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이를 내놓으려면

by 앰버

나는 결혼생활을 시작한지 만 5년이 넘은 사람이다.

자녀는 없다.

만들지 않았다.

만들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결혼한 내 친구들은 모두 아이를 한명씩 낳았거나 원하고 있다.


비혼이 아니라면 결혼하고서는 한 명 정도는 자녀를 낳는 것 같다.


아직 다들 어린 아이를 보느라 둘째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다들 하나면 충분하다는 얘기를 한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도 이미 인구감소에는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도 (증)손주 보기를 원하는 윗 세대의 요구가 있기는 하지만,

출생에 따른 책임감은 오롯이 우리 부부의 것으로 느껴지기에 엄두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공동육아가 불가능한 내 상황이다.

내 생각에 꼭 부부가 맞벌이 출근을 해야만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휴직중이더라도 24시간 육아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잠시 숨을 돌리게 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내가 육아를 하느라 바쁠 때 대신 집안 살림을 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아이를 멀리서 예뻐하며 볼 수 있는 틈을 줄 사람도 필요하다.


24시간을 육아에 올인하며 미쳐버리는 나를 스스로 지켜보고 싶지 않다.


두번째 이유는 사회적 안전이다.

전 연령 불구하고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다.


타인을 향한 이유없는 분노가 가득 차 해꼬지를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린이를 보호하겠다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차량에 의해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그 길에서 더 속도를 내겠다고 항의한다. 이 사회는 아이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어찌저찌 성인으로 빚어서 독립을 위해 사회에 내보낸다고 한들,


육체적 노동은 사회적으로 천시받아 다들 화이트컬러가 되는 좁은 문으로만 향하고 있고,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어마어마하게 쓴다는데, 그 행렬을 내가 외면할 수 있을까?)

설령 취업을 한다해도 사회는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그 어디서든 일하다가 (천재지변이 아닌 사람 탓으로 다른) 사람이 죽어도 대부분 놀라지 않고 화내지 않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피해자 탓을 하는 사회에서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 하나 늘어난다면,

특히 그 사람이 아직 미성숙한 개체라면 아마 100%의 확률로 나는 신경쇠약에 빠질 것이다.


예민한 삶을 더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불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