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여행 - 나이아가라 폭포 편
나이아가라는 왜 나이아가라인가
언제부턴가 지명의 유래에 집착한다. 지명 속에는 그곳의 역사나 지역특색이 반영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만큼 지명이 뒤죽박죽인 나라도 없다. 인디언, 영국, 프랑스, 스페인어 등등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이아가라의 유래를 찾아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지명들은 대개 인디언의 언어에서 유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캐나다 (Canada) - 인디언 이로쿼이족의 말 ‘마을 (Kanada)’에서 유래
온타리오 (Onterio) - 이로쿼이족의 말 ‘반짝이는 물 (Skanadario)'에서 유래
토론토 (Tronto) - 휴런 족의 말 ‘만남의 장소 (Tkaronto)’, 이로쿼이족의 말로는 ‘물속의 숲'
오타와 (Ottawa) - 오다와 족의 말 '교역자 (adawe)'에서 유래
나이아가라 (Niagara) - 인디언의 말 ‘천둥치는 강 (Niagar)’에서 유래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는 인디언의 언어는 언제보아도 매력적이다. 오래 전 영화 <늑대와 춤을>때문에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을 했던 것이 생각나기도 하고.
나이아가라로 가는 길
여행할 때는 가급적 지인의 집에 묵지 않는다. 여행이 아닌 방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군의 가족상봉이 가장 큰 목표였기에 그의 누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토론토 노스욕 한인타운의 방 2칸짜리 아파트. 누님 부부는 부부의 침대를 우리에게 내주고 아이들 방에 자리를 펴 놓고 있었다. 토론토에 있는 내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편하게 있으라는데 편하지 않았고, 부담스러운 티를 내지 않고 최대한 편한 척 해야 했다. 불편한데 불편한 티를 못 내기는 신군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매형이 출근하기 전 사다준 신발이 영 불편했지만 매일 아침 새 신을 신고 나서고 있었다.
신군의 매형은 한인식당 주방에 근무한다. 오전 11시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하루 12시간 근무하고, 일주일에 하루 쉰다. 12시 다 돼서 귀가해 저녁을 먹는다. 피곤해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는데 피로는 물론 그것을 감추려 애쓰는 모습마저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이민생활 10년 차. 신군 누이의 가족의 생활은 아직 고단하다. 착한 두 딸(대학생, 고등학생)들이 부모의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다. 고달픈 이민생활을 함께 해 와서 그런지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불편을 받아들인다. 가족들 모두 큰 욕심이 없다. 아이들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고, 많지 않은 연금을 받아 한가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최대의 목표이다. 그때까지 7년 여 시간동안 일이 끊이지 않기를 바랄 뿐.
L.A이동을 하루 앞 둔 아침. 우리는 몬트리올에 다녀와 피곤하기도 하고, 매형의 휴식을 방해하기 싫어 토론토 시내 구경이나 한 번 더 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은 매형 왈
“나이아가라를 안 보면 토론토에 갔다 왔다고 할 수 없지!”
매형은 얼마 전 새로 산 차에 가족들과 우리를 태우고 나이아가라로 달렸다.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까지는 1시간 20분. 가는 내내 매형은 8년 전 처음 차를 사자마자 밴쿠버에서 뉴욕까지 횡단여행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은 알래스카를 제외하고 8,891km. 그들은 그 길을 7일 만에 주파했다고. 달리는 재미에 빠져 좀 더 여유 있게 둘러보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한 번 쉬지도 않고 나이아가라를 향해 서둘러 달렸다. 그들에게 나이아가라는 여행지라기보다 방문객을 위한 의무방어와 같은 곳이어서 그랬겠지만, 이민생활을 하면서 쫓기듯 사는 것이 몸에 배어버린 것도 같았다. 언젠가는 그들도 여유로운 여행을 하게 될 날이 오겠지...
대자연을 마주 한다는 것
나이아가라는 광활한 북아메리카를 양분할 자격이 충분하다 할 정도로 험준하고 거대했다. 바다와 같은 두 호수, 이리호와 온타리오 호 사이에 깊은 단층이 자리해 장관을 연출한다. 미국 쪽의 폭포는 신부의 면사포처럼 일자로 떨어지고(Bridal Veil Falls), 캐나다 쪽 폭포는 말굽처럼 반원으로 떨어진다(Horseshoe Falls). 반원의 나이아가라가 훨씬 드라마틱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큰물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굽이치며 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나이아가라는 일종의 악마적인 기운으로 가득했다. 인디언이 천둥소리에 비유했던 폭포소리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빨아들였고, 손가락 끝만 닿아도 순식간에 온몸이 휩쓸려 들어갈 듯 강물이 거칠게 흘렀다. 쏟아지는 물이 돌풍을 일으켜 우산을 휴지처럼 구겨버렸고, 뿜어져 나온 물방울들은 이슬비가 되어 어지럽게 흩날렸다. 소리, 바람, 물기로 사람의 혼을 쏙 빼놓으며 한가롭게 장관을 감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폭포의 심연으로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감을 선사할 뿐이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거칠고 광활한 대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경외감보다는 초조함을 느낄 때가 많다. 풍경과 하나가 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생에 볼 것을 보고야 말았구나하는 감회만으로는 언제나 부족하다. 인디언들처럼 근처 숲에서 야영을 하며 아침저녁으로 폭포수에 몸을 담그고 싶은 욕망이 부글거린다.
여행가들이 소멸의 위험을 감수며 고난을 자처하는 것은 그래야만 대자연과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두 발로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가 봐야만 갈증이 풀리는 것이 모험가적 증상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무엇을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풍경과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원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모험을 동경한다.
이민자와 나이아가라
나이아가라 폭포는 엄청난 강물에 의한 침식 때문에 빠르게 뒤로 이동 중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로 놔두면 150년 후에는 절벽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되는 탓에 상류에서 수량을 줄여 폭포의 수명을 대폭 늘렸다고... 줄인 수량이 이 정도라니 인디언들이 보았던 원초적인 아메리카의 풍경은 얼마나 영험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곳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나간 최초의 이민자들이 품었을 담대함도 가늠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아메리카 대륙이 얼마나 황량하고 거칠고 거대한 땅인지 나이아가라가 보여주고 있을 뿐.
나이아가라를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 매형은 기름이 남아 있는데도 여기가 시내보다 싸다며 주유소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려 주유소 옆 언덕으로 올라가 보았다. 대지 위에 커다란 캐나다 국기가 찢어질 듯 펄럭이고 있었다. 주유소에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온 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형이 계산을 하고 주유를 하는 동안 누님은 쓰레기를 버리고, 딸아이는 음료수를 사오고 있었다. 네 식구가 부둥켜안고 버텨가는 이민자 가족에게는 세상이 다 절벽이고, 하루하루가 폭포수이며, 일상이 벼랑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니 내 처지도 그랬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뜯어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 나이아가라였다.
추락을 피할 수 없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어떻게든 균형을 되찾게 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매일 매일의 일상을 감당하며 조금씩 육체와 영혼이 깎여나간다는 의미에서
나이아가라와 우리는 닮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