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는 거절, 단 1%의 집을 찾아서.

유학은 로맨스 이민은 현실, 그 시작점.

by Stella

유학은 로맨스, 이민은 현실.

이민을 결정한 순간부터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유학은 그저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되는 일이었다. 이미 다 준비된 시스템 속에서 나는 ''잘 적응하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이민은 달랐다. 모든 걸 내가 직접 개척해야 했다. 낯선 땅에서 필요한 건 적응이 아니라 ''살아남기''였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건 엄마였다.

내가 유학을 떠날 당시,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라지 않았다. 그런데 그 많지 않은 나이에 한국에서 지구 반대편 나라까지, 딸이 지낼 집이며 학교며 생활까지 다 책임지셨다. 나는 불평만 늘어놓았는데, 엄마는 당신의 젊음을 묵묵히 갈아 넣으며 내 미래를 짊어지고 계셨던 거다.


뒤늦게 깨달았다.

내 아이도 아닌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이렇게 벅찬데, 엄마는 어떻게 그걸 다 해내셨을까.


이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건 의. 식. 주라는데, 그중에서도 '주'가 가장 큰 산이었다.

한국에서도 집은 늘 인생의 무게였다. 월세 살 땐 전세가 부러웠고, 전세 살 땐 내 집이 간절했다.

은행 지분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자가를 마련했을 때의 안도감은 달랐다. 벽에 그림하나, 인테리어 소품하나 내 맘대로 둘 수 없었던 서러움에서 해방된 순간이었으니까.


결국 용인에 작은 집을 마련했고, 나도 드디어 '내 집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영국 이민이 결정됐다. 우리는 집을 전세로 내주고, 또다시 집 없는 신세가 되었다.


''영국 집값은 상상 초월이다."

수없이 들은 말이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이나 영국이나, 사람 사는 거 뭐 거기서 거기겠지."


큰 착각이었다.


주재원으로 오는 사람들이라면 회사에서 집도 차도 제공해 준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호사는 없었다.

남편은 현지 법인 채용이었고 집도 차도 직접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1~2년은 월세로 살아보자."

영국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고 어느 동네가 좋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최선의 결정이였다.


여기서부터가 전쟁의 시작이었다.


문제는 우리가 영국에 도착해서 집을 구한 게 아니라, 한국에서부터 원격으로 집을 구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노트북 화면에서 Right move, Zoopla 같은 우리나라 '직방'같은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새 매물을 확인했다. 전화기를 붙들고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고, 답장이 없으면 메일을 보내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항상 그러하듯 내 맘에 들면 너무 비싸고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내가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컨디션이었다.


그런데, 집 값은 둘째치고 의외의 복병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집의 귀여운 천사 강아지였다.

우리 집 강아지가 복병이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펫이 있냐''라는 질문이 나오면 에이젼시와 대화는 늘 거기서 끝났다. 뷰잉(viewing, 실제로 매물을 보러 가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화면 속 집 사진은 반짝반짝했지만, 우리는 그 집의 햇살도, 동네도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다른 부동산 담당자에게 연락하며 억지로 친한 척을 하는 일이었다.

영국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항상 새벽에 부스스한 눈으로 억지로 잠을 깨며 그들의 이름을 외우고, 알지도 못하는 날씨 얘기를 꺼내며, ''혹시 이번만은 우리 강아지를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하고 애원했다.

어떤 날은 '부동산 직원의 친구가 되는 게 내 직업인가'싶을 정도였다.


영국은 Dog friendly 나라라고 했다. 실제로 카페, 기차, 심지어 펍까지 강아지와 함께 갈 수 있다.

그래서 당연히 집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99%의 월세 집에는 같은 문구가 적혀있었다.

''No pets allowed sorry."


그 순간 깨달았다.

영국은 강아지가 어디든 갈 수 있는 나라가 맞다. 단, 집은 빼고였다.


강아지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은 단 1%.

우리는 그 1%를 찾아 하루하루 버텨야 했다. 매물이 하나 올라오면 부동산에 전화기를 붙들고 집주인에게 아주 작고 배변훈련이 잘되어있으며 짖지도 않고 혹시라도 강아지에 의해서 티끌하나 손상되면 다 배상하겠다는 말을 전해 달라는 말을 녹음기처럼 말했다.

우리는 지원자였고, 우리 강아지는 '합격'을 기다리는 참가자였다.

그렇게 3주가 흘러가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천사 같은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너를 어뜩하면 좋니.... 그래도 걱정 마 엄마가 무조건 찾아낼게"라고 나 자신에 말하듯이 강아지에게 말했다.

출국날짜는 다가오고 집은 안 구해지고 초초해졌다.


결국에는 잠시 강아지를 엄마집에 맡기고 우리가 먼저 가서 현지에서 발품을 팔아야겠다고 포기하려는 순간,

그동안 친한 척했던 담당자에게서 메일이 한통 왔다.

" 기쁜 소식이 있어!, 너희 강아지를 받아주겠다는 집주인을 찾았고 동네도 새로 개발한 지역이라 안전하고

투자목적으로 구입한 집이라 집주인이 1년밖에 거주를 안 해서 컨디션도 새집이나 같아. 그런데 월세가 조금 높은데 그래도 한번 라이브로 뷰잉을 해줄까?"


난 그 메일을 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99%가 ''No pets allowed''라던 영국에서, 드디어 열린 단 1%의 문.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걸까, 아니면 또 다른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 집을 라이브로 실제로 보게 된 순간, 나는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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