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집안일, 아내, 박차장 엉키고 설키어 돌고 도는 일상에서 아주 간절히 퇴근하고 싶다.
우리 집 두 딸에게는 엄마가 두 명이다. 결재 승인과 대외적인 얼굴마담을 하는 엄마인 나와 모든 실무와 지침을 관철하고 요구하고 실행하는 엄마인 친할머니가 있다. 요즘 등 하원을 도맡는 할머니의 눈에 둘째 지안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반 분위기와 선생님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그때 연락 왔던 다른 데를 보냈어야지 왜 거길 보냈냐부터, 다른 곳에 연락은 했는지, 언제 옮기는지, 잘 다니고 있는 첫째랑 묶어서 얼른 옮겨두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오늘은 등원하며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씩씩거리며 나에게 찾아왔고, 때마침 미팅 중이었던 나는 다행히 화가 다 가라앉은 오후가 돼서야 순화된 표현과 짜증을 받아 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의견처럼 바꾸고 싶기도 하지만 이미 자리가 다 차 버린 다른 곳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고, 이게 어렵다는 걸 설명해봐야 어차피 내 말은 왜곡해서 들으시니 그냥 오늘도 짜증과 분노를 잘 받아내고 하루를 파이팅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해본다. 나는 며느리지, 딸이 아니니깐. 어차피 쌍방향 대화란 없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매우 저조하다. 아침부터 회의가 많아서 모닝커피를 못 마셔서 그런가 싶어서 냉동실에서 초콜릿 하나를 냉큼 꺼내와 당을 보충하며 일을 한다. 모처럼 회의가 없는 오후, 밀려있던 일들을 하려던 찰나.. 하원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마중 나오라는 전화가 온다. 모처럼 미팅도 없는 데 얼른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갔고, 오늘따라 둘째가 할머니를 힘들게 했는지 볼멘소리가 가득이시다. 책상에 바로 앉기는 또 눈치가 보이니 그 오전 스토리도 듣고, 하원하면서 있었던 해프닝도 들으면서 큰 리액션으로 화답하고 준비해둔 60계 치킨 간식을 건넸다. 눈치 봐가며 일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샤샤샤샥. 급한 것들을 처리하고, 목욕 육아에 투입하고 정신 차리니 부재중 전화가 있다. 6시가 넘어 시작된 전화와 아이들 밥 차려주고 먹이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말을 못 알아들으시는지 아마도 나의 설명이 굉장히 어려웠나 보다. 같은 이야기를 30분 동안 반복하다, 보다 못한 상급자가 전화를 바꾸고 이해하신 뒤에서야 끊었다.
8시쯤 귀가한 남편은 오늘 zoom 미팅이 있다는 말과 매우 미안함을 표현하며 방에 들어간다. 밉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남편 하는 일들을 지지해주자는 마음을 붙잡고 둘째도 재우고, 첫째와 블록놀이를 시작한다. 오늘따라 배가 살살 아픈지 배를 포함한 전신 마사지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워 놀다가 잠이 든다. 10시 반이 돼서야 다시 책상에 앉아 밀려있는 메일들을 본다. 피곤하기도 하고, 자기가 뭘 해줬으면 좋겠냐는 말을 하는 남편의 말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바깥일도 잘하고, 지우 할머니랑 대화도 좀 해서 짜증도 풀어줬으면 좋겠고, 구해지지 않는 방문 놀이 선생님도 구해줬으면 하고, 집안에 밀린 빨래와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도 좀 해줬으면 하고, 내일 아침식사도 준비해줬으면 좋겠고, 이걸 다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줬으면 좋게 다는 생각만 하며 입을 닫는다. 어차피 말해도 안 해도 결국 내가 다 해야 할 일이니깐.
침묵하던 나는 모기에 물린 듯해서 모기향 좀 찾아서 피워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집에 와도 짜증 내는 사람만 있어서 퇴근하고 싶지 않다며 먼저 잠이 들었다. 나는 너무 이 모든 것에서 퇴근하고 싶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