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마을 이야기
현서는 조각가가 갈매기와 만났다던 바닷가를 가장 먼저 떠올렸어. 하지만 밤새 조각가가 그곳에 있다 왔다는 걸 떠올렸고 방향을 틀었지. 갈매기가 어쩌다 다쳤는지 알지 못하지만, 자초지종은 나중에 묻고 우선은 갈매기를 만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지. 오랜만에 날개를 퍼덕이면서까지 집을 나간 갈매기라면, 조각가를 찾으러 간 게 아니었을까 생각했지. 하지만 조각가가 바닷가에서 구조되다시피 이장님께로 옮겨져 왔단 걸 갈매기가 알 턱이 없었지.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어. 매일 둘이 나갔던 산책 코스를 위주로 갈매기가 돌아다니지 않을까 싶었지.
‘아저씨가 밤새 안 돌아왔으니, 갈매기도 아주 불안했겠지. 아저씨가 많이 보고 싶었을 거야. 아저씨가 가장 자주 들렀을 곳이 어디일까?’
현서가 조각가와 갈매기의 산책을 매번 함께하진 않았기에 고민이 되었어. 그래도 삼거리에 다다랐을 땐 읍내 방향으로 가는 게 제일이다 싶어서 쉽게 방향을 전환했지.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어. 시골길은 촘촘한 거미줄처럼 좁고 구불구불했거든. 어디 한 곳으로 빠지면 다른 한 곳으로 이동하기까지 빙빙 둘러 가야 했어. 그때 무언가 현서의 발밑에서 바스러졌어. 운동화 밑창을 들어 확인해 보니 새우과자 부스러기였지.
‘그렇지! 슈퍼에 가보자!’
조각가를 만나기 전의 식생활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갈매기가 조각가와 함께 생활한 이래로 줄곧 새우과자와 물만 먹고 지냈던 게 떠올랐어. 매일은 아니더라도, 새우 과자를 사러 자주 슈퍼마켓에 들렀을 것 같았지. 슈퍼가 있는 곳은 여름학교 숙제 준비물을 사러 들르는 문구점이 있던 곳이기도 했기에 확실히 알고 있었어. 문제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슈퍼로의 길이 곧 금귤 아주머니 집 가는 길과 같았다는 거였지. 하숙집 아주머니 집으로 경운기를 몰고 오는 금귤 아주머니와 자칫 잘못하면 마주칠 수 있었어. 마음 분주한 현서가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지만 말이야.
금귤 아주머니는 운전 중이었어. 경운기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지. 비포장도로의 승차감은 생각보다 너무 날 것이었어. 당황스러웠지. 게다가 금귤 아주머니가 민가를 지나칠 때마다 차기 이장 후보의 오른팔로서 손 인사를 한답시고 운전대를 한 손으로 쥐고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몇 번이고 흙길 도랑 쪽으로 바퀴가 빠질 뻔했지. 그때마다 인사를 받던 동네 주민들이 “어어, 앞에 보시오!”라고서 주의를 주었어. 그 덕에 다행히 바퀴는 가까스로 흙길 위를 지났지.
‘오랜만에 운전하려니 쉽진 않네. 아저씨가 새벽부터 트럭을 끌고 나가면서까지 마을을 돌볼 일만 없었어도 옆자리에 타고서 편하게 가는 건데.’
그러면서도 운전 내내 내내 금귤 아주머니는 나름의 음모론에 푹 빠져 있었지. 약간의 정보와 소문만으로도 몸집을 키우는 음모론은 금귤 아주머니의 오랜 장난감이었어. 그 음모론은 피해자 두 명에서 비롯되었지. 마을 토박이로서 여러모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산 금귤 아저씨와, 그의 오른팔로서 내조와 외조를 가리지 않고 하는 금귤 아주머니였어. 지금도, 앞으로도, 마을 번영을 위해 몇 번이고도 생업을 바꿀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이었어. 실제로 금귤 부부는 마을이 일련의 변화를 겪는 동안, 자개 공예에서 금귤 농사, 그리고 지금은 외국산 조개껍데기 관리로 사업을 전환했지. 전통만 고수하며 살다가는 언제 해수 오염 같은 재해를 겪고 이전처럼 가난하게 살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어. 상황에 따른 태세 전환. 그게 금귤 부부 나름의 평화책이었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 사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지. 여태껏 자기를 붙들던 끈일지라도 새로운 끈을 만들어 다는 게 낫다고 생각되면, 오래된 끈을 과감히 자르고 새로운 끈을 그 아래에다가 매달았어.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여겼어.
그런데 언젠가부터 외지인 주제에 갖은 이력을 근거 삼아 인기몰이를 한 노인이 이장이 되더니, 갈매기 마을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게 아니겠어? 이장은 오래된 끈을 붙잡고 보수하자고 했지. 갈매기 마을을 오래도록 장인들의 마을이자 깨끗한 바다 마을로 만들고 싶어 했어. 언론과의 인터뷰 화면에 줄곧 등장하면서 ‘깨끗한 마을과 환경을 위하는 자원봉사자들의 평화로운 마음을 잊지 않는 마을을 만들겠다,’ 면서 돈도 안 되는 평화 광장 사업을 추진했지. 상징적인 공간이 마을을 살게 한다나 뭐라나. 금귤 아주머니에겐 그게 그저 돈 자랑 같아 보였대.
‘도시라면 몰라, 이 깡촌에 웬 광장이고 웬 분수야. 저런 사업이야말로 인기 굳히기가 아니면 뭐란 말이야 정말.’
서툰 운전 실력에도 바퀴는 구르고 또 굴렀지. 이윽고 금귤 아주머니의 시야에 삼거리가 걸리기 시작했어. 해변가, 읍내, 그리고 하숙집 아주머니네 방향으로 나뉘는 그 삼거리였지. 금귤 아주머니는 하숙집으로 가려면 왼쪽으로 크게 돌아야 한다면서 숨을 크게 쉬었어. 경운기의 큰 바퀴가 자신의 거친 코너링을 잘 버텨줄까 걱정이 되었던 거야.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쌩하니 달려 나오는 현서의 모습이 보였지.
‘외지인 이장의 손녀딸이잖아!’
현서가 마을 곳곳을 두리번거리며 갈매기를 찾는 모습은 금귤 아주머니의 눈에 매우 흥미롭게 보였어. 금귤 아주머니에게 흥미롭다는 건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과 같았지. 음모론의 재료로 아주 찰떡이었어.
‘지 할애비 옆에 딱 붙어 있거나 조각가 그 양반 옆에 붙어 있거나 하는 애지, 참.’
금귤 아주머니는 어느새 실눈을 하고서 여전히 멀리 있는 현서를 주시했어. 문득 며칠 전 손자 녀석이 집에 돌아와 학교와 친구들 이야기를 ‘현서 걘 갈매기랑 아주 친한가 봐. 막 같이 산책도 다녀오고 했다네? 조각가 아저씨가 조각상 일하러 갈 때 따라갔대요. 갈매기가 자길 보면 인사도 하고 말도 한다고 하더라. 거짓말이겠지 뭐. 갈매기가 어떻게 말을 해.’ 하던 걸 떠올렸어.
‘무언가를 찾고 있긴 한데. 풀숲과 도랑을 뒤지고 있는 걸 보니 커다란 뭔가 아니고. 혹시…….’
그러는 사이, 덜덜거리는 경운기 위로 날아오르는 그림자가 드리웠어. 그림자는 서서히 현서가 뒤적이는 잡초 더미 쪽으로 움직였지. 완벽한 대칭은 아니었지만, 왼쪽 그림자가 오른쪽에 비해 조금 일그러져 있긴 했지만, 그건 확실히 날개 있는 생명의 그림자였어.
“꾸르.”
어딘지 모르게 허기지고 그리움 가득한 울음소리가 들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