 접미사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출신, 국적, 직업 등을 설명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를 말하고 싶다면 Korea [코레아]라는 단어에 -er를 붙이는데, a와 e 모음끼리 충돌해 발음이 어려워지는 것을 막고자 n을 추가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Koreaner [코레아너; 한국 남자(의)]라고 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독일어에는 남성, 여성, 중성 명사라는 성(Genus) 개념이 있기에, '한국 여자(의)'라는 뜻을 밝히고 싶다면 여성을 명시하는 '-in [인]'을 추가해야 한다는 거다. Koreanerin [코레아너린], 이렇게.

'-er'는 독일의 지역 특산물이나 미디어 등 다양성을 표현하고 싶을 때도 요긴하게 쓰인다. Spezialität [슈페찌알리텟; 스페셜, 특이점, 특산물] 하는 명사 앞에 '뉘른베르크(Nürnberg) 출신의, 뉘른베르크의' 하는 표현, Nürnberger [뉘른베르거]를 붙이면 '뉘른베르크 지역 (한정) 스페셜'이란 뜻이 되듯이 말이다. 가끔은 뒤따라오는 명사 없이 '-er'이 붙은 채, 명사처럼 단독으로 쓰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 쓰임새를 가장 쉽게 익힐 수 있는 곳은 소시지 바비큐 그릴 앞이 아닐까 한다.

 Nürnberger [뉘른베르거]는 내가 최고로 꼽는 독일 소시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소시지의 출신은 뉘른베르크, 독일 바이에른 주에 속한 도시다. 역사적으로는 나치의 거점, 전당대회, 전범 재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투어리즘 업계는 뉘른베르크를 독일 최대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하곤 한다. 뉘른베르거는 다른 독일 소시지들과는 달리 크기가 자그마하다. 짜리 몽땅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익혀 먹어도 되고 익히지 않고 먹어도 되는 Bratwurst [브라트부어스트]에 속한다.

다른 곳에서 독일의 흔한 길거리 음식 '소시지빵(이 또한 Bratwurst [브라트부어스트]라고 불렀는데 소시지 종류를 구분하는 명사와는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을 시켰더라면, 아마 빵 사이에 커다란 소시지 하나가 덩그러니 들어간 게 전부였겠지만, 뉘른베르크에선 달랐다. 나는 12월에 마인츠 대학교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뉘른베르크를 찾았는데, 나치 전당 대회가 열렸던 곳을 방문한 후 크리스마스마켓을 찾았다. 맛있는 기름 냄새를 풍기는 쪽으로 걸어가 보니 '소시지빵' 가판대가 보였다. 망설일 것도 없이 주문을 감행했다. 마켓 직원은 뉘른베르거를 세 개 넣어주고서야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내게 빵을 건넸다. 그때 그 직원이 지었던 홀가분한 표정이란!

소시지빵 위에 겨자와 케첩을 뿌리고서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소시지가 빵 바깥으로 길게 삐져나오지 않아 먹기 편했다. 뉘른베르거 특유의 꼬들꼬들한 식감과 훈연 향이 크리스마스 전구 사이를 가득 채웠다. 아무리 춥더라도,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스탠딩 저녁은 참을 수가 없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매거진의 이전글 용기는 거리에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