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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Oct 24. 2024

에필로그. 동화하다

갈매기 마을 이야기

  그리고 한 달반이 지났어. 아침부터 갈매기 마을이 떠들썩했지.


  “친애하는 주민 여러분, 먼 길 찾아와 주신 손님 여러분, 오늘 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갈매기 마을의 평화 공원 기념식에 참석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제가 어제 마을을 순찰할 때의 일입니다.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렸더니, 네, 저보다 훨씬 푸근하고 지혜로우신 분들이 이곳엔 많이 계시죠, 이 작고 조용한 바다 마을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느냐고 물으시더군요. 그럴 만도 했지요. 그분들에겐 그저 장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살던 시골 마을이었는데, 요즘엔 그 시골 마을이 해양 시민 환경 운동의 상징이자 예술과 환경이 더불어 사는 곳으로 소개되고 도시에서도 인기가 꽤 많은 여행지가 되었으니깐요. 마을이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반가우면서도 생경함을 느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씩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전처럼 조용한 시골 마을로 있을 수만은 없을 거라고요. 갈매기 마을에 갈매기가 돌아오고, 사람들 간의 교류가 많아지고, 개다리소반 생산량도 덩달아 많아진 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거든요. 주민이냐 외지인이냐 하는 구분 없이, 모두가 힘써 마을을 청소했지요. 심폐 소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노력은 배신을 몰랐죠. 해수면이 반짝이기 시작했어요. 다시 맑아진 바다를 보자 노년에 생기를 잃었던 장인들도 작업할 힘을 짜냈습니다. 여러모로 마을은 다시 일하기 시작했지요. 자개 공예를 곁들인 갈매기 마을의 개다리소반은 이제 명실상부 전국에서 알아주는 상품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름이 전부인 갈매기 마을이 아니게 된 것, 노란 벽돌길 따라 걷는 해안가의 풍경이 반짝이기 시작한 건 정말 모두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좌중을 자연스럽게 휘어잡은 이장님은 잠깐 연설문의 첫 페이지를 뚫어져라 보다가 몇 문단을 뛰어넘고 뒤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어.


  “통상적으로 어떤 행사를 준비하든 햇빛 쨍쨍한 날에 하려고 하기 마련인데요, 이번엔 저희가 고집을 좀 부렸습니다. 특별히 오늘 처음으로 공개할 평화 공원의 분수대 조각을 맡아주신 조각가 선생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다른 분수 조각과는 달리 어두운 데에서 바람 부는 날, 물을 맞아야 빛을 보게끔 만드셨다고 합니다. 아마 저희 마을의 자개 공예를 접목한 조각이 아닐까 싶은데, 저도 기대가 되는군요.


  아, 미리 밝혀두지만, 그분은 무대에 올라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건 조각상에 새겨진 생명이라고 주장했지요. 아직 마을을 떠나진 않았으니 관중 속에서 지금 이 행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어디 있을지 떠보는 질문이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이 그분을 찾아내진 말아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지금부터는 조각가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글을 제가 대신 낭독하려 합니다.”


  이장님은 바지 주머니를 뒤지더니 난감하단 표정을 지었어. 그때 내가 슬쩍 올라가 원고를 손에 쥐여주었지.


  “아, 고맙다, 현서야. 아, 제 외손녀딸입니다. 지금 소개해 드릴 조각상의 친구이기도 한 아이죠.”


  나는 공손히 목례하고 무대 아래로 내려왔어. 할아버지는 잠잠히 조각가 아저씨의 메모를 읽었지.


  땅을 걷는 생명은 생각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생명과 함께하면 자신도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도 혹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도 저와 똑같이 달콤한 착각에 빠져 계십니다.

  갈매기 마을에서 석 달 가까이 살면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땅을 걷는 생명과 함께 할 때 하늘을 나는 생명은 더 이상 하늘을 날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날개를 접습니다. 함께 나란히 걷습니다.

  물갈퀴가 마르고 상처가 나기 쉬운 상태가 되더라도, 아스팔트길, 흙길, 도랑, 모래사장, 가리질 않고 걷습니다.


  일종의 동화(同和)입니다. 그것도 땅을 걷는 생명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동화(童話), 메르혠입니다.

  말장난 같을지도 모릅니다만, 동화(同和)의 동화(童話)이지요.

  저는 그 동화의 동화를 나중에야 읽었습니다.


  하늘을 나는 생명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그를 보호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걷게 내버려 두어도 되었을 텐데 수시로 그를 들어 품에 안고 그의 날개를 속박했습니다.

  그에 관한 일이라면 대체로 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를 위한다고 한 생각과 행동이 저를 동굴로 몰아붙이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지막까지 저를 위했습니다.

  어렵사리 펼친 날개를 다시 접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많은 것을 빚진 채 조각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생전,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제대로 씌워준 적 없는 우산을 이곳, 분수대 위에서 다시 씌워주려고 합니다.


  지금껏 제가 말한 하늘을 나는 생명이 갈매기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생명이라, 보시면 뻔하다면서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 걷고 눈을 맞춰주는 끈기, 꿈과 현실을 분간 짓는 호흡, 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함께함이 소중한 사랑이 담겨 있으니 멋져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생명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저의 스승님이신 이장님과 하늘을 나는 생명과 저의 관계성을 알아주었던 현서에게 특별히 감사 인사를 돌립니다.

  끼니를 챙겨주시는 것도 모자라, 조각 작업에 진척이 없을 때 밋밋한 반죽에 오색찬란한 자개 빛깔을 덧대어 주신 하숙집 아주머니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생명이 마지막에 지키고자 했던 그분, 그분께서 이 조각상을 오래 지켜보시길, 그러면서 더 이상의 죄책감은 덜어 내시길 바랍니다.


  외지인의 긴 사설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는 아저씨의 메모를 끝까지 낭독하고 목을 추슬렀어. 나는 할아버지가 밤새 거실에서 낭독 연습을 하던 모습을 떠올렸지. 긴 글이라 호흡 조절이 힘들었지만, 조각가 아저씨의 마음을 제대로 전달해 주고 싶어서 몇 번이고 읽으셨거든. 아마 할아버지가 강단 위에서 한 말 중에서 가장 공을 들인 말이었을 거야. 조각가 아저씨의 편지 낭독이 끝날 즈음, 나는 무대 뒤에서 편지 속 인물들을 하나씩 찾아보았어. 하숙집 아주머니께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어. 조금 떨어진 곳에는, 경운기 사고 이후 부쩍 말수가 적어지신 금귤 아주머니가 어깨를 한없이 웅크리고 서 있었지. 두 손을 꼭 쥐고 무언가 입으로 중얼거리시는 걸로 보아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 금귤 아저씨는 바로 옆에서 금귤 아주머니의 팔뚝을 꽉 붙들고 있었고.


  낭독이 끝나자, 할아버지는 긴장이 풀렸는지 핸드 마이크를 세게 떨궜어. 잠깐 무대 위에 마이크 진동음이 퍼지면서 음향 사고가 났지. 바다 마을에 어울리는 뱃고동 같기도 했고 경주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음을 닮기도 했어. 너도나도 귀를 막았지. 동시에 분수대 위를 덮고 있던 방수포가 스르르 걷혔지. 분수가 모습을 드러냈지.


  갈매기가 보였어.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지. 우산 모양의 돔을 이마로 받힌 채 진흙인지 모래인지 모를 어떤 더미에서 탈출하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었어. 각진 숫자 3 또는 알파벳 M이 누워 있는 모양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었지. 깃털 하나하나 결 따라 무지개 조개껍질이 모자이크로 붙어 있었어. 취재진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사람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지. 그러자 물이 흘렀어. 물줄기의 시작점은 두 곳이었어. 돔의 한가운데와 분수 아래. 돔에서 흐르는 물은 흐름이 조심스러웠지. 돔 아래의 갈매기에 닿지 않고 우산살을 따라 방울방울 떨어졌어. 반면에 분수대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물은 갈매기를 덮은 돔으로 솟구쳤다가 떨어져 갈매기의 날개를 적셨지. 중력을 거스르는 물줄기는 날개에 장식된 조개껍질에 광을 내주었어. 조개껍질이 물로 코팅되자 자개 공예 특유의 연한 무지갯빛이 분수 주위에 띠를 둘렀어. 주변 하늘이 흐릿했던 날이었기에 물에 젖은 조개 빛깔이 좀 더 돋보였지.


  비로소 제대로 날고 있었어. 갈매기도, 갈매기 마을도.


  내가 조각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거야. 이젠 갈매기 마을이 어떤 곳인지 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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