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조심
친하다고 생각하고 말했던 말이, 나에게 약점으로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그 뒤로 나는 아무리 친할지라도 무턱대고 신뢰하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린 이후로.
짧은 기간 동안에 빠르게 친해진 형이 있었다.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대화가 정말 시원시원하니 잘 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이 나에게 평소에 마음에 안 들었다는 어떤 사람에 대해 험담을 하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나는 그 형과 친하다 보니 그 하소연을 들어주며 험담하는 것까지 동조해 줬다.
그런 이야기를 나와 나누고 머지않아 그 형은 나에게 험담했던 그 사람과 친해졌다. 오히려 나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자연스레 예전같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게 되었고 사이도 당연히 멀어졌다. 그리고 나에게 험담했었던 그 사람과 붙어 다니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다니기 시작했다. 나에게 한참 험담할 땐 언제고 이제 와서는 둘이 떨어져선 안될 정도로 친해진 모습을 보니 정말 당황스러웠다. 친해질 순 있다고 생각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내가 그 형이 험담을 할 때 같이 들어주고 그 험담을 동조해 줬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형이 나에게 그 이야기를 푼 것이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형이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을 이리저리 늘어놓았다. 마치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해 험담했다는 것을 새까맣게 잊었다는 듯이, 아니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얘기했다. 더 놀라운 건, 오히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얘기를 해보았지만 그 형은 반대로 내가 험담을 시작한 것처럼 아는 것 같았다. 착각인지 고의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그 형과의 관계에서 나는 약점이 생겼다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그 형과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 사람이 이를 알게 되면 나와의 사이는 당연히 멀어지게 될 것이고, 나만 나쁜 사람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 사람과 가까운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형이었기에, 나보다 그 형을 신뢰하여 그 형이 말 한번 잘못했다간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상황이었다.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라도 나는 이미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외에도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가 그 비밀을 다른 사람 입에서 듣게 되었다든지, 모든 것을 다 공유할 정도로 친한 친구인데 시간이 흘러 사이도 멀어지고 비밀 없이 했던 얘기들이 나중에 그 친구를 봤을 때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든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한 번씩은 해봤을 수 있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겪어 나가다 보니 말은 쉽게 내뱉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원래 나는 사람들을 보면 금방 친해지고 신뢰해서 TMI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렇게 늘어놓았던 말이 언젠가 나에게 약점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말을 조심했다. 그리고 그 말들을 풀어놓는 것은 나를 감싸는 방어벽을 한 장씩 걷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 느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방어벽을 치워나가다 보면 결국엔 무방비 상태가 된다. 무슨 잔해가 날아오든 막을 힘이 없어진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방어벽을 최소한이라도 남겨놓는 게 좋다.
물론, 혼자서 고민을 끙끙 앓는 문제 같은 경우엔 정말 믿을만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이야기해선 결코 좋을 것 없는 얘기는 잠시 삼가는 것이 좋다.
아무리 친할지라도 상대방에게 자신에 대한 것을 너무 많이 말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