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여행 - 몬트리올 미술관 편
몬트리올 미술관 도난사건
몬트리올 미술관에서 본 그림 한 점을 감상하며 첫 번째 북아메리카 여행을 마치려 한다. 수많은 그림 중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자 흥미로운 작품은 단연 피터 브뢰겔의 ‘Return from the Inn(여관에서 돌아옴)’이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먼저 몬트리올 미술관이 이 그림을 소장하게 된 과정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 그림을 둘러싼 비화들은 스포트라이트처럼 작품을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때는 1972년. 몬트리올 미술관에 초유의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미술품 전문털이범들로 추측되는 범인들이 훔쳐간 작품은 고대페르시아유물과 18점의 회화작품 등 40여점. 이때 도난당한 작품들은 들라크루아, 렘브란트, 카미유 코로, 게인스버그 등 미술관의 핵심적인 작품들이었다. 특히 렘브란트는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풍경화였기에 가치가 더 컸다. 도난 직후 캐나다 정부는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였지만 끝내 범인도, 작품도 찾지 못했고, 그 작품들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유일한 위안은 보험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미술관은 그 보상금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구입한 작품은 바로 ‘Return from the Inn(여관에서 돌아옴)'. 18점의 걸작과 맞바꾼 한 장의 그림에 도난당한 걸작들에 대한 그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의 힘
이것이 바로 그 작품.
아내로 보이는 한 여인이 인사불성의 사내를 끌고 가고 있고, 멀리 허름한 집 앞에서는 사내들과 여인들이 뒤엉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배경은 한 겨울. 나무들은 쓸 만 한 가지가 모두 잘려나간 흉측한 모습이다. 저 뒤에 잔가지들을 구해지고 가는 남자가 땔감이 부족한 모진 겨울을 온 몸으로 전한다. 그런데 저들은 왜 싸우는 것일까? 언뜻 보아서는 주정뱅이들의 난장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수레에 실린 뭔가를 놓고 시비가 붙은 듯하다. 수레 밑에 닭들이 모여 모이를 쪼고 있고, 엎어진 망태기 아래로 이삭이 죽 흘러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곡물수레임에 틀림없다. 나이든 농부가 곡괭이를 들고 온 몸으로 수레를 지키려 하지만 흉측한 얼굴의 두 남자를 당여내지 못한다. 이미 그의 팔은 붙들려 있고, 쇠스랑이 무방비 상태로 열린 농부의 복부를 향하고 있다. 악마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의 쇠스랑은 곧 농부의 배를 찌를 것이다. 그들 발밑에 어지러이 드러난 흙바닥이 농부의 처절했던 저항을 보여줄 뿐.
살벌하기로는 문 안의 여인들도 마찬가지다. 작고 야윈 나이든 여인을 크고 건장한 여인이 손쉽게 제압하고 있다. 아마도 농부의 아내와 여관의 여주인인 것 같다. 가장 섬뜩한 것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여인이다. 여관주인의 노모로 보이는 그녀는 연한 미소를 지으며 이 싸움판을 지켜보고 있다. 종합해보면 이것은 싸움판이 아니라 범행의 현장이다. 잠시 쉬어가려던 농부 부부의 곡물을 강탈하기 위해 여관주인이 손님을 살육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에 여관이라 되어 있어 여관인 줄 알지 간판은 뻥 뚫린 채 테두리만 걸려 있다. 말이 여관이지 악마의 소굴이다.
그렇다면 그림 맨 앞에 나와 있는 사내와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제목을 감안할 때 술을 마신 듯 인사불성 상태의 사내는 아내에 의해 여관에서 끌려나오는 중인 것 같다. 칼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농부나 서민은 아니다. 아내는 여기를 보라는 듯 손을 벌려 앞에 선 아이를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아이의 모습이 괴이하다. 키로 봐서 분명 아이인데 철모를 쓰고 구식소총 같은 것을 들고 있는 모습. 이 아이는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을 상징하는 것은 아마도 그들 뒤 커다란 나무에 걸린 새집 모양의 상자인 것 같다. 십자가가 기울어진 채 달려 있고, 상자 안에는 하얀 꽃이 꽂혀 있는 화병이 놓여 있다. 성모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죽음을 뜻하는 하얀 꽃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마을에 신은 없다. 추위, 가난, 탐욕, 살육, 죽음만 남았다. 칼을 찬 남자는 여관에서 얻어먹은 술에 취해 살육의 현장 따위 안중에도 없다.
이제 아이가 왜, 어디로 가는지, 여인이 무엇을 호소하는지 알 것 같다. 아이는 술 취한 군인을 대신해 전쟁터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인은 군인에게 제발 정신 차리고 전쟁터로 나가라고, 할 일을 하라고 애원한다. 그녀는 군인의 아내가 아닐 수도 있으나, 아이의 어머니임에는 틀림없다. 종교가 무너지고, 끝없이 계속되는 전쟁 속에 왕국들이 사라져가던 중세 말 유럽의 종말론적 풍경. 결국 모든 분노는 아수라장 한 가운데에서 비틀거리는 군인, 즉 권력자에게 모아진다. 이것을 단지 오래 전 먼 곳의 풍경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다.
한 장의 그림을 오래도록 뜯어보는 일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어둡고 추한 것을 가열 차게 재현하여 감상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힘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작품에 더 깊이 몰입한다. 그리고 벨기에 화가 브뢰겔이야말로 이 구역의 지존이다. 그는 평생 지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이미 지옥임을 표현한 그림을 그렸다. 도난당한 걸작들을 대신할 한 장의 그림으로 이보다 적합한 작품은 있을까? 구입을 결정한 몬트리올미술관 큐레이터들에게 감탄과 박수를!
브뢰겔이라는 이름의 화가들
긴 여운으로 감상을 마치면 좋으련만 재미있다면 재미있고, 유익하다면 유익할 예술상식이 있어 사족을 붙인다. 화가의 이름에 대한 상식이다. 브뢰겔 가문은 많은 화가를 배출했는데, 당시 벨기에는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이 이어받은 탓에 혼동하기 쉽다. 화풍도 거의 비슷해 막상 그림만 보면 누구 그림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피터 브뢰겔 엘더 (Pieter Brueghel Elder, 대 브뢰겔)’의 큰 아들 ‘피터 브뢰겔 영거 (Pieter Brueghel the Younger, 소 브뢰겔)이다. 작은 아들도 화가인데 ’얀 브뢰겔 엘더 (Jan Brueghel the Elder, 대 얀 브뢰겔)이다. 이름을 볼 때 얀 브뢰겔의 아들도 화가였음을 짐작케 한다.
그들의 그림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보니 사람들은 그들을 좀 더 명확하고 쉽게 구분할 방법을 찾아내었다. 소재와 작품세계에 따라 별명을 붙인 것이다. 아버지인 대 브뢰겔의 별명은 ‘농부의 브뢰겔 Peasant Brueghel’이다. 농촌 풍경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다. 큰 아들 소 브뢰겔의 별명은 ‘지옥의 브뢰겔 Hell Brueghel’, 굳이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작은 아들 얀 브뢰겔의 별명은 ‘벨벳의 블뢰겔, 천국의 브뢰겔, 꽃의 브뢰겔 (Velvet Brueghel, Paradise Breughel, Flower Breughel)이다. 형과는 달리 온화한 성화, 풍경화, 꽃 정물화를 많이 그린 그는 루벤스와 매우 절친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화풍을 그대로 계승한 두 아들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천국과 지옥을 나누어 그린 것도 재미있고, 천국과 지옥이 소박한 농부의 세계, 즉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흥미롭다.
첫 번째 미국, 캐나다 여행은 여기까지~
고맙다 여행, 고맙다 북아메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