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nChu Jun 27. 2018

공짜복지는 없다

 토론토 복지제도 편

멀리서 보기에 미국과 캐나다는 거기서 거기 같다. 둘 다 영어를 쓰는 이민자들의 나라로 다른 점이라면 캐나다 사람들이 좀 더 전원적이고 순박한 느낌이라는 정도. 그런데 실제로 느낀 두 나라의 분위기는 너무도 달랐다. 그리고 그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복지제도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캐나다와 미국의 차이    


캐나다는 사회복지국가를 지향한다. 복지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고, 각종 공공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향이다. 특히 교육과 의료, 연금제도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해 각종 양육수당과 무상 교육, 모든 병원치료 무료, 65세 이상 대부분 죽을 때까지 연금을 지급한다.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두 나라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노숙자이다. 미국에서는 어디에서나 노숙자를 볼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는 노숙자가 거의 없었다. 캐나다에서 걸인 비슷한 사람을 실제로 만난 것은 딱 한 번. 밤중에 슈퍼 앞에서 눈치를 살피며 동냥을 하던 흑인남자와 담배를 낱개로 팔지 않겠냐고 묻는 백인남자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심심할 정도로 조용했다. 경쟁이 덜해 사람들이 온순하고 조용한 것은 좋은데 붙임성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다. 낮선 사람들 사이에는 온기가 없고 무덤덤해서 아무하고나 친구처럼 인사를 주고받던 L.A가 가끔씩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곳에서 만난 부모들의 고민에도 이런 분위기는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L.A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놀 것이 너무 많아 집에 붙어있지 않는 것이 걱정인 반면, 캐나다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소소한 갈등으로 자녀들과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나돌아 다녀도 걱정, 집에만 있어도 걱정인 것이 부모자식 간인가. 만약 이민을 간다면 경쟁과 쾌락을 즐기는 진취적인 분은 미국으로, 안정을 선호하는 차분한 분은 캐나다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마도 캐나다가 복지국가를 추구하게 된 데는 날씨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추운나라가 자유방임으로 나가면 곳곳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기에 최소한의 의식주는 해결해주는 쪽으로 합의하게 되지 않았을까 한다. 북유럽도 같은 이유로 복지국가가 되지 않았나 싶고, 러시아나 중국 등 추운 나라일수록 사회주의를 채택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도 그 영향이 있었지 싶다. 모든 게 다 날씨 탓은 아니겠지만... 사회제도에 날씨가 미친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을 억지로라도 우기고 싶다. 나라와 민족의 우열을 따지기 전에 그들의 특수한 환경과 처지를 먼저 감안해볼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L.A 산타모니카 해변 야자수 그늘 아래에서 낮잠 중인 노숙자. 산타모니카라면 노숙자도 덜 비참하다.


복지의 불편 1 - 도시를 일찍 잠재우는 세금   

 

국가로부터 무언가를 받는 것은 금방 당연시하면서도 하찮은 불편과 불이익에도 발끈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복지국가를 부러워만 했지 복지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에 대해서는 무심한 것이 사실. 토론토에서 복지로 인한 불편을 몇 가지 겪었다. 그들이 누리는 복지는  모두 함께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한 대가임을 실감했다.       

복지의 불편 첫 번째는 역시 텍스, 세금이다. 캐나다는 각종 세금을 꽤 많이 낸다고 하는데,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다. 먹고 자고 사고파는 모든 것에 세금 10%를 별도로 내야한다. 식당을 예로 들면 메뉴판에 100불이라고 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계산을 하러 가면 텍스를 별도로 붙여 110불을 내야 한다. 거기에 음식 값의 10-20%를 팁으로 주는 것이 매너이므로, 메뉴판에는 100불이지만 실제 식대는 120불이 된다. 먹고 자기만 해도 부지불식간에 돈이 줄줄 새나가는 기분이랄까. 식료품은 싸고, 외식비는 비싸므로 현지인들도 가급적 집에서 식사를 한다. 세금을 많이 내므로 누구나 절약을 하고, 그러다보니 밤만 되면 온 동네가 조용해진다. 사는 사람이야 복지혜택이라도 받는다 치지만 여행자는 일방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그나마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다는 것에 위안삼아야 할지. 

팁 문화에 대해 짧게 첨언하자면 식당이나 호텔에서 서빙을 하는 사람들의 주 수입원은 월급이 아니라 팁이라고 한다. 그렇다보니 팁은 피할 수 없는 인간적 도리이자 매너가 된다. 얼마를 줄지는 전적으로 서비스에 비례해 알아서 정하면 된다. 서비스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면 당당하게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스타일, 날씨, 표정, 멋진 건물들과 적당히 더러운 골목... 내가 느낀 토론토의 인상이 모두 담겨있는 사진

복지의 불편 2 - 지하철이 멈춰선 날    


또 다른 복지의 불편은 교통이다. 토론토의 버스와 지하철은 TTC(Toronto Transit Commission)라는 공공시스템이다. 캐나다의 교통체계는 자가용 중심으로 되어있다. 지하철은 노후한 편이고, 버스 노선도 많지 않아 현지인들은 TTC를 'Take The Car'(자가용을 타시오)라고 부른다고. 교육과 연금 등 보편복지에 돈을 많이 쓰다 보니 대중교통 개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는 듯하다. 

우리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관광객들이 시내를 둘러볼 수는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갔다. 올드타운을 둘러보고 토론토의 심장 유니온 역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갔더니 지하철 운행이 멈춰있었다. 지하철이 멈추기도 하는구나...하며 한 시간 넘게 운행재개를 기다렸지만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한산하던 플랫폼이 꽤 많은 사람으로 채워졌는데, 누군가 소란이라도 피워야 덜 지루할 것을 다들 너무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언젠가는 오니까 그들도 기다리고 있겠거니 싶어 같은 안내방송을 수십 번 들어가며 계속 기다려보았다. 

“종점 부근 00역에서 사고가 발생해 경찰이 조사 중이라서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분은 버스를 이용하세요.” 

스마트 폰으로 버스노선을 찾아보니 집이 있는 노스욕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다. 한 번 환승하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택시로는 30분 거리. 비는 오고, 해는 지고, 누님은 저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고... 우리는 결국 기다리다 지쳐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비가 무려 50불이 나왔다. 속이 쓰렸다. 집에 와서 신군의 조카들에게 얘기를 하니 지하철이 멈춰서는 일이 꽤 자주 있다고, 그래서 지하철만 믿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다. 복지에 그 많은 돈을 쓰면서 대중교통에는 이토록 무심할 수가 있을까? 

달리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병원비가 무료고, 아이들과 노인들이 모두 의식주를 보장받고, 저소득 가정의 자녀도 교육의 기회를 보장 받는다면... 지하철이 가끔 멈춰서는 것쯤은 감수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떠신지.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항의하지 않았다. 조용히 각자의 플랜B를 찾을 뿐.


매거진의 이전글 나이아가라의 이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