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시 신평양조장
처음 아빠와 여행을 시작할 즈음, 동화 한 편이 떠올랐다. 바로 ‘효녀 심청’이다.
고백 건데, 나는 늘 심청을 읽을 때마다 뜨끔하곤 했다. 이토록 효성 가득한 딸이 세상에 정말 있을까? 내가 심청이라면 인당수 제물로 몸을 던질 수 있었을까? 나는 효녀 심청이 아니라 팥쥐 같은 딸인데. 생각해 보면 심청뿐만이 아니다.
백설공주,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를 읽을 때도 단팥빵 한 움큼 먹은 답답함이 몰려왔다. 왜 그녀들은 아빠에게 그리도 착한 딸이어야만 했을까? 나 같으면 저리 안 산다며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제 하곤 했다.
다시 심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효녀 심청과 아버지의 반가운 재회 장면에는 하얀 예쁜 꽃이 하나 나온다. 심청이 인당수 제물로 바다에 빠져 용궁에서 삼 년을 지내다, 아버지를 향한 효심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지상으로 심청을 '연꽃'에 태워 돌려보낸다. '연꽃'은 이리도 아련한 부녀의 상봉에 큰 역할을 하는 고마운 꽃으로 나온다.
연꽃의 꽃말은 '청정과 순결'. 심청의 아빠를 향한 효심 때문이었을까?
어릴 적 읽은 전래동화 속 하얀 연꽃은 지금도 뇌리 내 기억 속엔 심청을 닮아야 한다는 효녀를 떠올리는 꽃이곤 하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효녀 심청은 뭔가 짠하다. 나 홀로 밥 벌어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살이인데, 아빠까지 부양하고 책임져야 했던 삶의 무게가 오늘날도 다르지 않은 것만 같다. 사회가 변했다 하지만, 부모를 책임져야 하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마냥 가볍지 만은 않은 현실.
내가 말하고픈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자. 아빠와 함께 여행을 떠나야지. 훗날 연꽃을 타야 하는 고생을 하지 말고 지금 연꽃을 보여 드려야지 '다. 연꽃축제가 한창이던 충청남도 당진으로 아빠와 여행을 떠났다.
충청남도 당진시에 연꽃잎을 넣어 우리 술을 빚는 양조장이 있다 하여 여행길을 나섰다. 당진으로 향하는 길, 아빠는 당진 간척지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으신다. 원래 바다였는데 간척지를 해서 한국 경제가 살았다며, 대단했던 시절이라며 회상을 하신다. 신평양조장에 도착하자, 김용세 전 2대 대표가 마중을 나오셨다.
이곳은 현재 3대째 가업을 물려받은 김동교 대표가 운영하고 있다. 신평양조장은 2013년 ‘찾아가는 양조장’ 지원사업에 첫 번째로 선정되었는데, 그 이유는 양조장을 둘러보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시간의 나이테라 할까? 세월의 더깨를 고스란히 담은 종국실 간판과 6.25 전쟁 때도 자리를 지킨 벽시계까지. 양조장에 들어서면, 옛 일제강점기부터 자리해 온 양조장 내부는 옛 모습 그대로를 품고 있다. 90년 가까이 오로지 술 빚는 일에만 몰두했던 공간에는 선조의 손길이 지금도 곳곳에 묻어나 있다.
양조장 바로 옆에는 백련양조문화원이 위치해 있다. 신평양조장의 옛 문헌과 사진을 전시하고 있으며, 양조 체험 및 시음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신평양조장의 대표 술은 발효 과정 중에 하얀 연꽃잎을 넣어 만든 백련막걸리다.
생막걸리 ‘Snow’는 6도수로 2009년 청와대 만찬주로 지정되기도 했으며, 살균막걸리 ‘Misty’는 알코올 7도 수로 Snow 보다 살짝 도수가 높다. 막걸리를 잔에 따르니 ‘흰 빛깔의 연꽃’ 이란 이름처럼 눈처럼 새하얗고 곱다. 살짝 들이키니 씁쓸하고 텁텁하다 뒷맛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막걸리 병에 그려진 선비처럼 유한 맛이다.
백련막걸리는 신평양조장이 직영 중인 서울 강남역 인근의 주점 ‘셰막’에서도 맛볼 수 있는데, 젊은 친구들에게 인기 만점인 술이다.
네이버 어린이백과에 따르면, 심청이를 효녀라 부르는 이유가 네 가지나 있다고 한다.
먼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서 효도한 거고, 아버지를 먹여 살려 효도한 거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걱정을 짊어져서, 아버지의 눈을 위해 목숨을 버려 효도한 것이라고.
이러한 효도의 결말로, 심청의 깊은 효심에 하늘이 감동해서 아버지가 눈이 띈 것이라고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한 가지는 확실히 효녀의 조건을 갖췄다.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나 효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른이 돼서 읽은 효녀 심청은 독후감 숙제로 끝나지 않고 현실판 효도라는 숙제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지만 애써 기분 좋게 생각했다.
효녀의 조건이란 게 따로 있을까? 이렇게 둘이 오붓하게 여행하는 게 바로 진정한 효도이지 않을까. 깊은 효심을 지닌 심청이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늘 밤은 아빠에게 하얀 연꽃을 품은 우리 술, 백련막걸리 한잔 건네야겠다.
글 오윤희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제 맥주 여행에도 함께하곤 했던 ‘볼 빨간’ 동행, 아빠를 벗 삼아 말이죠.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사진 김정흠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갑니다. 아빠와 딸이 우리 술을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습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신평로 813
오픈: 매일 10:00~17:00(일요일, 공휴일 휴무)
전화: 041 362 6080
홈페이지: www.koreansul.co.kr
요금: 시음 및 관람 무료(10:00~14:00, 10분 이내)
양조 체험 | 명예 막걸리 소믈리에 과정, 증류주 내리기, 쿠키 만들기 등 시간 및 가격 상이(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