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에서의 열흘 4 - 알제 센트로
알제 시내의 중심가를 ‘센트로 Centro’라고 부른다. 식민지시절 프랑스가 건설한 유럽식 도심 센트르는 일견 퇴색되어가는 근대유럽의 유적처럼 보인다. 알제는 프랑스의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스페인 사람들이 남미에 또 하나의 스페인을 만들고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건설했듯, 알제는 프랑스가 아프리카에 건설한 또 하나의 프랑스이다. 백 년 전 새하얀 고층건물 사이로 잘 차려입은 프랑스인들이 풍요와 낭만을 즐겼던 이곳은 거의 그대로의 모습을 한 채 도시의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
센트로는 전체가 하나의 공원 같은 구도를 이루고 있다. 어디서나 아치로 장식된 하얀 빌딩들, 오르막길과 계단, 야자나무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게 설계된 것이다. 빌딩들의 1층은 식당과 카페와 사무실들이 있고 2층부터는 아파트로 쓰이는 것이 겉으로 봐서는 여느 유럽도시와 다르지 않다. 다만 다소 낡은 외벽과 창살, 창문에 내걸린 빨래들, 히잡을 쓴 여인들, 아랍어로 된 간판과 표지판들, 공원에서 하릴없이 잡담을 나누는 현지들이 이곳이 북아프리카임을 상기시킨다.
무심하게 보면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식민의 유산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알제리인의 피땀으로 건설된 것이기도 하거니와, 성당에 이슬람의 문양을 새겨 넣었듯 건물을 자기식대로 활용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예가 하나 있다. 알제의 교외로 나가보면 옥상 위로 기둥과 철근이 남겨진 채 방치되어 있는, 짓다만 것 같은 주택들이 많다. ‘왜 이리 빈집이 많을까?’ 하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집들은 빈집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다. 그들은 왜 지붕을 씌우지 않고 이렇게 흉하게 방치하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집을 한 번에 다 짓지 않고 지어가며 살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가족이 모여 사는 알제리 사람들은 현재의 가족이 살만큼만 집을 짓고 살다가 자식이 새로 결혼이라도 해서 식구가 늘어나게 되면 그때 한 층을 더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에도 증축하기 용이하도록 지붕 위에 기둥과 철근을 빼두는 것이다. 지금 완벽한 집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무한히 넓혀갈 수 있는 집을 짓는 모습은 겉모습보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 이미 개조할 여지없이 완벽하게 지어진 센트로를 부숴버리는 것은 그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식민의 유산을 마냥 자랑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알제리 사람들은 센트로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런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선택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거리와 건물과 광장의 이름을 바꿈으로써 아름다운 도시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에 관심을 갖는 순간에야 진정한 알제리의 센트로를 볼 수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수많은 이름을 다 볼 수는 없을 테고,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될 만한 광장 두 곳을 둘러보자.
센트로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넓은 광장이 있다. 센트로의 센터라고 할 수 있는 중앙광장이다. 아랍식 아치기둥이 인상적인 중앙우체국 건물이 주인처럼 버티고 서 있고, 노천카페와 가로수가 테두리를 치고 있는 이 광장의 이름은 애초 ‘잔다르크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 잔다르크 동상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이곳의 정식명칭은 ‘사르 알 부지드 광장’. 1945년, 독일의 점령에서 벗어난 프랑스인들이 파리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 알제리인들은 이 중앙광장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당시 강대국들은 식민지를 포기하기 시작했지만 승전국 프랑스는 그럴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프랑스 경찰은 비폭력 시위를 하는 알제리 시민들을 향해 발포를 했고, 이때 알제리 국기를 손에 들고 있던 12살 소년 ‘사르 알 부지드’가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그의 죽음에 알제리인들의 분노가 폭발했고, 독립운동은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타올랐다. 결국 독립을 이룬 알제리인들은 광장의 잔다르크 동상을 끌어내려 참수했다. 그리고 동상이 사라진 광장에 소년의 이름을 붙이로 했다.
‘사르 알 부지드 광장’에서 싱그러운 꽃시장 길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가면 또 하나의 작은 광장을 만난다. 광장 중앙에 큰 칼을 치켜든 어느 장군의 기마상. 동상을 잘 세우지 않는 이슬람 전통에도 불구 이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기념되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그의 이름은 ‘압델 카데르’. 그래서 광장 이름도 ‘카데르 광장’이다. 알제리 민족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는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최후까지 대항한 전쟁영웅이다. 이곳은 원래 프랑스의 장군 뷔조의 동상이 있는 ‘뷔조 광장’이었다. 뷔조는 일명 ‘초토화 작전’을 이끌며 알제리인을 엄청나게 살육, 알제리 정복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알제리 주둔 프랑스 총독이었다. 압델 카데르와 뷔조는 15년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 그렇게 전쟁에 승리한 프랑스는 이곳에 센트로를 건설했다. 그 후 무려 120년 동안 뷔조는 이 광장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먼 훗날 독립을 쟁취한 알제리는 뷔조의 동상을 철거하고 바로 그 자리에 압델 카데르의 기마상을 세웠다. 동상을 금지하는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굳이 같은 자리에 동상을 세운 것에서 프랑스에 대한 그들의 증오와 독립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소녀영웅엔 소년영웅으로, 전쟁영웅엔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바꾸었듯이 센트로의 이름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지중해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길의 이름은 프란츠 파농 가. 프랑스태생의 흑인 정신과 의사였던 프란츠 파농은 알제리에 파견근무를 왔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고, 독립 직전 1961년 36살의 나이에 병사했다. 프랑스인임에도 불구 의사로서, 이론가로서 자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를 위해 알제리는 프랑스 쪽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군데 더. 시내에서 나오자마자 바다를 만나는 해안도로의 이름은 체 게바라 로. 체 게바라를 기억하기에 쿠바의 아바나 해안도로를 닮은 이 도로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있었던 과거를 지울 수는 없다. 파괴 대신 이름을 선택한 알제리의 선택은 꽤 지혜롭지 않은가. 이국적인 카페와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그 이름들을 곱씹어 보자.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면 그들은 다시 살아나 저만치서 걸어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