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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랑 Apr 05. 2024

정원을 감상하는 너의 시력 2.0

정원 감상법

경복궁 경회루 지원


경복궁 경회루 지원 서남쪽 구석에는 울창한 나무들 아래 의자가 있다. 좀처럼 앉을자리가 없는 광활한 경복궁에서 찾기 힘든 휴식 공간이다. 경복궁 정원 투어를 진행하다 이곳에 오면 자유시간을 주고 20분 정도 휴식을 취한다. 앉아 있다 보면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 분들이 다가오신다. 한국 정원에 대한 질문들, 투어를 듣다가 생긴 궁금증 등을 묻는 질문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가끔 반가운 이야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경복궁 역사 해설, 건축 해설 등등 여러 프로그램을 들어봤는데요. 오늘 들은 내용은 정말 신선하고 좋았어요. 문화유산을 보면서 시선에 대한 생각은 못해봤는데,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보는지가 같은 곳도 달라 보이게 하네요.”


다양한 해설을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흥을 느끼시겠지만 문화유적을 정원의 시점으로 해설해 주는 보기 드문 프로그램이라 신선하게 느끼신 듯하다. 실내 강의도 좋지만 때로 이렇게 여행사를 가장한 당일치기 궁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는 주인이 누린 정원의 시점을 직접 경험해 드리게 하고 싶어서다.



우리가 걷는 길은 주인은 걷지 않던 길



내가 생각하는 정원 감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점을 찾는 것이다. 궁의 화계는 왕비 침전 대청마루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한 폭의 그림처럼 감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마당에서 올려다보지 말고 주변 계단에라도 올라 왕비와 같은 높이의 시선을 찾아야 한다. 어떤 정원은 높은 누마루 위에서 내려다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2층 높이 건물에 올라 정원을 내려다보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낮은 정원에서 반대로 화려한 건축물을 올려다볼 뿐이다. 고택에 가면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눈에 담기는 풍경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고, 별서의 정자에 앉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를 깊게 느껴야 한다.


시점을 찾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높낮이나 위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눈을 가졌던 주인이 되어본다는 의미이다. 폐쇄적인 마당에 작은 창을 내어 계류를 감상하는 곳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리며 노래를 한바탕 부를 순 없을 것이다. 대청마루 아래로 시원하게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정원의 한쪽을 다른 곳에 있던 주인의 또 다른 건물을 옮겨와 가로막는다면 주인의 기상을 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인의 삶이 어땠는지, 인생의 어떤 시점에서 정원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의도를 알게 되고, 그러한 의도가 정원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느낄 수 있다.


주인의 의도는 서사가 있는 동선에 녹아든다. 어떻게 공간을 운영하고자 했는지, 입장하는 방식에서부터 옮겨가는 방식, 마침내 중요 건물에 들어서서 하나의 프레임으로 담고자 했던 메시지를 느낀다. 준비된 경관을 위해 지형을 구성하고, 건축물의 향을 결정하고, 다른 건물들과의 관계를 정리한다. 만든 이의 의도와, 서사가 있는 동선, 그리고 준비된 경관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원 없는 정자는 정자가 아니었음을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정자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챕터가 있다. 정자 만드는 법이라고 해서 건축물을 어떻게 짓는지에 대한 내용일 거라고 기대한다면 나와 같은 당황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실제로 정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다 정자 주변과 시선이 닿는 곳의 경치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 정성을 쏟아 설명하고 있다.


물가 근처로 부지를 정하고 기초를 다진다.
대나무 천 그루로 숲을 만든 다음 그 사이를 통과하는 시냇물을 만든다.
이때 섬돌을 두어 졸졸 소리가 나며 흐르게 한다.
대나무 숲을 울타리로 둘러싼 후, 오른쪽에 대나무만을 사용하여 정자를 만든다.
울타리 밖, 시냇물 건너 맞은편 언덕에 감국, 소나무, 매화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바위로 꾸민다.

산수간에 집을 짓고 / 돌베개 / 서유구 지음, 안대회 엮어 올림 / 본문 내용을 수정하여 재작성


단원 김홍도의 '단원도'


김홍도의 '단원도檀園圖'와 겸재정선의 '인곡유거仁谷幽居'는 임원경제지에서 말하는 정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듯 보인다. ‘단원도'에는 김홍도와 절친 강희언 그리고 정란선생이 있다. 대문 밖에는 손님을 맞이해 주는 버드나무가 인사를 하듯이 숙이고 있다. 문을 열면 바로 정자의 주인을 볼 수 있게 구성한 것은 당당하고 숨김없는 김홍도의 성격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나무는 다름 아닌 벽오동이다. 초록 수피로 곧게 뻗어 올라가는 벽오동을 가까이 둔 것은 소쇄원과 같이 벽오동 위에만 내려앉는 봉황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시선에는 소나무, 파초, 대나무, 버드나무가 모두 담긴다. 가까운 곳에 수련인지 연꽃인지 모를 수생 식물이 연못을 채우고, 괴이한 괴석을 연못 한쪽에 두어 물과 돌과 식물이 어우러졌다.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 역시 주인이 있는 사랑채는 한쪽 구석에 두고 오동나무와 담쟁이, 버드나무로 중앙을 가득 채웠다. 인왕산 인곡이라는 골짜기에 거하는 자신을 표현한 것으로 물리적으로는 건물 안에 거하고 있지만 그의 정신이 거하는 곳은 중앙의 정원인듯하다. 원래 있던 나무들인지 그가 심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연이라기에는 나머지 공간이 비워져 있는 것이 어색하고, 인공이라기에는 인간의 손길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두 그림 모두 핵심은 주인이 앉아 있는 건축물이지만 그림의 전체 구성은 정원으로 채워졌다. 주인의 눈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가 건물의 이유이다.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





한국정원의 가치를 전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정원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쓰고  말합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원에서 우리 문화를 느끼고, 해외에서 온 여행객의 일정표에 우리 정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정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


달빛 아래 너랑 나랑, 월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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