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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짹짹 Jan 07. 2023

질투의 원천은 무엇인가?

짹짹의 봄_사춘기(思春記) : 성장 문답 #6

오늘은 사정이 있어 기존에 써둔 글을 올립니다.. ㅠㅠ

정리에 대한 글은 내일 꼭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질투의 원천은 ‘나에 대한 미움’이다



질투란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될 수 없어 분한 마음’을 뜻한다. 그 결과, 그런 마음을 들게 하는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정도에 따라 상대를 흠집 내거나 깎아내리는 행위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질투의 모습이다. 질투는 기본적으로 상대에 의해 예기치 못하게 촉발된 감정이다. 갑작스런 자극이 주어지면 우리 몸은 본능적인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경험하는 현상이지만, 사실상 자극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에 더 가깝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표면적 현상’이 아닌, 그 이면에 도사린 ‘진짜 감정’이다. 질투의 근간에는 사실 ‘저렇게 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고 타박하는 마음’이 숨어있다.


그런 감정들을 마주하는 건 매우 힘들고 소모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모든 감정의 화살을 상대에게로 돌린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외면하고,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그 감정들이 향해야 할 대상은 본래 ‘나’이기 때문이다.



나의 질투의 원천은 무엇인가



질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나의 질투의 원천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은 정확히 어떤 모습일까? 그게 현실의 나와 얼마나 차이가 나길래, 나를 그렇게 미워했던 것일까? 


나의 질투는 대부분 능력과 관계된 것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질투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늘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나는 더 잘하는데’, ‘내가 저 사람보다 나은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돈 없는 나, 못생긴 나, 인기 없는 나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무능한 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끔찍이 싫었다, 무능하게 살아갈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그래서 내게 다시 ‘능력 있는 나’가 되고 싶었던 거냐고 재차 물었다. 예상밖에 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무능한 내가 되기 싫은 건 맞는데, 꼭 능력 있는 내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고.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사실 유능, 최고, 1등 같은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나는 무능한 나에 대해 왜 이런 과민반응을 일으켰던 걸까?


이 질문을 듣자마자, 그동안 능력과 관련해 겪었던 일화들이 주루룩 떠올랐다.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 해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계속 내몰렸던 경험, 나의 무능함 때문에 내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해 억울하고, 슬프고, 무력했던 경험, 나의 능력에 대해 끊임없이 왈가왈부하며 일희일비하던 주변 사람들. 이런 상황들을 숱하게 겪으며, ‘무능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무능하면 삶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피곤해진다’, ‘무능한 사람은 살 가치가 없다’와 같은 논리를 무의식 중에 학습해왔던 것이다. 내가 되고 싶었던 진짜 내 모습은 ‘유능한 나’가 아니었다. 그건 단지 그간의 경험에 의해 학습된 가상의 이미지였다. 나는 지금까지 상황적으로 ‘되어야 하는 나’를 ‘되고 싶은 나’로 착각하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처럼 질투에 근간에는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있다. 따라서 질투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정확히 그리고, 언제든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표면적인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주입받은 이상에 현혹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저 사람처럼 되고 싶은 나’를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내가 왜 그런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하고, 원인을 명쾌하게 밝혀야 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적어도 맥락 없는 미움과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질투의 독기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다음엔 내게 영향을 준 그 사람의 모습이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것이 맞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그 답을 명쾌하게 내릴 수 없다면,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질문하고 답하며 고민해야 한다. 절대 필요에 의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습을 ‘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모든 과정을 거쳐 내가 정말 바라는 나의 모습을 명확히 그려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질투의 고삐를 쥘 수 있다. 


명확히 알고 정확하게 행동하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결국 사색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유와 해방을 꿈꾸며 오늘의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을 기록한다.

앞으로도 나의 성장 문답은 계속될 것이다. 아마 평생 동안.





[오늘의 성장 문답]

Q : 질투의 원천은 무엇인가?

A : 그 사람처럼 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미움과 분노.

내가 진실로 되고 싶은 모습을 명확하게 그릴 수 있다면, 질투의 독기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건강한 삶의 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짹짹 씨의 친절한 용어정리]

* 질투 : 표면적으로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은데 될 수 없어 분한 마음’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저렇게 되지 못하는 나를 미워하고 타박하는 감정’이다. 

보통 나에 대한 미움과 분노의 감정으로부터 회피하여 모든 화살을 상대에게 돌리게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본심을 외면하고 감정의 소용돌이와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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