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연애의 비법(?)
25살인 내가 5년째 한 사람과, 그것도 중간에 헤어진 적 없이 쭉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또래들 사이에선 굉장히 신기한 일로 여겨지곤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연애한 경우가 아니라면 나보다 오래 사귄 경우는 거의 없을 테니, 거의 대부분의 경우 우리 커플이 현존하는 최장수 커플인 셈이다.
애인과 내가 고등학교 동창이다 보니 사이에 아는 사람이 많이도 하고, 대학 와서는 애인이 거의 내 자취방에서 학교로 통학을 했기 때문에 주변에 내 애인의 얼굴을 모르는 친구가 없다. 가끔씩 친구들이 모여서 ‘다원이 애인 목격담’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하도 SNS에서 자주 보여서 ‘내적 친밀감’이 쌓여 자기도 모르게 인사할 뻔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절친인 A는 내 애인을 ‘다원이네 집 벽지’ 같은 존재라 칭하기도 했다. 그만큼 자주 목격되고, 언제나 내 옆에 있는 느낌이라고.
이렇듯 나와 한 세트로 묶이는 애인. 애인과 나의 관계가 신기한 탓인지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혹은 연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너는 어떻게 그리 오래 사귀니?’라는 이야기를 매우 자주 듣는다.
그에 대한 답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름 비법이라 한다면 ‘연인’보다는 ‘20대의 절반을 함께 한 사이’란 구구절절함에 무게를 싣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곧잘 내 애인을 애인보다는 파트너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파트너. 동반자. 왜 노래도 있지 않는가.
당신은 나의 동반자
다소 고리타분하지만 나는 이 표현이 꽤나 마음에 든다. '함께'의 방점을 찍은 첫 번째 의미도 마음에 들고,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는 아니하나 그것에 동감하면서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는'이란 따뜻한 방관도 마음에 든다.
주위에 소문난 장기 연애 커플이 되면 가끔씩 지나가듯 연애 상담을 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물음이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한 사람과 오래 사귀어요? 질리지 않아요? 저도 길게 사귀고 싶은데 질려서 못하겠어요"였다. 내가 아무리 길게 연애를 했어도 결국 연애는 당사자들끼리의 문제인 데다가 나도 똑같은 20대 초반 주제에 무어라 조언하는 게 우스워 굳이 말을 얹지 않는 편이지만, 이 질문에는 답을 했었던 것 같다.
“글쎄, 질리면 헤어진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사실 사람이 질린다는 것도 참 아리송한 표현이지만, 연인 사이의 질림이란 아마 '익숙함'과 가까울 것이다. 뭘 해도 이 사람의 다음 행동이 예상되고, 연애 초기 하나둘 풀어가는 묘미가 있던 서로에 대한 베일도 몇 남지 않고, 콩깍지 씌어 거대해 보였던 그 사람의 장점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것. 이게 바로 '질린다'라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당연하겠지만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연애 초기의 사소한 떨림은 사그라든다. 길게 연애하는 사람과 100일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 사소한 떨림을 익숙함으로 받아들일지, 질림으로 받아들일지. 나 역시도 연애 초기의 사소한 떨림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 현재의 연애를 끝내고 새로운 연애를 찾는 걸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연인과 긴 호흡을 함께 하고 싶다면, 그 사람을 나에게 떨림을 주는 사람보다는 동반자로 바라보는 건 어떨까?
긴 연애는 생각보다 많은 선물을 안겨준다.
내가 상대에게 익숙한 만큼이나 상대도 나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다. 나의 기쁨과 슬픔을 지켜봐 주고 때로는 아침잠이 많거나 일을 미루는 습관이 있다와 같은 소소한 단점까지도 차분히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내가 자기 합리화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내가 정신 차리게 도와준 건 애인이었다. 애인은 내가 잡다한 생각이 많아 혼자서 멍 때리고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웹소설과 웹툰을 좋아해 가끔씩 삼일 밤낮을 새며 정주행을 한 탓에 종종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인은 몸이 좋지 않아 공부를 쉬겠다고 말하며 신세 한탄하는 나에게 차분하게 내 잘못을 짚어줄 수 있다. 타인이 내 잘못을 지적했을 때 으레 당혹감과 창피함에 반발심이 일어나곤 하는데, 애인의 지적은 애정에 기반한다는 걸 너무 잘 아는 내 믿음과 내가 어떤 어투에 예민하다는 걸 아는 애인의 배려 덕분에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동반자가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일이다. 밑도 끝도 없는 '넌 할 수 있어'보단 나를 잘 아는 애인의 '너 지금 이걸 잘못하고 있어. 그런데 넌 이걸 극복할 수 있어. 내가 널 알잖아. 넌 할 수 있어'가 훨씬 힘이 된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잘 키운 애인의 한 마디가 자기 계발서 10권보다 나은 셈이다.
결론은, 긴 연애를 원한다면
스스로 연인관계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게 중요하다. 떨리고 새로운 것만 연애가 아니다. 본인의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다면 자신이 정의하고 있는 연인관계에 대해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