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이데 전주현 Feb 08. 2024

헤어지는 날의 식탁은 붉고 푸르고

마인츠, 독일

뷘터홀러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우리를 늘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직접 준비한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할머니의 펭귄 컬렉션을 구경하고 할아버지의 요리 철학을 들었는데,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우리가 있는 마인츠로 직접 오시겠다고 연락을 주셨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함께 외식도 해야지!" 하시면서.

중앙역에서 만난 우리는 중앙역 서쪽 구역으로 걸었다. 붉은색 외투 차림의 할머니와 연두색 외투 차림의 할아버지가 나란히 걷는 모습은 각자의 개성이 확실하면서도 제법 잘 어울리는 신호등의 산책 같았다.

간단한 브런치를 판매하는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독일어가 가득 적힌 메뉴판을 분석했고, 식사 자리에서 커피까지 알차게 즐겼다. 헤어짐을 앞둔 식사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 웃고 떠들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각자의 손마다 마인츠 로고가 박힌 머그컵을 하나씩 쥐어주셨는데, 포장이 여느 크리스마스 선물 못지않았기에 그 자리에서 뜯어 확인하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귀국 선물까지 받고 나니 '정말로 헤어져야 하는 때인가, ' 하는 생각이 들었고, 카페를 나와 다시 중앙역으로 걷는 내내 괜한 아쉬움에 괜한 말이라도 일단 하고 봤다.

식사 한 끼였지만 이토록 많은 기억이 남은 걸 보니 좋았고 그립고 고마웠나 보다.





*쿠델무델 (Kuddelmuddel): 독일어로 '뒤죽박죽'이란 뜻의 형용사
*프로이데 (Freude): 독일어로 '기쁨'이란 뜻의 명사. 나의 필명.

매거진의 이전글 장바구니를 든 독일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