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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22화. 다시, 날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현서의 눈엔 제대로 보였어. 불안정한 비행, 흰 털과 울음소리, 영락없는 갈매기였지. 반면 금귤 아주머니의 눈은 감은 거나 다름없었지. 운전대를 잡고서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갈매기와 현서가 제대로 보였을 리가. 그 정도면 브레이크를 잡을 법도 한데 또 그러진 않았지. 경운기는 모터 소리를 크게 내면서 무른 흙길을 깊게 굴러가고 있었어.


  현서는 잡초더미 탐색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어. 갈매기를 불렀지. 평소 갈매기가 자신에게 반응할 때처럼, “꾸르, 꾸르르르,” 하고 소리쳤어. 그제야 금귤 아주머니도 눈치를 챘어.


  ‘갈매기가 있나 보군.‘


  하지만 어쩌다 갈매기가 홀로 밖에 나와서 현서와 어울리는지, 그리고 어쩌다 날고 있는지까진 알지 못했지.


  ‘외지인 이장부터 조각가, 갈매기, 현서 저것까지, 한 데 어울려서 또 무슨 작당을 하려고!’


  금귤 아주머니의 음모론이 머릿속에서 새로운 바퀴를 굴리며 돌진하기 시작했어. 경운기도 덩달아 흥분해서 움직였지. 금귤 아주머니도 모르게 가속 페달에 절로 무게가 실렸지. 확신할 수 없는 말에 괜한 피해의식이 더해졌지. 사고의 전조로선 딱이었어. 때마침 폭풍우 직후였잖아. 땅이 제대로 굳지 않았었고, 운전대가 지시하는 대로 바퀴가 움직일 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았지. 오른쪽 바퀴가 도랑 쪽으로 내려앉았어. 해수와 개천이 섞여 흐르는 얕은 물 위로 무른 흙길을 지나온 바퀴가 굴렀지. 도랑은 순식간에 진흙탕이 되었어. 급기야 바퀴가 도랑에 끼고 박혀 버릴 정도였어. 그러는 내내 큰 소리가 났지. 꼭 간밤에 있던 천둥소리 같았어. 주변에 민가라도 있었으면 누가 나와봄 직도 한데, 그 길은 자원봉사자들이 갈매기 마을을 방문할 때만 왁자지껄한 민박집만 가득한 길이었지. 아직은 자원봉사 시즌이 아니라 텅 빈 골목이나 다름없었어.


  “아이고!”


  바퀴가 계속 헛돌았어.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지. 금귤 아주머니는 혼비백산이 되었어.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어쩔 줄 몰라했지. 호들갑을 떨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그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했어. 급기야 두 눈을 뜬 채로 기절했지. 일종의 쇼크였어.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금귤 아주머니가 기절 직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웬 하얀 그림자를 보았다더라. 그게 꼭 흰 구름 조각 같기도 하고 구조원이 건네는 담요 같기도 해서 안도했대. 그러는 사이 경운기 바퀴는 도랑에서 계속 거칠게 헛돌았지.


  때아닌 굉음에 현서도, 갈매기도 금귤 아주머니가 있는 쪽을 주시했어. 갈매기는 오래간만에 움직인 날개를 다독이고 균형을 맞춰가며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지. 현서 쪽으로 가던 몸을 돌려 굉음의 근원지로 가고 있었어. 어쩌면 어젯밤 일을 떠올렸던 걸지도 몰라. 하숙집 아주머니가 큰 소리를 내면서 조각 반죽을 망가뜨렸잖아, 금귤 아주머니의 굉음도 그런 사고인가 했던가 보지. 갈매기는 경운기가 있는 쪽을 보며 눈을 끔뻑했어.


  갈매기가 오래도록 기억하던 풍경과 닮은 풍경을 보았어.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울퉁불퉁한 무언가가 작은 알갱이를 사방으로 튀기고 ……. 꼭 그날의 바닷가 같았어. 도랑에 빠진 금귤 아주머니와 조각가가 겹쳐 보이기까지 했지. 그러자 비틀비틀 하강하던 것도 잠시, 갈매기는 상처를 무릅쓰고 도랑에 빠진 경운기 바퀴 위로 달려들었어. 날카로운 하강이었어. 갈매기는 황금빛 모래알을 흩트리며 맨발을 드러내다가 감추기를 반복하는 조각가, 새우과자는 물론 그보다도 더 고소하고 달콤한 시간을 먹여주던 조각가를 생각하면서 힘껏 날갯짓했지. 조각가의 발등 위로 내려앉았을 때처럼 주저 없이 움직였어. 조각가의 치부를 덮어주었듯이, 경운기의 바퀴를 덮어주려고 했어.


  “위험해!”


  현서는 경악했지. 갈매기가 경운기 쪽으로 가는 게 보였거든. 갈매기의 주의를 끌어 보려고 소리를 지르며 경운기 쪽으로 서둘러 뛰었어. 경운기에 타고 있던 사람이 금귤 아주머니인 줄도 모른 채 그저 갈매기만을 바라보면서. 하지만 다쳤다고는 해도 갈매기의 비행이 현서의 달리기보다 빨랐지.


  경운기의 울퉁불퉁한 바퀴는 조각가의 맨발과는 달리 인내심이 없었고, 갈매기의 마음을 알아줄 리도 없었지. 갈매기는 바퀴 위에 내려앉자마자 바퀴가 헛도는 방향으로 휩쓸려 갔어. 도랑 쪽으로 고꾸라졌어. 바퀴 아래 깔렸지. 도랑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피를 쏟아냈어. 간밤의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어. 현서는 울음 섞인 고함을 지르며 경운기 쪽으로 달려갔어. 가까운 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자 금귤 아주머니도 희미하게나마 정신을 차렸지.



  고래고래 고함치는 현서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금귤 아주머니, 그리고 바퀴와 도랑 사이에서 헛부리질을 해대는 갈매기. 세 생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 그리고 그 자리로 또 다른 생명이 다가왔어. 조각가였지. 신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났지. 낙담의 소리였어. 조각가는 가장 먼저 경운기의 시동부터 껐지. 그리고 갈매기가 있는 쪽을 굽어보았어. 갈매기는 조각가의 얼굴을 발견하자 방금까지 미친 듯이 하던 헛부리질을 멈추고 눈을 끔뻑였지. 조각가는 어서 빨리 갈매기를 바퀴와 도랑 틈 사이에서 빼내려 애를 했어. 하지만 쉽게 움직일 바퀴가 아니었지.


  “꾸르?"


  갈매기는 도랑과 바퀴 사이에 껴 있는 채로 조각가를 향해 눈을 꿈뻑였어. 아는 체를 한 거지. 바퀴에 끼여 있기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어. 도랑물이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양 날개를 들고 있었지. 마치 어느 곤충 표본처럼. 도랑물은 꼭 지난날 폭풍우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렀고,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는 평화 광장에 들어설 분수처럼 아래에서 위로 물을 뿜었지. 날개가 피로 붉게 물드는 건 잠시 뿐이었어. 붉은 기운이 도랑물에 금세 씻겨 나갔거든. 덕분에 갈매기는 평소처럼 뽀얀 모습으로 조각가와 재회했어. 다만 물을 잔뜩 머금은 상태로. 조각가는 울음이 터져 나올세라 윗입술을 아랫입술로 꽉 깨물었어. 현서는 조각가를 대신해서 소리 내어 크게 울었고, 금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 손을 떨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상 상황이라면서 전화를 돌렸지만, 적기를 맞추진 못했나 봐. 그렇지만 갈매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각가를 올려다보고선 눈만 끔뻑이고 있었지.


  “이제야 날았구나. 이제야 날았어.”


  조각가가 가까스로 갈매기를 도랑에서 빼내고선 말했어. 두 팔 가득 품에 안았어. 갈매기는 조각가의 품에 안기는 순간, 이젠 되었다는 듯이 날개를 접었어. 상처가 있었는데도 아주 반듯하게 접었지. 갈매기는 그리움과 안도감이 교묘히 뒤섞인 표정을 하고서 긴 잠에 빠졌대. 조각가의 품에 안긴 내내, 물에 코팅된 깃털들이 붉다가도 하얀 자개 장식처럼 반짝였지. 그야말로 갈매기 마을의 상징 같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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