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별서, 옥호정, 석파정, 부암동 백석동천
지금의 성북동城北洞 별서別墅가 성락원城樂園으로 불리던 때,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허가 없이 출입이 안 되다 보니, 사진으로라도 공간을 느껴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찾아보며 마음을 달랬는데,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성북동 별서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것은 여러 사람의 사유재산으로 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가구박물관의 관장님이 소유주의 며느님이신데 별서 관리도 겸하고 계셨다. 박물관이 그러한 것처럼 무척 관리가 잘되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안내를 해주신 분도 박물관의 큐레이터셨고, 고급스러운 안내에 훗날 대중에 공개가 되더라도 관리가 잘될 것이라 안심되었다.
별서의 평면도를 수십 번 그려봤던 나는 마치 화면으로만 보던 스타를 실물로 영접한 듯한 기분이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땅 속에 거석들 사이로 계곡 물이 흘렀다. 옆에는 문을 열자마자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인공 언덕을 만들었고 그 위로 엄나무 숲이 울창했다. 언덕 옆을 지나면 정원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더욱 긴장되었다. 그렇게 성북동 별서를 만났다.
정문 앞에 있던 울창한 숲, 땅 속 거석들의 어두움과 완전히 대비되는 밝고 시원한 공간이 나왔다. 영벽지影碧池라 불리는 거대한 암반 위로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자연인 것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인위적인 물길을 파낸 것이 보였다. 겹겹이 쌓인 거대한 암반 위로 떨어지는 나지막한 폭포 주위에는 조선시대 인기 있는 관광지에서 흔한 새겨진 여러 글귀가 보였다. 자연 암반 주위로 정돈된 넓은 잔디밭은 아마도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된 것 같았다. 산속 깊은 골짜기에나 들어가야 볼 수 있을 것 같은 암석과 물줄기가 건물에 둘러싸인 정돈된 마당 안에 들어와 있으니 생소해졌다. 당시에 느꼈던 대단한 에너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지만 보통 2시간 정도는 감상하다가 떠났던 다른 정원과 달리 직원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재촉해야 해서 감흥 역시 빨리 휘발되었다.
자연 암반 정원을 지나 위로 올라가니 사뭇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콘크리트로 처바른 길이자 보의 기능을 하는 지안에 올라서니 너무 어색했다. 방금 보았던 상쾌하고 웅장한 공간과는 다른 조악하고 인위적인 공간 구성에 경악했다. 자연 암반에 건물의 기둥을 맞춘 모습도 그저 다른 문화유산의 요소를 따라한 듯 이상했고, 암반 위를 뒤덮은 콘크리트 옹벽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송석정이라고 불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운영되는 곳답게 귀한 가구들을 볼 수 있었다. 귀한 가구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나 중요한 것은 정자에서 보이는 경치였다. 역시나 경치의 의도를 알 수 없는 맥락 없는 구성이었다. 뭔가 분명 잘못되었다는 느낌은 틀린 것이 아니어서 나중에야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성북구에서 소유자를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마침내 2019년 성락원 개방이 결정되었다. 원래 한국의 3대 정원이라 하면 소쇄원-윤선도원림-서석지를 꼽았지만 이를 뒤엎고 소쇄원-윤선도원림-성락원을 3대 정원이라 부를 만큼 언론에서의 관심도 뜨거웠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성락원이 조명을 받자 영리한 기자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기사를 쓰는 도중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성락원을 만든 이라는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의 연구가 어떻게 거짓이 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이 가짜일 뿐만 아니라, 명승으로 지정된 직후 진행된 송석정 주변 공사마저 엉터리로 진행되어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명승 지정과 토목 공사가 연결된 것으로 봤을 때, 명승 지정과 날림 공사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까지 의심하게 된다. 성락원은 문화재청의 재조사를 통해 고종 대의 내관이자 문인인 춘파春波 황윤명黃允明의 것으로 밝혔고, 명성황후의 피난처이자 훗날 의친왕 이강의 별궁이었으며 그 명칭을 성락원에서 성북동 별서로 바꾸게 되었다.
2019년 드디어 성락원이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사를 접했을 때, 한국 정원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오명만을 뒤집어쓴 채 성락원의 대문은 굳게 닫혀버렸다. 문화재청의 오류가 문화유산 자체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었지만, 내가 느낀 정원의 감동이 거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락원, 지금의 성북동 별서는 조선말 경화세족들의 문화였으며, 한국 정원사에 남을 의미 있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성북동 별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삼청동 계곡에 이제는 그림으로만 남은 정원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풍고 김조순金祖淳의 정원, 옥호정玉壺亭이다. 김조순은 정조의 사돈이고, 순조의 장인이며 조선말 세도정치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나라의 권력이 하나의 가문에 집중되어 조선이 망국의 길을 걷게 되는데 책임이 있는 사람이지만 인품이 어질고 후덕하여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 그의 정원이 탐욕의 결과인지 아니면 순수한 풍류의 거점이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백성의 고통을 의식하며 해결할 의지를 보이기보다, 풍류적이고 향락적이었던 그의 삶이 녹아든 정원에 깊은 뜻이나 배울 만한 정신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조선말, 북학과 외래문화가 유행했던 상류문화를 염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옥호정도의 절반을 가득 채운 산은 백련봉白蓮峯이다. 꼭대기에 적힌 일관석日觀石이라는 각자를 통해 일출을 감상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백련봉은 정원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림의 중심에는 이 봉우리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로 만든 지당과 샘을 두었다. 단풍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지당과 샘은 김조순의 호, 풍고楓皐를 상징한다. 단풍나무 풍楓과 언덕 혹은 못 고皐자인 풍고를 그림의 중앙에 배치하고 전체 정원의 핵심으로 구성한 것은 자기 자신을 정원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김조순의 의도이다.
풍고를 공간으로 풀어낸 별원의 또 다른 이름은 옥호동천玉壺洞天이다. 옥으로 만든 작은 호리병이라는 옥호의 의미를 누군가는 옥병 안의 얼음처럼 깨끗한 마음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호리병 안의 신선의 세계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점은 현실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다. 옥호동천은 살림집과 분리된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옥호동천으로 가는 길을 일부러 좁게 만들고 단풍나무 숲과 수십 개의 괴석들로 꾸며 어둡고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별원 입구를 지나면 넓고 시원한 공간이 나온다. 큰 거석 사이로 대나무 통을 반으로 잘라 물을 끌어온 가조의 시원한 물줄기, 은행나무 그늘 아래 큰 대나무 정자에 앉아 경화세족들이 보냈던 신선 같은 시간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였다.
서울에는 이 밖에도 석파정, 반계 윤웅렬 별장, 부암동 백석동천, 가회동 백인제 가옥 등이 있다. 흥선대원군의 석파정石坡亭은 서울미술관의 옥상에 있으며 미술관에서 운영한다. 사랑채 앞 거대한 소나무가 압도적이고, 그 옆에는 거대한 암벽이 있다. 계곡과 중국풍의 정자 등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과 달리 상당 부분 상실된 듯 공간 구성이 어색하다. 하지만 소나무와 거석, 그리고 건너편 보이는 인왕산의 경치는 석파정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다. 반계磻溪 윤웅렬尹雄烈 별장別莊은 소유주가 거주하고 있어 방문이 불가능하지만 별장 옆으로 흐르는 자연 계류와 암반을 공간 내부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성북동 별서, 옥호정, 석파정과 함께 하나의 궤를 이룬다. 부암동付岩洞 백석동천白石洞天은 원래 청와대 구역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재판 동안 산책을 하다 발견했다. 지금은 터만 남아있지만 북악산을 산책하다 남겨진 빈터에 앉아 쉬면서 원래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다. 정독도서관 근처에 있는 가회동嘉會洞 백인제白麟濟 가옥家屋은 영화 '밀정'에도 등장한 곳이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 옛 주인에 의하면 어머니가 가꾸시던 정원의 모습은 지금 보다 훨씬 풍요로웠다고 한다. 지금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운영하는 가옥의 해설 프로그램을 예약하면 집 안 내부도 관람할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풍고 김조순 연구 / 유봉학 / 한국문화 /199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玉壺亭圖>에 대하여 / 정진아 / 미술자료 / 2017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