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했던 유학의 기억 아니, 착각의 시작점.

유학의 경험으로 잘못된 부푼 희망을 품다.

by Stella

초등학생 때 한번, 대학생 때 한번, 나는 총 두 번 영어권 국가에서 어학연수를 경험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흘러도 언젠가는 다시 한번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기억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엔 조기유학이 흔하진 않았지만, 종종 그런 선택을 하는 집들이 있었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내가 다녀온 유학의 형태는 이랬다.

어린 시절(초등~중등)에는 비교적 안전하고 조용한 나라, 예를 들면 뉴질랜드나 호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고등학생이 되면 미국이나 영국으로 진학하는 방식.

그것이 우리 부모님 세대가 생각한 '이상적인 유학 로드맵'이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 해줄 '가디언 선생님'이 계셨고,

평일엔 현지인 홈스테이 가정에 각자 배정되어 생활하다가, 금요일 저녁이며 모두 가디언의 집에 모여 근황을 나눴다. (홈스테이 환경/ 성적 / 친구들과 교우관계 / 건강 등)

나는 운 좋게도 좋은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 쾌적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유학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한국에선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달려가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지만, 뉴질랜드에선 전혀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운동장을 누비며 운동을 했고, 드라마 클럽에 들어가 안 되는 영어로 연기 놀이도 하고

집에 돌아와 만화나 청소년 드라마를 보고 간식을 먹었다.

얼마나 여유롭고, 또 행복했던가.

숙제는 있었지만, 우리가 아는 '숙제'와는 달랐다.

"하루에 물 500ml 이상 마시기"

"공놀이 30분 이상 하기"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에 대해서 적어오기"

일상 그 자체가 배움이고 놀이였다.

주말이면 또 한국인 아이들이 다 함께 모여 승마, 수영, 하키 같은 역동적인 스포츠를 즐겼다.

한국친구들과 일주일 만에 만나 종일 수다를 떨다 일요일 저녁, 다시 각자의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가

일주일을 시작하곤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통통하던 나는 건강하게 홀쭉해졌고, (실제로 공항에서 엄마가 나를 보고 어색했다고 한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맑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완벽한 순간들 속에도 외로움은 분명히 있었다.

겨우 10살, 11살, 12살짜리 아이들이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함, 때로는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고독감,

우리의 어리광을 받아줄 곳은 한 곳도 없다는 좌절감...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감정들을 스스로 다스리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고,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냈다.

그래서 내 유년기 유학은

자유롭고, 건강하고, 자연친화적이었다.

외로움과 그리움만 빼면, 모든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이번엔 뉴욕으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취업 전에 큰 도시에서 언어와 문화를 경험해 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부모님과 상의해 떠난 뉴욕은,

관광객으로 왔을 때의 그것과 완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내가 걷는 길이 곧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어학원에서 만난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모드 따뜻했고,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문화를 존중하고, 나누고, 때로는 다투면서도

조금씩 삶을 함께 만들어갔다.


뉴욕에서 나는,

한국에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해볼 수 있었다.

끈 나시와 레깅스를 입고 거리로 나가고,

내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수업을 자유롭게 수강했다.


모든 게 "why not?"이라는 말 한마디로 가능해지는 곳.

그 자유로움이, 나를 무모할 만큼 당당하게 만들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걱정 없이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모든 것이 '새롭고 반짝이는' 시기만을 경험한 나는,

그 시절의 환상을 꽤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그래서였을까,

30대가 된 지금, 내가 이민을 결심했을 때도

그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거라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부푼 희망과 함께

2023년 11월, 나는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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