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 옥류천과 존덕지
궁의 정원은 한 개인이 조성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정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싶지만 한계가 있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이상향과 거리가 먼 표현은 자제할 수밖에 없다. 궁 안에서 혈세를 가지고 만드는 정원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표상이다. 그래서 궁의 지당池塘*은 네모다. 조선은 유교의 국가이고 예법을 지키는 것을 덕으로 삼는다. 땅은 네모이고 하늘은 동그랗기에 모든 지당은 네모이고 섬은 동그랗다. 간혹 이 법칙을 벗어나기도 하지만 지당은 기본적으로 네모이다.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못이라서 연꽃이 없으면 지당이라 부른다.)
하지만 창덕궁 후원에는 이러한 법칙을 따르지 않는 두 정원이 있다.
인조는 침전인 대조전 뒤편에 연못을 만들고 뱃놀이를 즐겼다. 반정까지 일으켜 왕이 된 인조가 나라를 다스리기보다 노는 것에 관심을 두자 불만을 품은 신하들이 상소를 올린다. 하지만 인조는 어떻게 하면 신하들에게 걸리지 않고 즐겁게 놀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그렇게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불과 몇 달 전,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물이 풍부한 옥류천玉流川이 만들어졌다.
전 세계 정원의 대부분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원을 만들고 즐긴 왕이 인조만은 아니다. 그가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백성을 위하는 지도자가 아니고 권력만을 향유하고자 하는 개인이었기 때문이다. 병자호란 이후 백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를 생각하면, 나라 안팎의 정세를 살펴야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구석에 들어가서 들키지 않고 놀 수 있을지를 고민한 왕의 정원을 고운 시선으로 보기는 어렵다.
옥류천의 거대한 암석은 시그니쳐이다. 동궐도와 불염재 김희겸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암석은 윗부분의 절반을 잘라낸 후 반은 산 모양으로 다듬고 반은 평평하게 다듬었다. 평평한 곳에 술잔 하나가 물을 타고 흘러 지나갈만한 길을 파 놓았다. 중국의 왕희지가 창안한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술잔이 물에 둥둥 떠내려가 본인 앞에 다다랐을 때 시 한수를 짓지 못하면 벌칙으로 술을 마시는 고상한 술 게임이다. 자연 암석을 술놀이에 걸맞게 인공적으로 다듬었지만 누군가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는 원래 이렇게 생긴 것을 활용한 것만 같다.
이 작은 공간에 정자와 못을 네 개씩 만들고, 배고플 때를 대비해 부엌도 조성했다. 부엌이 혹여나 분위기를 망칠까 취병으로 둘러치기까지 한다. 너무 큰 정원을 만들면 눈에 띌까 작은 공간에 욕심은 많아 여러 정자와 지당을 만들고 즐겼던 인조가 옥류천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시간이 흘러 정조가 신하들 39명에게 유상곡수 놀이를 베푼 기록은 있다. 신하들의 눈을 피해 들어간 정원이니 인조는 그곳에서 기록에 남길 일을 최대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정조는 왕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금지된 정원(금원禁苑)이었던 후원을 신하들과 함께 향유하면서 권력을 사유화하지 않고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어가자는 의지를 다지는데 활용한다.
소현세자가 존덕지尊德池를 만든 것은 8년 동안의 청나라에서의 볼모 생활이 끝나자마자이다. 시작은 포로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자의 청에 대한 생각도, 청의 세자에 대한 대우도 달라진다. 돌아오자마자 청나라 양식의 정자를 조성한 것은 소현세자의 생각을 대변한다. 하지만 귀국 후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소현세자는 존덕지를 남기고 죽는다. 자신을 모욕한 청을 본받으려 하는 아들이 못마땅했던 인조는 사인조차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
2층 지붕에 모서리마다 큰 원기둥 하나와 작은 원기둥 세 개씩이 짝을 이루는 화려한 존덕정은 마치 청나라 심양의 고궁에서의 연회를 떠올리게 한다. 청나라 대정전大政殿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존덕정은 소현세자의 기개를 보여주는 건축 사례였고, 이후로도 왕의 힘을 표현하는 건축물로 활용된다.
인조가 정원을 만드는 이유는 어떠한 명분도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인조에게 정원은 국가의 표상일 이유도 없었고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다른 형태의 지당을 만드는 것은 책잡힐 일이고 그러한 정원은 만들 이유도 없는 나라가 조선이다. 인조는 꼼수를 쓴다. 거대한 암석을 가운데 두고 그 주변으로 지당을 만든다. 얼핏 보면 방지方池에 자연 암석이 섬으로 있는 모양새다.
인조의 열망은 결국 궁에서 가장 모습이 자유롭고 독특한 형태의 정원으로 탄생한다.
존덕정의 위아래에는 반달과 보름달 형태의 지당이 있다. 지당의 물은 반달에서 시작해 세 개의 방지를 지난 후 보름달로 흐른다. 이렇게 독특한 형태의 정원을 만든 소현세자의 명분은 방지원도方池圓島도 하늘과 땅의 모습을 표현했듯이 달이 차오르는 하늘의 섭리를 정원에 담은 것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존덕정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자신은 반쪽만 왕인 세자에 불과했지만 존덕정 조성 이후에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보름달과 같은 왕으로 거듭날 것을 표현한 정원으로 보인다.
옥류천과 존덕지 사이에는 작은 언덕이 있다. 옥류천은 언덕 북쪽 아래에, 존덕지는 언덕 남쪽 아래에 자리한다. 구석에 숨어 삶을 향유하고자 했던 아버지와 밝게 빛나 세상을 비추고자 했던 아들 사이에는 작은 언덕보다 더 큰 장벽이 있었다. 정원의 명분이 아름다움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름다움의 이면의 모습, 거칠지만 안에 담긴 이야기를 알고 나면 물체에 담긴 성품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성품은 어쩐지 만든 사람을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