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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이 Aug 15. 2021

언니는 우리 가게 VVIP이에요

- 홍대 옷거리


 제가 올해 봄에도 카디건이랑 치마가 예쁘다고, 옷을 잘 입는다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어…. 정말 감개무량했죠. 제가 사실 옷을 잘 보고 잘 입는다고 보긴 어렵거든요. 옷의 품이나 어깨 모양, 팔 통 크기, 소매 디테일, 단추 같은 건 잘 안 보여서 전체적인 느낌만 보고 옷을 샀다가 한 번도 못 입기도 하고, 나랑 어울릴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예쁘면 샀다가 거울 앞에서 처참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아무튼, 그래서 요즘 그래도 옷에 대한 칭찬을 들어서 너무 기뻤고, 이 공을 홍대에 계신 이름 모를 사장님들 두 분께 돌리고 싶습니다.

홍대에서 일한 덕분에 종종 홍대 옷거리에 가곤 했는데요, 그중 두 가게 사장님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거 입어봐라, 저거 입어봐라, 그건 파인 것도 아니다(‘사장님, 이건 너무 파인 것 같아요’), 왜 그러냐(?), 하면서 어울릴 만한 다양한 옷을 골라주셨어요. 홍대에서 산 옷들이 사실 옷의 재질이 다 좋은 편은 아닌데요, 디자인이 그냥 제가 백화점 세일 코너에서 사는 물건들보다 세련된 것 같아요(디자이너 의류 디자인과 유사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20대 중반부터 자주 가던 가게가 있는데요, 제가 꽤 자주 갔고, 가면 옷을 왕창 사 왔기 때문에 가게 사장님이 ‘언니는 우리 가게 VVIP’라며, 반갑게 맞아주고 새로 나온 옷들을 추천해주곤 했어요. 많은 홍대 옷가게 중에서 전 소나무같이 그 가게만 다녔었는데 제가 그곳에서 국방색 코트를 사 버린 이후 다른 가게도 기웃거리게 되었어요. 코트가 멋져 보여서 샀는데 집에서 그 옷을 본 엄마가 ‘화투판 담요’ 같다고 계속 말씀하셔서 옷을 교환하러 갔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일주일은 지나서 갔던 것 같아요. 사장님께서는 이거 판매할 때 가지고 왔어야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셨어요. 지금 생각하니 그럴 만한 게 맞는데, 문제는 제가 굉장히 마음이 여린 편이라서(여리다고 포장하고 소심하다고 덧붙여 말하며 그때는 어렸다고 사족을 붙인다), 그 이후에 그 가게엔 잘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가게들을 하나둘 찾아봤는데 왠지 맘에 드는 옷들이 있는 가게가 있더라고요. 근데 그 가게들 옷에 붙은 택이…. 제가 원래 다니던 가게 택이랑 똑같더라니까요. 이런이런, 정말 취향 하나는 소나무예요!

 이제는 근무지가 바뀌어서 마음을 먹어야만 홍대에 갈 수 있거든요. 간 지도 꽤 오래되어서 이제 여름옷이 없어요(홍대입구역은 주차비가 비싸거든요). 다음 주에 좀 가 볼까요? 아, 다음 주에는 책도 만들러 가야 하고 연수도 있었어요. 이렇게 멋쟁이와는 또 한 걸음 멀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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