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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Nov 16. 2020

79. 타지가 점점 일상 공간이 되어 간다

벨기에 9개월 차의 하루

17.05.15 월요일


여름에 있을 국제기구 법 과목의 재시험을 준비하는 스터디를 끝내고 쨍한 햇빛에 따스해지는 뤼벤 공기를 친구 삼아 한낮의 산책을 감행했다. 중앙 도서관 앞에는 웬 유치원에서 자전거 수업을 한참 진행 중이었는데, '아, 이래서 유럽에서는 자전거 못 탄다는 어른을 보고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나?'라고 생각하나 보다' 하고 다시금 느꼈다. 마치 자동차 운전면허장에서 장내 기능 시험을 치를 때 이용하는 코스처럼, 자전거 수업을 위해 이 코스 저 코스를 다 연습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 놓은 게 아닌가. 일부는 자전거가 아닌 카트를 몰고 다니기도 했는데 아이들에게 카트 주행권이라도 주는 건지 궁금해졌다. 넋을 잃고서 아이들이 자전거와 친해져 가는 풍경을 보다가 유독 동기들을 많이 마주쳤다. '너도 저런 거 어렸을 때 배웠냐?'라는 나의 질문에 뭐 그런 걸 묻느냐는 식의 반응들이 많았다.


오후 중에는 특별한 일정도 있었다. 독일 친구 N의 flatmate 중에 바이올린 전공생 남학생이 있는데, 그 친구의 졸업 시험 연주가 바로 오늘이라는 거다. 뤼벤 링 바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예술학교에서 초저녁에 열리게 될 졸업 시험 연주는 가까운 친지들을 관객으로 모시고 벌이는 일종의 졸업 콘서트와도 같다. 그 남학생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지만 N의 권유에 따라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귀호강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N의 친구가 무대에 오르기 전, 전통/옛날 피아노를 전공하는 한 학생의 무대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생긴 것부터 내가 알고 있던 피아노와는 다르게 생긴 악기의 모습과 소리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신기한 건, 생긴 건 영락없는 피아노인데, 소리는 꼭 우리나라 악기인 아쟁 소리가 난다는 점이었다. 아쟁 소리를 내는 피아노 연주 후에 N의 flatmate 가 바이올린을 들고 들어왔다. 멀끔하게 차려입고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데, 그를 바라보는 N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너 그래서 여기 오고 싶었구나?♡)


졸업 시험 연주가 끝나고 뤼벤 링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길에 N 나에게 토마토 하나를 건넸다. 엄청나게 못생긴 토마토이길래 '이게 정말로 토마토이긴 한 거냐?'하고 내가 몇 번은 되묻자 N은 깔깔 웃으며 '생긴 건 그래도 엄청 맛있어. 내가 좋아하는 품종인데 기숙사 근처에서 팔길래 얼른 샀지. 하나 먹어봐.'하고 내 손에 못난이 한 덩이를 쥐어주었다. 유럽의 '못난이 복숭아' 이름만 못 낫지 생긴 건 납작하기만 해서 꽤나 귀여웠는데, 이 토마토는 정말 GMO라도 되는 것처럼 이상하게도 생겼다. 하지만 자신 있게 말을 하는 N을 믿어보기로 하고, 기숙사 공용 주방에 들어와 토마토를 씻고서는 얼른 시식해 보았다. 오. 그런데 웬걸. 그 어떤 토마토보다도 달달한 게 아닌가!!!








To. Readers

우리에게(uns, [운스]): 이날은 유난히 길을 걷다가 깊게는 아니더라도 두루두루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거리에서 자주 마주쳤다. 그새 뤼벤이 타지가 아닌 익숙한 나의 생활공간이 된 것만 같아 괜히 흐뭇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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