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 | 제8편
자신의 저택의 중앙에 위치한 피아노는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가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이래로 휴식을 가질 수 시간은 오직 오랜 연주로 망가진 소리를 다시 재정비하는 조율 시간밖에 없었다. 폰 파라디스는 오늘도 피아노 건반을 더듬어가며 이 아이와 함께 음악의 세계를 느릿느릿 산책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맹인 아이들의 실태를 듣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며칠 동안 보고받은 폰 파라디스는 가장 마음이 쓰이는 아이부터 한 명씩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하여 알파벳, 문장, 문학, 철학, 음악까지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이 아이를 교육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음악이라는 밝은 빛으로 인도받은 아이는 이윽고 단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두 명에서 세 명으로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저택은 서툰 피아노의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대 최고의 여성 피아니스트가 오직 박애와 귀족의 사명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어느 순간 그의 가르침을 받고 싶은 사람들의 지원으로 저택 앞은 항상 방문자들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의 수업이 없는 날의 폰 파라디스는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자신의 삶의 등불 옆에 위치한 또 하나의 등불에 틈틈이 불을 지피웠다. 자신의 또 하나의 등불, 바로 자신의 음악 작품을 위한 등불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쁜 일정 와중에도 틈틈이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폰 파라디스는 여행에서 조그만 시간이 허락한 소박한 가곡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만의 거대한 작품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은 특히 자신의 또 다른 축복 중 하나인 성악을 위한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위해 매일 광활한 음악이라는 우주를 산책하곤 하였다. 떠오르는 악상을 작곡판으로 조립하였다. 작곡판에 붙잡은 그 악상과 함께할 가사는, 이제는 오랜 여행 동안 다양한 책상을 오가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타자기를 통해 입력하여 작곡판과 함께 그 출력된 종이를 고정시켜놓았다.
헝가리 태생의 발명가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정 참의원이었던 볼프강 폰 켐펠렌 Wolfgang von Kempelen.
당대에 전 유럽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할 신비한 발명품들을 선보인 그는 자신이 만든 최고의 역작을 당시 합스부르크를 통치하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에게 바쳤다. '터키인 체스 기계 Mechanical Turk'라는 이름을 가진 그 기계를 공개하는 순간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비롯한 궁정의 모두는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그가 선보인 발명품은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터키의 예복을 입고 하얀 터번을 두른 터키인 인형이 책상이 놓여있는 체스판 옆으로 한 손을 올린 채 앉아있었다. 더 신기한 것은 인형의 팔이 저절로 움직여 눈앞에 앉아있는 도전인과 함께 체스를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궁중의 모든 사람들은 저 커다란 탁상 안에 사람이 있어서 인형을 조종하지 않을까 의심하였지만 켐펠렌은 즉시 탁상 밑을 열어 그들의 의심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탁상 밑은 그저 알 수 없는 부품들로 꽉 들어찬 채 사람이 숨을만한 공간은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날 악마가 조종하는 듯한 이 기묘한 기계와 인간이 서로 붙은 이 체스 게임에서 인간은 패배를 맛보았다. 이후 이 악마 같은 체스 기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행렬은 잠시도 끊어지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패배를 모르는 그 위대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eon Bonapart도,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칭호를 받은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도 이 기계가 두는 체스 앞에서는 패배라는 쓰디쓴 물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이후 80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이 기계의 비밀은 바로 탁상 밑에 숨어있던 체스 마스터, 바로 사람인 것으로 판명 나게 되었다. 비록 기계가 아닌, 사람의 두뇌를 이용해 만든 체스 기계였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많은 기계들과는 다른 양상을 띄었다. 각 상황에 맞춰 수만 가지의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기계. 오늘날의 많은 학자들은 볼프강 폰 켐펠렌이 인공지능, 바로 A.I. 의 개념을 세간에 소개한 발명가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인공지능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에는 항상 켐펠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인물이 언급되었다. 당시 인간이 절대로 이기지 못하는 체스 기계를 만들어낸 이 발명가는 눈이 보이지 않는 가수 겸 피아니스트,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를 위해 이 여성이 보다 더 편하게 글을 작성하기를 바라며 그만을 위한 하나의 발명품을 선사하였다. 하나의 글자를 누르면 즉석에서 문장이 입력되는 동시에 인쇄가 되어 편리하게 즉석에서 문서나 편지를 작성할 수 있는 기계. 바로 타자기를 발명하여 두 눈이 보이지 않는 기적 같은 여성에게 하사한 것이다. 켐펠렌이 준 타자기를,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이제는 편지보다는 작곡을 위해 사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자신의 인생을 바꾼 첫 여행을 마치고 오스트리아에 돌아온 지 어언 10년이 흘렀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여행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폰 파라디스의 친구들은 자신의 소중한 두 눈이 먼 이 여성에게 두 번째 음악 여행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반도를 시작하여 동유럽을 거쳐 러시아로 가는 것은 어떨지 말이다. 하지만 이내 폰 파라디스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현재 자신이 계획한 자신만의 작품에 몰두하고 싶기 때문에, 그리고 음악을 갈망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지식이라는 달디 단 물을 건네 갈증을 해소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서른 살이 되고 두 해가 지난 1791년의 어느 날, 자신과 함께 음악의 본질을 들여다봐주었던 음악 동료의 뜻밖의 소식으로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겪기도 하였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음악계를 이끌어 간 자랑스러운 자신의 벗,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은 폰 파라디스는 자신의 두 손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게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서른이 되었던 해에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독일 전역을 돌아다녔던 그가, 이제는 어려웠던 재정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 한번 마음 놓고 편안하게 음악의 세계에 몰두할 수 있었던 그가, 보석 같은 오페라와 다채로운 협주곡을 작곡하며 다시 한번 음악의 불을 지폈던 그가 갑작스럽게 이제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았다. 안타까운 나의 벗. 오스트리아를 넘어 전 유럽에 자신의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큰 환호와 갈채를 받았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개인 묘지를 수여받지도 못한 채 공동묘지에 아무 표시도 없이 묻혀 시신조차 찾아볼 수 없는 나의 벗.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피아노 앞에 앉아 이제는 다시는 세상을 전부 뒤져도 만날 수 없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그가 세상에 남긴 주옥같은 작품을 조용히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또 어느 해는 오스트리아의 성실한 통치자, 레오폴트 2세 Leopolds II의 목전에 갑작스럽게 닥친 의문스러운 죽음의 소식을 듣고 자신을 지지해준 그에게 자신의 재능으로 그를 위한 애도의 칸타타를 작곡하였다. 어느 해는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으며 그들을 위한 더 효과적인 교육에 관해 고찰하며 틈틈이 학생과 관련된 오페라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어느 해는 자신에게 풍족한 음악의 인생을 안겨준 친우, 요한 리딩거가 직접 창작한 각본을 자신 앞에 당당하게 들고 와 낭송으로 받은 커다란 감동을 안고 성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칸타타를 작곡하였다.
그리고 그날. 기사 리날도와 그가 사랑하는 연인 브라타만타, 기쁨의 섬을 지배하는 요정 알치나와 그가 부리는 님프와 악마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난 그날. 루드비히 폰 바츠코 Ludwig von Baczko가 창작한 '리날도와 알치나 Rinaldo und Alcina'를 접한 폰 파라디스는 전율을 금치 못하였다. 기쁨과 환상, 그리고 모험이 가득한 이 각본은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를 위해 이 세상에 등장한 작품 같았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여성은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한 이후 자신의 열성을 다하여 거대한 무대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하였다. 비록 자신이 만든 장대한 무대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순 없지만 웅대한 극장을 미려한 음악으로 가득 채울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완성된 3막의 희극 오페라 '리날도와 알치나'는 1797년 체코 프라하의 오페라 극장에서 울려 퍼졌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음악을 외면한 채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첫 여행에서 오스트리아로 돌아와 3개의 칸타타와 5개의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작곡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의 음악은 1797년, 체코의 대중들이 보여준 모습처럼 점점 그의 음악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새로운 음악은 폰 파라디스가 아는 음악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가 아는 음악은 하나의 동기가 발전하고 확장하는 형태였다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려는 음악은 흐르는 강물처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형태로 변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폰 파라디스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함께 그 모습을 변화시키는 음악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자신의 음악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상이 원하는 음악으로 변화해야 할까. 폰 파라디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만의 음악을 배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여,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 갈 존재들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바로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체코에서 겪은 대중들의 반응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음악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과 함께하기로 하였다.
오늘도 자신의 저택의 중앙에 위치한 피아노는 쉴 틈이 없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끊임없이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여성의 손을 통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여러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눈이 보이는 아이들도,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자신의 저택 안에서는 음악이라는 평등한 예술 안에서 서로 어울려 폰 파라디스의 음악을 토대로 자신만의 음악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폰 파라디스는 옛 일을 회상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큰 배려심 속에서 음악의 세계에 깊게 들여다본 일, 한 의사를 만나 내면의 자신을 만난 일, 그리고 시력을 찾아가며 겪었던 인생의 가장 끔찍한 일, 전 유럽의 무대 위에서 음악의 왕으로 군림하여 청중들을 휘어잡은 추억,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모차르트가 자신을 위해 선물한 협주곡을 받아 연주한 추억, 그리고 자신만의 음악을 출판하여 첫 악보를 자신의 손에 쥐어본 추억.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다 세상에서 가장 경쾌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온 폰 파라디스는 지긋이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삶에서 가장 원했던 일을 다시 찾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오스트리아 여러 계층의 여자 아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두 눈이 먼 자신의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이들 중에서는 눈이 보이는 여자아이도,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아이들도 있었다. 평소라면 서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이 아이들은 마음속에 자신만의 음악이 들어서기를 기대하며 이 두 눈이 먼 선생님 앞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기 시작하였다. 1808년, 이제는 50세가 다가오는 초로의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장애와 상관없이 음악을 갈망하는 모든 여자 아이들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자신만의 음악 학교를 설립하였다. 음악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 없이 모든 학생이 피아노, 노래 및 음악 이론 수업을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 이 학교는 이윽고 오스트리아 내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가장 점진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이 학생들은 폰 파라디스 선생님과 저명한 여성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음악 이론을 고스란히 전수받아 작곡을 하며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재능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였다. 두 눈이 보이는 아이들은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배려심과 함께 수준 높은 아마추어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마리아 테레지아 폰 파라디스는 평등 아래 아무런 무시와 차별이 없이 서로 성장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입술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행복으로 올라가 한껏 미소를 지어지는 것을 느꼈다.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의 일취월장하는 음악 실력은 일요일마다 오스트리아의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각 아이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스며든 음악 작품과 뛰어난 실력을 갖춘 노래, 그리고 피아노 연주를 무대에 올린 일요일 콘서트는 어느 순간 비엔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항상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회에서 쓸모없을 거라 여겨졌던 맹인들. 그들은 평등한 교육 속에서는 천재가 아니라도 그 누구나 예술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점점 비엔나의 대중들이 시각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바라본 비엔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변화의 중심에 서있는 눈먼 음악가를 바라보았다.
한 때 비엔나를 들썩인 시각 장애인 음악가.
모든 영광과 명예를 가진 그 시각 장애인 음악가.
이제는 그 영예를 뒤로한 채 무대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어두운 곳에서 더 빛나는 그 시각 장애인 음악가는 아이들이 연주하는 음악의 소리를 음미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