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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Choi Mar 11. 2019

무질서 속의 질서

By Wodian Grace 

안녕하세요? Grace입니다. 


지난 2월 말에는 베트남 하노이에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정상회담이 결렬된 날에 딱 맞추어서 말이지요. :) 하노이 시내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티셔츠가 걸려있고 인공기와 성조기가 교차하여 길마다 꾸며놓았지만, 회담이 그리 되니 그걸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는 않았답니다. 


하노이가 어땠냐고요? 말도 마세요. 


엄청난 수의 오토바이, 자동차, 관광버스가 길에는 뒤섞여 있고 유턴도 좌/우회전, 횡단보도도 찾기 어려웠으며 역주행은 기본,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그 어마어마한 오토바이와 차들 중간에 눈치껏 목숨 걸고 이동하지 않으면 원하는 경로로 결코 갈 수 없는 도시였지요. 더불어 2월의 하노이는 ‘스모그’가 잔뜩 끼여 서울의 미세먼지 저리 가라 정도로 대기질도 최악의 수준이었답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남편의 리프레쉬를 돕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올 초에 호주도 다녀오고, 여행의 욕구가 거의 없었지만 남편은 이직 후 한 번도 편하게 쉰 적이 없다며 줄곳 입을 쭉 내밀고 있었거든요. 본인이 하노이를 가보고 싶다고 해서, 따라온 여행이었는데 저는 정말 내내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할 정도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노이의 무질서 안에서 크게 깨닫은 점은 있었어요. 


남편은 작년 여름, 좋은 기회로 높은 연봉과 리더 직급의 지금의 회사로 조금 급하다? 싶을 정도로 이직을 했고 그 이후 자신이 추구하는 조직문화와 업무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런저런 고민을 품고 찾은 곳이어서였을까요. 여행 내내 그는 자신의 조직에서의 상황과 하노이가 보여주는 도시의 속살과 깊은 연관성을 찾는 듯했습니다. 


“ 여기 사람들 말이야..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분명히 많이 불편할 텐데 인상 찡그리는 사람도 별로 없고 잘 굴러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이방인인 우리만 불편해하는 것 같지 않아?” 


생각해보니, 그랬습니다. 


그러나 정말 신기한 건, 현지인들은 다들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이 무질서 속에서 생활하며 산다는 것이지요. 물론 제가 보지 못한 사고는 많겠지만, 제가 돌아다닌 사흘간 그 난리통의 복잡성 속에서 다친 사람은 보진 못했습니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길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했지만 현지인들은 마치 유영을 하듯 슥슥 잘 빠져나갔거든요. 


그러더니, 남편은 함께 시내의 한 벤치에 앉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좀 많이 서둘렀던 것 같아. 내가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이 회사로 오니 모든 게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모습을 보고,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해서 모든 걸 한 번에 바꾸려고 했어. 

사실 나 빼곤 아무도 불편함을 몰랐는데, 다 개선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고 누구도 동조하지 않는데 나만 날뛴 거지.


생각을 해봐, 여기 교통 시스템을 바꾸는 게 어디서부터 건드려야만 할지 도무지 각이 안 나오잖아. 오토바이 없이 사람들이 생활할 수도 없고, 길을 정비하기 시작하면 한창 성장하고 있는 도시 통행에 엄청 부담이 될 거야. 워낙 오래된 도시의 도로라.. 방법이 사실 많지 않지.. 


그런데 급하게 건들게 되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의 상황.. 그리고 그 변화로 더 큰 예기치 못할 도미노로 발생하게 되는 부작용..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없으면서 서두르는 거 그게 어떻게 보면 어리석지 않을까? 


근데.. 지금 내가 딱 그랬던 것 같아. 


사실 우리 주변엔 지금 우리 남편이 일하는 곳처럼 무질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름 그 안에서 어찌어찌 돌아가고 있는 조직이 참 많거든요. 그래서 회사의 대표는 더 큰 발전을 위해, 큰 조직에서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스카우트하고 회사를 다시 정비하려고 하지만 결코 쉽지 않지요.


조직은 새로운 사람에게 어디 한번 해봐라 하고 지켜보고만 있고, 새로 조직에 보딩 한 사람은 기존의 ‘무질서’에만 주목하고 무질서 속의 질서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망하고.. 곧 자신도 동화되거나 금세 조직을 박차고 나오거나 하는 일이 반복되니 말이지요. 


저는 무질서 속의 질서가 있는 하노이가 놀랍지만, 찬양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은 몰라도, 이 도시의 무질서가 하노이의 더 큰 발전을 가로막을 것은 눈에 보이거든요. 그러나 이방인은 아무리 그 무질서가 싫어도, 변화를 일으킬 수 없습니다. 결국 변화의 힘은 그들 스스로 인지하고 만들어 가야 하는 영역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글쎄요.. 남편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이제 단순히 조직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그 조직의 무질서 속에 구성원 서로가 통하고 있는 질서의 세계를 이해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조급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달릴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그리고 그가 분명 본 무질서가 회사를 해하지 않도록 구성원 모두가 어서 인지하고, 작은 변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성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직이나, 보직의 이동, 승진 등으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워디 레터 구독자분들이 있다면 북적북적한 하노이에서 우리 부부가 매캐한 냄새를 들이키며 고민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곧 다시 인사드릴게요! 


Be Wodian

Grac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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