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변변찮은 최변입니다.
한동안 뭔가를 작당하느라 '스타트업 x 법' 연재가 뜸했습니다. 얼른 알려드리고 싶네요.
애니웨이. 오늘의 주제는 "공동대표이사"입니다.
얼마 전에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지원 심사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심사가 3시간이 넘어가자 머리가 어질어질 눈이 핑핑 돌아가기 시작했죠. 이윽고 마지막 면접자가 들어오는 데 굉장한 호남에다가 언변도 유창하고 에너지가 뿜뿜하는 대표님이었습니다. 흠잡을 곳이 없는, 아니 없을 것 같은 발표가 끝날 무렵. 쨍하고 거슬리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몸 같은 친구라 공동대표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말인즉슨, 학생 때부터 한 방을 같이 쓰고 한 이불? 덮고 지낸 사이어서 눈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정도의 베프라 하더군요. 그래서 서로를 자신처럼 믿기 때문에 공동으로 대표이사를 했다는 것이죠. 대표이사들 상호 간의 돈독한 신뢰를 심사위원에게 어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을 평가하는 사람에게 "팀워크"는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 중 하나니까요.
그런데 그 방법이 틀렸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서로를 그렇게 자신처럼 믿으면 공동대표이사가 아닌 각자대표이사를 택했어야 합니다.
왜 그런지 한번 살펴볼까요?
대표이사는 회사의 영업과 관련한 모든 행위에 대해 회사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회사의 총괄 대리인 같은 개념이죠. 대표이사는 대체적으로 1명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일 수 없는... 뭐 그런 이치?. 그런데 필요에 따라서 대표이사가 여러 명일 수도 있습니다. 법적으로도 가능하죠. 대표이사를 여러 명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거예요.
하나는, 앞 사례처럼 상호 신뢰가 깊어 여러 명의 독립적인 대표이사를 만들기 위해서!
아니면, 여러 세력이 합쳐진 회사이기 때문에 상호 견제를 위해서!
서로를 너무 믿거나 아니면 서로를 너무 못 믿거나!
상법은 이에 따라 위 두 가지 목적을 위한 다수 대표이사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각자대표이사(상법 제207조)"와 "공동대표이사(상법 제389조)"이죠.
법조문 한번 볼까요? 안 읽히면 그냥 패스!
제207조(회사대표) 정관으로 업무집행사원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각 사원은 회사를 대표한다. 수인의 업무집행사원을 정한 경우에 각 업무집행사원은 회사를 대표한다. 그러나 정관 또는 총사원의 동의로 업무집행사원중 특히 회사를 대표할 자를 정할 수 있다.
제389조(대표이사) ②전항의 경우에는 수인의 대표이사가 공동으로 회사를 대표할 것을 정할 수 있다.
#각자대표이사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냥 패스하신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각자대표이사"는 여러 명의 대표이사들이 각각 회사를 전부 대표한다는 것입니다. 즉 A대표이사가 B 대표이사의 동의 없이 회사를 대표하여 계약에 서명하거나 재판에서 출석해서 변론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즉 각자 대표이사가 온전한 대표이사인 것입니다.
장점은 대표이사가 여러 명이기 때문에 회사의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습니다. 각 대표이사마다 맡은 사업부문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독으로 신속하게 대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반면 단점은 B 대표이사가 명확하게 반대를 표시해도 A대표이사는 자기 맘대로 회사를 대표하는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망나니 대표이사가 있을 경우에는 회사는 큰 피해를 볼 수 있죠. 그래서 각자대표이사의 경우에는 내부적으로 서로를 견제하는 규정을 만들거나 손해배상청구(상법 제210조)를 통해 권한 남용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늘 아래 태양이 여럿이다
#공동대표이사
공동대표이사는 "반쪽짜리" 대표이사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공동대표이사님들이 좀 섭섭해하실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각자대표이사는 그냥 "대표이사"라는 명칭으로 여러 명 등기하는 것이지만, 공동대표이사는 반드시 "공동대표이사"라는 명칭으로 등기해야 합니다. 문자 그대로 공동대표이사는 모든 공동대표이사가 "공동"으로만 대표이사로서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 공동대표이사가 B공동대표이사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C와의 계약에 서명한다면 그 계약은 원칙적으로 무효입니다.
물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A 공동대표이사가 서명할 때 "대표이사"라고만 썼고, C 역시 A가 공동대표이사인지를 몰랐을 경우에는 유효라고 한 바가 있지요. 전형적인 표현대리 법리인데 이건 어려운 것이니 그냥 패스!
아무튼, 기억해야 할 부분은 공동대표이사는 단독 또는 각자 대표이사의 권한 남용을 방지 위해서 탄생한 제도라는 점입니다.
자 그러면, 처음 심사 장면으로 돌아가 볼까요?
그 멋졌던 대표님에게 필요한 대표이사제도는 무엇일까요? 공동창업자 서로를 자기 자신처럼 여기고 무한 신뢰가 있다면 공동대표이사가 아닌 "각자대표이사"를 선택했어야 합니다. 신속하고 빠릿빠릿하게 결정하고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일종에 분신이 생긴 거죠. 분신이랑 일일이 만나서 동의하고 같이 서명하러 다니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습니까.
이렇게 단순히 경영상 판단으로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중요한 법적 이슈가 숨어있습니다. 법적인 이슈는 사고와 같아서 발생하기 전에는 "에이 무슨 일어나지도 않는 일 같다가"라고 하지만 발생하면... 어휴 말해야 입 아프죠. 개인이야 일평생 살면서 법적 문제에 휘말릴 일이 별로 없지만, 사실 스타트업은 매일 지뢰밭을 걷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물어볼 주치의를 곁에 두세요.
* 최앤리 법률사무소의 최철민 대표변호사가 스타트업 / 중소기업에게 꼭 필요한 법알약을 매주 처방해드립니다. 최앤리 법알약 뉴스레터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