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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울 Sep 08. 2024

공황장애

경험은 중요하지만, 이런 경험은 싫습니다.

누구에게나 경험은 중요하다.

사소한 것부터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큰 경험까지.

경험의 종류와 크기는 다양하지만, 모든 경험은 내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를 걸렸던 경험도 초기에는 마치 죽을병이 걸린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던 병이 지금은 단순 감기로 비교되는 것처럼 경험도 시절에 따라 농도가 다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의 농도가 얕아질수록 내 기억에서도 조금씩 흐릿해져 간다.


사랑도 비슷하다. 첫사랑은 모든 걸 줄 수 있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이별을 겪고 사랑을 두 번, 세 번 할수록 사랑을 대하는 진심이라는 마음의 농도가 점점 옅어져 갔다. 만나는 사람이 다르더라도 경험이 많아질수록 사랑을 대하는 태도가 점점 변해갔다. 물론,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첫사랑을 했던 것처럼 돌아가기 마련이었지만 그 이외에는 사랑을 대충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사랑을 여러 번 했던 것 같다. 과연 그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랑에도 분명 경험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사랑을 여러 번 할수록 나와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분명 모든 경험은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친구들과 싸웠던 기억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망한 것도, 좋지 못한 이별도, 짝사랑을 했던 모든 기억도 그 시절에는 창피하고 기억하기 싫던 일들이 지나온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들이 교훈으로 변화되어 남아있다.


하지만, 공황장애는 아니었다. 아니, 달리기를 이제 시작한 사람에게 벽을 세웠었다. 이 벽은 너무나도 높고 단단했기에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나에게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존재였다. 벽 앞에 섰던 나는 그 벽을 밀어보기도 넘어서려고도 하고 그 벽을 이겨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봤었다.


슬프게도 나는 평범한 사람이기에 그 벽을 넘어설 수 없었다. 벽은 나에게 절망을 선물했다. 높던 자존감은 바닥 끝까지 곤두박질쳤고 넘쳐흘렀던 꿈들은 이룰 수 없는 상상으로 바뀌어갔다. 일상생활도 불가능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매일 하며 나 스스로 나를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아마 공황장애는 내가 직접 만들어낸 마음의 병이 아닐까 싶다. 이 병이 별 것 아니었다면 감기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걸렸겠지. 당장 집 앞 편의점만 다녀와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공황이 짙어질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닌 본다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보고 싶지 않았다. 나만 힘든 것 같았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런 생각은 타인처럼 평범하게 살았던 과거의 나를 질책하기 시작했고 질책은 산처럼 쌓여 원망을 넘어섰다. 모든 게 과거의 내가 만들어 놓은 무대인 것 같았다. 분명 그 과거에 원인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를 훓터보기 시작했다. 가까운 사업했던 나부터, 사업하기 전 퇴사를 결심했던 나, 대학생 때의 나, 군인시절의 나, 그리고 학창 시절까지. 꼬리는 꼬리를 물고 내 인생의 모든 나를 탓했다. 너네가 있기에 가장 중요한 지금의 내가 힘든 거라고, 왜 너희가 만들었던 수 많던 슬픔들을 모아서 나에게 준 것이냐며 수많은 나를 싫어했다.


과거 시절의 나들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그들을 모두 지울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가장 쉬웠던 핸드폰 속 앨범부터 지워갔고, 친구들과 찍었던 인화사진들을 찢어갔다. 어린 시절을 간직했던 추억 속 앨범을 찢기도 하고 심지어 나에게 주었던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을 버리기도 했다.


이런 행동들이 정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게 했던 날도 있었다. 누군가 보기엔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이었다.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원했던 것일까? 나 이렇게 힘들다고 표현을 했던 건 아닐까. 무모하던 표현이 남에게 보인다면 진심으로 걱정해주지 않았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으로.


잘못된 행동들이 올바른 행동으로 착각하고, 이런 행동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을 했었다. 그런 마음은 대체 누가 만들었던 건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두렵게 만들었던 건지. 과연 이 모든 행동들이 온전히 공황장애라는 단어로 책임을 물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큰 역할을 했던 걸까?


공황장애는 단단했던 마음에 금을 주었을 뿐인데 그걸 이겨내지 못한 내 마음이 여려지고 깨지기를 반복하며 수많은 악순환의 반복을 만들었던 것 같다. 공황은 단지 핑계일 뿐 결국 그걸 이겨내지 못한 내 마음의 문제이기도 했다.


공황장애는 힘들다. 어떤 사람이건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고통은 그 고통이 약하더라도 두려움이 앞서기 마련이다. 평범하지 않는 통증이다 보니 통증에 비해 두려움이 더욱 컸던 것 사실이었다. 단지,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나의 문제이기도 했다.


물론, 이 글을 보는 공황장애에 걸린 모든 이들은 내가 겪는 모든 문제는 공황장애 때문이고 내가 이 글에서 했던 말들을 전부 부정할 수 있다. 나 역시 심했을 때 봤다면 전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고통 속에 빠져 계속 지내기엔 나라는 사람이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

나라는 사람을 영원한 통증 속에 가둬두질 않길 바란다.

그 통증에 대한 해결책은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병원, 관련서적, 지인들의 말. 분명 위로를 줄 순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해답을 줄 순 없다.


당신은 단단한 사람이었다. 단지, 지금 약간의 금이 갔을 뿐이다.

금이 더욱 커져 깨진다면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금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메꾸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당신은 할 수 있는 사람이니.


 

#농도

#경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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