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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ny Oct 23. 2019

두려움, 그 존재에 대하여

한달매거진 Day9


1.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지 못하는 게 두렵다. 함께 하는 이들을 보면 저마다의 색이 뚜렷하다. 본질을 꿰뚫는 디자이너, 어마어마한 작업 속도의 개발자를 비롯해 사람을 매료시키는 슈퍼 커넥터까지. 그에 반해, 아직도 내 오리지널리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나만이 가진 장점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이걸로 사람들에게 어떤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 


한달매거진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 역시 위와 같은 이유에 있었다. 그 해답은 나를 브랜딩하는 과정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아가고 있다. 


나는 빛이다. 단순히 빛이 난다는 게 아니다. 빛은 작은 알갱이의 집합으로 대변되는 입자의 성질과 물결과 같은 파동의 성질을 모두 지닌다. 끊임없는 변화를 지향하지만 동시에 꾸준함을 증명한다. 외향적인 모습 안에 내향적인 면이 자리한다. 그런데 마치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놓고 싸우듯, 이제껏 어느 성향이 나를 대변하는 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하지만 매거진을 통해 매일 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이중성 자체가 오리지널리티였다는 걸.


그래도 물음표가 남는다. "그래서 네가 보여줄 수 있는 가치가 뭔데?"라고 물으면 여전히 말문이 턱, 막힌다. 하지만 빛의 이중성으로부터 세상을 뒤흔든 학문인 양자역학이 탄생했다. 애초에 쉽게 내려질 답이었으면 고생할 가치가 없다. 이제껏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갈테다.


2. 그래도 여전히 무섭다. 이번에는 현실이다. 당장 발을 붙이고 서 있는 만큼, 걱정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돌이켜보면 두려움은 늘 있었다. 항상 다른 길을 걸으려 하다보니 그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망하면 밥벌이는 할 수 있을까?", "왜 사서 고생하려 하지..?"와 같은 물음이 항상 따라다녔다.


문제는 해보지도 않고서 사서 걱정하는 데 있었다. 망하면 진짜 나락이라 생각했다. 더 이상 재기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무서웠으니까. 말은 늘 모험을 얘기하지만 정작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관성을 멈출 수 있던 군대 시절, 절호의 기회를 잡고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열정과 꾸준함으로 1년 가까이 준비를 하고서 디자인 스쿨에 지원해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면접 대상자임을 확인한 순간, 기쁨과 희열 뒤에 정신을 차리고 드는 생각은 "어, 이게 아닌데...?"였다. 학비만 3년에 4000만원이었다. 집에서는 기댈 수 없는 금액에 현실이 보였다. 마음에서 "여기는 가면 안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지고 들어간 셈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한 선택이었다. 열정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니까. 물론 더 도전했어도 좋았겠지만, 이제는 굳이 자책하고 싶지 않다. 두려워해도 된다. 애초에 무서운 게 세상살이다. 어떻게 모든 일에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나. 견뎌내는 거지.


두려움은 진화의 산물이다. 두려워하지 않은 성향을 지닌 인간은 상위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기 쉽다. 열정으로 사자를, 매머드를, 호랑이를 이길 수 있나? 무용담을 늘어놓는 1명의 영웅 뒤에 100명의 전사자가 있다는 점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말 없는 증거니까.


복잡계의 개념을 이해한 뒤로는 홈런을 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망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재기할 수 있다. 두려움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마저도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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