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착](定着)의 사전적 의미.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아 붙박이로 있거나 머물러 살다.

by Stella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았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는 건 생사가 달린 일이다.

나 역시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집을 찾아 헤맸다.

몇 주 동안 부동산 담당자들과 부지런히 연락하며 "내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어필했다.


한 열 명 남짓 되는 중개인 중에는 불친절한 사람도 있었고, 무관심한 사람도 있었으며,

또 의외로 친절한 사람도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눈에 띈 사람은 막 부동산 일을 시작한 신입 중개인 'Abbie young'.

특유의 영국 악센트와 밝고 명랑한 목소리, 까다로운 질문에는 매니저에게 물어다는 말을 하며

최선을 다해 본인이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어 하는 열정적인 중개인이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은 집이나 차처럼 큰돈이 드는 거래에서는 경력이 많은 직원을 더 신뢰한다.

나도 늘 그랬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땐 신입보다는 노련한 전문가가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종종 타성과 매너리즘에 젖어 있다.

"돈이 되는 일"과 "돈이 안 되는 일"을 철저히 구분하고, 리턴이 적은 일은 외면해 버리곤 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월세 계약에, 그것도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신용도 없는 외국인이라니..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겠는가.



나는 사회생활 10년 차, 그중에서도 최근까지는 한 팀의 장으로 사람들을 꽤 상대해 본 터라, 그들의 말투와 단어 선택만 들어도 속마음을 감각적으로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었다.

'아, 이건 그냥 형식적인 응대구나.' , '연락이 오지 않겠구나.'

그런데 신입 중개인 Abbie는 달랐다.


처음부터 어떻게든 거래가 성사되도록 작은 팁을 주고, 확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려주곤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 었다.

"일단 강아지가 있다는 말을 하지 말고 오퍼부터 넣어보세요, 그리고 주인이 수락하면 내가 나중에 까먹었다는 듯이 슬쩍 물어볼게요! 탐탁지는 않겠지만 일부 조건을 걸고 받아주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이번 집주인은 강아지에 대해서 이해심이 있어 보여, 본인도 강아지를 키운다니 제가 잘 이야기해 볼게요 조그만 기다려주세요!" 그때 나는 느꼈다.

'이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구나.'

그리고 속마음으로 속삭였다.

"당신은 어디서든 성공할 거야. 남들이 외면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해내다 보면 결국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거든.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되길 바랄게요."


몇 시간 뒤, Abbie가 라이브 뷰잉과 함께 집 사진을 보내왔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소리쳤다. "올레~~!!!!"

그동안 나는 수없이 스스로와 타협해 왔다.

"그래 바닥이 좀 더러운 카펫이면 어때, 카펫 청소기로 청소하면 되잖아."

"부엌이 좀 좁고 낡으면 어때, 오래 살 것도 아니고 1~2년만 지내면 되잖아."

"거실이 어둡고 햇볕이 안 들어오면 어때, 원래 영국은 해가 잘 안 든다는데 제습기 사면 되잖아."

더러운 카펫, 볕이 잘 들지 않는 낡은 부엌과 거실, 주차 공간조차 없는 집들,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수풀이 우거진 정원들.

한국이었다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집들조차, 강아지만 받아준다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Abbie가 보내 온 집은 그 모든 체념을 단숨에 날려버릴 만큼 나를 매료시켰다.

새로 지은 집, 두 대나 주차할 수 있는 프라이빗 주차공간.

햇살이 집안 구석구석까지 스며드는 밝은 공간.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카펫은 새것과 다름없어 걱정이 사라졌고, 커다란 창문 너머로는 잘 손질된 정원과 조용한 동네가 펼쳐졌다.

하얗게 단장된 벽, 작지만 알차게 꾸며진 주방, 습기를 한 번에 빼주는 넓은 창이 있는 화장실, 정원으로 이어지는 아늑한 거실. 모든 게 완벽했다.

부동산에서 보내온 우리 집의 외관 풍경 / 제공해 준 브로셔의 한 페이지.
스크린샷 2025-08-31 오후 10.20.29.png 우리 집의 내부 공간 이미지 / 제공해 준 브로셔의 한 페이지.

이미 마음은 이삿짐을 옮겨 들어간 상태였다.

아차차...,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문제는 역시 가격이었다. 분명 Abbie는 경고했었다, "이 집은 예산을 조금 초과하는데 그래도 괜찮겠어?"라고.

숨을 한번 고르고 조심스럽게 가격을 물었고, 이어진 금액은 우리의 예산보다 무려 한화로 60만 원이 초과되었다.

월세로 월급의 반 가량을 쓸 거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숨이 턱 막혔다.

순간 머릿속에서 빠르게 셈이 돌아갔다.

"60만 원이면 공과금이나 한 달 주유비랑 맞먹는 금액인데.. 과연 생활이 가능할까?"

그러자 또 다른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집 컨디션이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이것도 가격을 내린 거라잖아. 게다가, 강아지도 받아주는 새집이라니.

이건 다시없을 기회야... 지금 놓치면 또 어디서 어떻게 집을 구할래! 어서 잡아."


결국,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조건을 받아들였다. 식비를 조금 줄이고 커피를 사 먹지 말고 아끼면 된다는 생각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던 손끝은 떨렸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이 차올랐다.

비싸도, 최소한 이제는 우리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에서 다 같이 살 수 있는 곳이 생겼으니까.

그리곤 깨달았다.

암울하게만 보였던 이민의 시작이 이 집과 함께 다시 햇살로 덮이고 있다는 것을.

'그래, 여기서라면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겠다.'

안전한 동네를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 아늑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모습, 햇살 가득한 거실에 앉아 넷플릭스를 시청하는 모습.


오아시스를 찾은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준비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영국판 '아름다운 가게'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