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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떠나도, 사랑은 남는다.

by 월하

1. 나와 내가 나눈 이야기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은 그녀와 헤어지고 7개월 정도 됐을 무렵이다. 놀랍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 감정과 변화들을 반드시 기록해야 했다. 살면서 이런 사랑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랑한 사람과 헤어졌다. 갑작스러운 일방적 통보에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다시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너무 아팠다. 넘쳐흐르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게 사랑이라면 더더욱.


그녀를 만나는 동안 나는 그녀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그녀가 가진 불안과 우울, 어두운 그림자들을 모두 감싸 안고 빛으로 이끌고 싶었다. 이끌 수 없다면 그 어둠 속에서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는 이별을 선택했고 나는 혼자 남겨졌다. 그때부터 나는 엄청난 고통과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스스로 최악이라 생각할 만큼 바닥으로 내팽개쳤을 때이제 그만 숨 쉬고 살고 싶어 졌고, 놀랍게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생각해야 했다. 이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나는 왜 그녀를 만났을까? 이 만남이 인연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삶은 왜 교차했으며, 왜 헤어짐이라는 결말로 흘렀을까? 나는 왜 이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을 견뎌야 할까 라는 물음에 답해야 했다.


내가 찾은 답은 성장과 배움이다. 그녀를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사랑 앞에 조건이 붙지 않았고,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그 모습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갈등 속에서 방어기제를 내리고 귀 기울이고 조율하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이게 내가 그녀를 만난 이유였다. 그녀의 존재는 내게 사랑을 넘어 배움과 성장이었다.



2. 잠재된 결핍과 마주했을 때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과 별개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난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억지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그래도 그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 나의 시야는 계속 외부 환경에 놓여있었다. 시야를 내부로 돌려야 했다. 이걸 깨닫는 순간 모든 외부 환경이 소음으로 느껴졌고, 그때부터 나는 진짜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나를 고립시켰다. 나 자신에게 묻고 답하며 나 자신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애써 무시해 왔던 잠재된 결핍과 마주하게 됐다.


말했다시피 나는 그녀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타인을 구원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그녀에게 구원받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녀의 존재는 나의 외로움과 불안함을 감춰주었다. 그녀가 옆에 있을 때 나는 외롭지 않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 당시 나는 참 불안한 사람이었고, 그녀는 내 옆에서 나의 불안한 모습을 봐왔을 것이다. 불안한 나의 에너지가 불안한 그녀를 끌어당겼고 그렇게 우린 만났던 것이다. 이 생각이 일어났을 때 드디어 나는 무의식 속에 감춰둔 나의 결핍과 마주하게 됐다. 나의 결핍은 외로움과 불안함이었다. 큰 충격과 동시에 나는 자유로워졌다. 결핍은 내게 문제가 아니었다. 결핍을 문제로 인식하는 내 생각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진짜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면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마음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그 안에 일어나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마음이 그릇이라면, 감정은 물과 같다. 마음은 감정을 담는 공간이자 본질이다. 그릇 자체는 비어있지만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감정이 물이라면 그건 흐르고 변하는 성질을 가졌다. 그릇에 맑은 물을 담을지, 탁한 물을 담을지는 나의 의지다.


한 차원 더 높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반야심경의 불구부정(不垢不淨)은 일체 모든 본질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감정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면 본래 좋고, 나쁜 것이 없다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 또한 배우게 될 것이다. 깨끗한 물도 탁한 물도 그릇에 담길 땐 그냥 물일 뿐, 결국 본질은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개념이 선명해졌다. 공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비어있는 상태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내면에서 연달아 일어나는 생각과 질문에 답했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처럼 평온함을 찾았다. 마치 내 영혼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우주고, 우주가 곧 나라면 내면과 소통하는 것은 곧 우주와 대화하는 것처럼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것만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간혹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진짜인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진짜였다. 다시 불안이 찾아와도 그저 알아차리고 바라볼 뿐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다음 단계는 무얼까 생각했다. 집착을 내려놓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내맡기는 것이다. 이제 나는 집착을 내려놓는 법을 알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알았다기보다 그 느낌을 알았다. 느낌 아니까! 미워하는 감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감사한 마음이 온전히 채워졌다. 바람이 부는 데로 햇볕이 따뜻한 데로 감사했다. 주변을 감싸는 공기마저 달라졌다. 지금 이 순간이 선물 같았다.



3. ”사랑“ 소유가 아닌 수용


사랑을 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별개이다. 사랑은 내 삶에 나타나 존재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감사함이다. 나를 아무리 아프게 했더라도 나만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상대를 탓하지 않고 나의 결핍을 드러내고자 하는 용기.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이제 나는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사랑하면 상대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진정 사랑한다면 때론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한다. 소유하려는 마음은 고통을 남기지만, 수용하는 마음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집착을 내려놓을 때, 더 깊고 자유로운 사랑이 가능하다. 사랑은 가장 순수한 에너지이며, 고통을 통해 확장된다.


복수라는 표현이 적당하진 않지만 흔히 “최고의 복수는 나의 행복”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더 높은 차원의 사랑에서는 복수조차 필요 없다. 미움은 내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사랑은 내 에너지를 확장시킨다. 상대가 내 곁에 없어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멀리 서라도 상대의 행복을 기원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수용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높은 단계이다.



4. 자연스러운 흐름에 내맡겼을 때


한편으론 그녀를 왜 미워하지 않는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고 싶어졌다.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마음속에서 그녀와의 관계가 여전히 의미 있고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동안의 감정이나 경험이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관계에서 많은 것들을 배웠고 사랑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미움이나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이해와 용서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거나 중요한 순간을 함께 했다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는 그 관계가 끝난 이유와 그로 인해 배운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내면에서의 치유와 성장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녀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기는 것은 우주의 법칙 그 자체다. 은하가 회전하고, 행성이 궤도를 돌고,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과정은 억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감사함으로 채운 것은 우주가 스스로를 유지하며 조화를 이루는 방식과 닮았다. 우주의 끝없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하는 감사함은 마치 우주 속에서 별 하나가 다른 별에게 빛을 주고 떠나는 모습과 같다. 그녀는 나의 삶에 나타나 사랑과 배움이라는 빛을 남겼고, 이제는 각자의 궤적으로 떠나가지만 그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 삶에 중요한 일부가 비워진 이유는 그만큼 내게 꼭 필요한 것이 새로이 채워지기 위함이다. 마치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며 새로운 별과 생명을 탄생시키는 과정처럼. 비움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이 된다. 어둠을 경험해야 빛을 이해할 수 있듯이 어둠 속에 있을 때 빛이 가장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랑은 고통을 수반한다. 근육이 찢어지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치유된다.


사랑은 떠났어도, 사랑은 또 다른 형태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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