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순간은 다 필요 없을 줄 알았다

왜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by 강현주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서 잠깐 멍하니 아무 생각을 못 할 때가 있다. 파도 소리에 집중해서인지 파도의 움직임에 매몰돼서인지, 나도 모르게 나를 잠시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내 마음은 왜 그렇게 자꾸 희한한 곳을 향하려고 했을까? 나를 잊은 채 마냥 누군가에게 그렇게 의지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피하면 되겠지, 그냥 무시하면 되겠지 하면서 자꾸 나를 외면하려 했던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시 조용해지면서 ‘그땐 왜 그랬을까?’ 한 번 더 추억에 잠기곤 한다.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어디서 그렇게 하면 된다는 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던 20대 시작 지점은 나에겐 커다란 동굴을 들어가는 입구 같았다. 입구부터 보더라도 일단 시커먼 색깔이 나를 섭렵하고 있었고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공기가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나 혼자 산다’의 첫발이었다. 발버둥 쳐서 들어간 것이 아닌, 아주 조용히 차분한 마음으로 두려움과 무서움에 취해서 침이 꼴깍하고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있더라. 만약 그 동굴을 지나지 않았다면 지금은 어떤 상황이 펼쳐져 있을까? 이 상상도 여러 번 했었다. 과거의 선택 때문에 만들어진 현재의 내 모습이기에, 또 다른 선택을 하면서 살았다면 과연 어떤 나를 만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



새로운 동굴 속으로 들어가 보니 너무도 깊어 보였다. 아무것도 감지할 수가 없었고 보이는 것도 없었다. 어두운 정적과 내가 하는 물음의 울림만이 나에게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누굴 만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처음에는 그 어두움에 벌벌 떨어야 했지만,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둠은 밝은 빛을 만나러 가는 길의 시작. 어둠이 있는 이유도 빛을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 머물고 있을 땐 그곳에 어두운지 모를 정도로 잠시 잊을 때가 있듯이, 몸은 그 어둠에 이미 적응해서 어둠 속에서도 무엇인가 보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것이 인간이나 동물이 가진 아주 기묘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익숙해져 버리면 그 어둡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도 익숙해진 뒤 그곳에 나쁜 곳이란 걸 잊고 살아간다. 그래서였을까? 20대의 어두운 동굴은 점점 나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어 버렸고 나도 모르게 그 동굴을 서슴없이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분명히 부모님이나 누군가의 손길과 관심을 요구하고 있었을 사회초년생은 그것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계속 자신의 본 모습과 마음은 놓아둔 채 앞으로 가려고 애썼다*.


*애쓰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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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표나 중심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해보지도 못했던 일부터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과 누군지도 모르던 사람들과 힘겨운 경쟁 속에서 그래도 살아보려고 애쓰던 그 마음은 지금도 아련히 떠오른다. 밟아가야 할 다리는 어마어마한 길이로 내 앞에 놓여 있었고 어둠 속에서의 그 긴 다리를 건너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자 경험이었다. 누가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 누가 따라오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은 인생의 동굴 속에서 유유히 그렇게 걷고 있었고 조금씩 손으로 만져지고 피부로 느껴지는 다양한 것들로 내 감각과 신경은 곤두서 있었다.



왜 자꾸 쓸데없는 생각만 할까?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면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이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상황을 해결하고 이겨내는 방법과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 해결하는 방향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곳을 나아가는 방법과 속도는 모두 달랐다. 다행이었던 것은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정해진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길은 분명 많은 사람과 함께 가게 되어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새로운 길을 향해 나 혼자 걸어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두렵고 쓸쓸하더라도 그 길의 의미는 또 다를 것이란 나의 믿음과 함께 그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생각했던 것과 같이 새로운 길은 험난했고 아무런 좌표나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었다. 차가운 바람과 짙은 안개 만이 내 앞에서 계속 펼쳐질 뿐이었다.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걸까? 왜 그렇게 힘든 길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내 모습은 ‘정말 특이하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위의 사람들이 그렇게 보더라도 나는 상관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곳을 향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 스스로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겨났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만의 모습이고 색깔이었던 것. 그것을 느끼면서 더욱더 당당해지고 싶다는 희망이 생기고 또 다른 나의 숨겨진 모습은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색다른 모습을 찾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본모습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할 텐데 새로운 것을 찾는다는 것은 강한 용기와 심각한 상황에 부딪혀보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나를 빛내야 그 으로 이 어둠 속을 지치지 않고 끝까지 버텨낼 수 있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저 끝에 펼쳐진 낙원을 상상하며 내 마음에 불을 밝히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어릴 적부터 ‘잠 순이’였던 나는 우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하나씩 바꿔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습관 하나 바꾸기도 쉽지 않았고, 습관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수십 년간 계속 반복하던 생활 습관 하나를 바꾸기 위해 게을러져 버린 나 자신과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속 관찰해야 했다. 만약 오후 수업 시간이 정해져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서 눈곱을 떼며 일어나던 내 모습.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점심도 못 챙겨 먹고 이만 닦은 뒤 후다닥 강의실로 향하던 그때의 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점점 나에 대해 관찰하고 그 관찰한 것을 차분히 일기장에 적어 내려가 보았다.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고, 무슨 일이 있었으며, 누구랑 만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눴었는지 등 나의 행선로와 경험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글로 작성했다. 다행히 일기 습관은 어릴 적부터 방학 숙제로 제출하던 방학일기를 기점으로 자주 작성된 일기장을 들춰보던 내습관 덕분에 작성하는 맛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작성하면서 기분 안 좋았던 것을 적어 놓았다고 해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그날의 일기 내용을 살펴보면 마냥 신이 나고 미소를 짓게 된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때 당시에는 눈물 나는 일인데, 미래에서 다시 과거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참 여유로운 순간인 듯하다. 순수했던 마음과 여린 속마음이 그 일기 속 한 장의 추억을 통해 느껴볼 수 있으니, 영광이다. 만약 그 짧은 글도 작성해놓지 않았다면 나는 그 상황을 그냥 아무 의미 없다는 듯 잊고 살았을 텐데, 적어둔 일기 내용 덕분에 나는 아직도 나의 과거를 알고 그것으로 인해 지금의 나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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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자신을 관찰하고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자신도 모를 심오한 깊이가 순간적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그 깊이란 말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자기 스스로만 알 수 있는 묘한 기운이다. 가족들이나 친한 친구에게도 말 못 할 일이 하나 더 생기게 된 것이니 나만의 추억 일기장 속에 간직할 수 있다. 그 비밀의 공간 같은 일기장은 그렇게 나의 큰 재산이자 보물이 되었고, 값으로도 매길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돈이나 주식을 준다고 하여도 이 가치는 전해줄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은 나의 어렵던 시간이 모두 무용지물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일기장에 남을 정도로 소중한 추억이 되었으니, 이젠 그 시간도 아깝지 않고 필요가 없는 것들이 아니다. 하루하루 시커먼 기운에 찌들어 살아가던 시간도 언젠가 빛을 발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어두운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밝아야 하는지 나의 밝기를 측정할 수 있고, 그 어두움을 만났기 때문에 길고도 험한 시간 속 경험으로 나의 강인함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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