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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Oct 15. 2019

10년 전의 내가 해주는 말

한달매거진 Day 1



정확히 16살,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떠오르는 감정이 딱 하나 있다. 


불안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3학년에게 어쩌면 당연했다. 막연하게나마 PD가 되고 싶다고 꿈꿨지만 그저 생각 뿐이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 쉽게 10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릴 수 있지만, 이전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평스러움과 달리 늘 불안함이 자리했다. 지금도 여전히 불안하다는 걸 안다면,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마음을 편안히 먹을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늘 뭔가를 준비하는 데 시달려왔다. 중학교 시절에 기억나는 건 학원 생활 뿐이다. 동네에서 아주 유명한 수학 학원이었다. 과학고를 열댓 명, 때로는 스무 명을 넘게 보내는. 중학교 1학년 때 들어간 이후로 3년 간 그곳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율학습제로 운영되는 학원의 특성 상, 매일 같이 밤늦게까지 공부하다 오기 일쑤였다.


근데 슬프게도 왜 그렇게 악착같이 남아서 공부했는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학교는 생각도 안했다. 명확한 꿈도 없었으니까.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는 열망이었나? 사실, 과학고를 가고 싶다는 생각은 크지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좋은 등수를 받고 싶어서, 저만치 훨씬 앞서 나간 애들에게 뒤쳐진다는 느낌을 지우고 싶어서였다.


내가 던져진 세계에서는 공부를 잘하는게 권력의 척도와 같았다. 학원에서는 그들에게 플랜카드를 걸어주었고, 그들은 선생님들에게 예쁨을 받았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상위 10%의 성적조차도 초라함을 느낄 뿐이었다. 문학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내 성향과는 반대였음에도 그렇게 수학 과학에 악착같았던 데는 그런 사정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누군가의 뒷꽁무늬를 쫓기에 바빴다.


해방은 너무나도 갑자기 나타났다. 3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였다.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의 성적표를 들고서 학원에 제출한 그 주말, 과학고 준비반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이 성적으로 지원은 택도 없으니 그만 나와도 될 것 같다고. 그때를 기점으로 그 학원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못했다. 슬펐냐고? 엄청 후련했다. 드디어 가면을 벗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느꼈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그때부터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을 살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도전했다.이과생이 신방과를 지원할만큼 다이나믹하게 살았다. 학생 기자 활동을 하며 전국 각지에 있는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고, 고등학교 때부터 제 집 드나들듯 서울을 왔다갔다 했다.


심지어 대학교 가서는 더했다. 맨날 돌아다녔다. 그게 원하는 거였으니까. 인천에 있는 학교를 다녔지만 서울에서 훨씬 오래 지냈다. 지금도 학교 친구보다 바깥 친구가 훨씬 많다. 군대에서는 패션 디자인을 공부했다. 디자인이 하고 싶었으니까. 군대 동기한테 미술을 배우고 외출을 나오면 2시간 반 거리 도서관에 가서 디자인 서적을 빌려와 공부했다. 현실에 부딪힐 때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했다. 


지금에야 깨달았다. 16살, 그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음을.


그래서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딱 하나 말해주고 싶다. "고맙다"고. 그때 그 벽을 깨뜨리지 않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뒷꽁무늬만 쫓아다니고 있을 테다.


사실 지금이 그렇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삐걱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바쁜 대학원 생활에 사업 준비에 커뮤니티 활동까지. 모든 걸 가져가고 싶지만, 어느 하나 잘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것을 먼저 해야 할지, 내게 놓여진 길 중 무엇을 따라가야 할지 갈팡질팡이다.


아마 16살의 내가 이 모습을 본다면, 오히려 반대로 내게 한 마디 해주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해라"고. 플랜B의 중요성은 절대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본질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내게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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