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언제나 조용히, 시련과 함께 찾아왔다.

나의 세상이 무너진 날.

by Stella

이민은 우리에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누군가에겐 낭만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선택은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채 걷는 길이었다.


남편은 몇 년 동안 지사에서 일해왔다.
언제나 책임감 있게 일했고, 회사에서도 인정받았지만, 그에 걸맞은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지사의 한계, 본사와의 격차, 변화 없는 구조.

그 모든 벽 앞에서 그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나랑 항상 같이 일하고 있는 본사 직원 마크 알지? 그분이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주셨어.
본사에서 경력을 쌓고, 언젠가 다시 지사로 돌아오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은 단호했고, 낯설 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나 역시, 지금의 삶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무언가가 필요한 시기였다.


나는 부모님의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일했다.
사장의 딸이라는 타이틀은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실제로 나는 '만능잡부'였다.

물류, 회계,직원 문제, 재고 정리까지.
회사에 필요한 일이면 뭐든지 했고, 누구의 실수든 결국엔 내 책임이 되었다.


그래도 회사를 지키고 싶었다.
그건 엄마가 처음부터 일구어낸 회사였고, 우리 가족의 생계였고,
무엇보다 내가 바쳐온 청춘의 무게였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버티는’ 일이 무엇인지 뼛속까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10년.
나는 회사를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고,
이제는 내가 없어도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내 삶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엄마는 이 일을 어떻게 반 평생 해오셨는지 가늠조차 가지 않았다.


엄마는 늘 강했다.
아빠의 외도, 생활비조차 주지 않던 무책임함,
이혼조차 허락하지 않던 아빠 앞에서
엄마는 한 번도 우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엄마는 직접 회사를 세웠고
사업을 성장시켰고
두 아이를 빈틈없이, 아니 오히려 꽉 차게 키워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행을 전국 곳곳 또는 해외로 우리를 데리고 다녔었고,

해외를 갈 때마다 듣는 말이 "여자 혼자서 애들을 데리고 다니시는 게 참 대단해요!"라는

말이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커서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싶었다.


어린 나이에 회사를 시작한 엄마를, 나는 늘 곁에서 바라보며 자랐다.
엄마는 우리가 자는 시간에 나가 있었고, 퇴근 후에도 통화를 이어갔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감탄했지만, 때로는 서운했고
존경했지만, 때로는 원망했다.


나 역시 점점 엄마를 닮아갔고,
그림자처럼 그녀의 삶을 따라가며 성장했다.


2023년 12월.
남편은 정식적으로 영국 본사에서 정식 오퍼 받았다.
본사로부터 계약서를 받았고, 사인만 하면 되는 단계였다.
나는 차근차근 정리할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민 확정 발표는 오전에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엄마를 만나러 갔다.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했고,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엄마는 평소보다 어색할 만큼 밝은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테이블을 정리하며 우리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그 해맑은 미소에 웃었고,
남편도 조용히 엄마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의 침묵.
엄마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한테 꼭 얘기해야 할 게 있어서 오늘 보자고 한 거야.”



나는 무슨 말인지 몰랐고,
남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엄마는 두 손을 천천히 깍지 낀 채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암 이래.
3기 말 이래.”


세상이 조용해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주방에서 김이 오르던 커피포트 소리,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틀어놓은 캐롤 재즈,
모든 소리가 순간적으로 멎었다.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은 손끝을 미세하게 떨며 얼굴을 감쌌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웃었다.
마치 위로라도 하듯이.


“그래도… 다행이야.
지금 발견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의 말은 항상 그렇게 담담했다.
본인이 가장 겁나면서도

오히려 우리가 놀랐을까 봐 애써 웃음 짓는 그 모습이 더 아팠다.


그날 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불도 켜지 않은 거실에서
남편과 나는 나란히 앉아,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사람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우리가 이민 확정 통보를 받은 날.
그 누구보다 우리를 응원해 주었을 것 같은 사람이,
우리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이,
그날,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의 병명을 조용히 꺼내놓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누구보다 우리의 이민을 축하하고 바랬던 그 사람이,
내가 떠날 수 없는 이유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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