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생활]8.5km 숲 조깅

by 원더혜숙

날이 따뜻해졌다. 검은 칠부 레깅스를 입고, 배꼽 위까지 바지를 올렸다. 날씬해진 기분이다. 머리끈으로 앞머리를 상투를 틀고, 선캡 모자를 썼다. 가마솥 단지가 연상되지만 마음에 든다. 살이 텄다. 파란 통 니베아(남편에게 핸드크림을 사 오라고 했더니 클래식하게 이걸 사 왔다.)에서 크림을 검지 끝마디만큼 가득 찍어서 말끔하게 발랐다. 오래 앉아서 글쓰기를 한 것 때문일까, 발이 살짝 부어서 신발 끈을 꽉 조이지 않아도 타이트하다.


3,2,1 출발

전통 코스를 밟을 거다. 15킬로 장거리 훈련 이후로 왼쪽 고관절이 러닝을 할 때마다 아프고, 오른쪽 무릎이 간혹 찌르는 듯했다. 무리하면 안 된다. 오후에는 몸이 무겁다.


노란색, 진분홍색, 파란색, 하얀색 꽃이 거리를 장식했다.

따뜻하다. 긴 셔츠가 팔을 부드럽게 감싼다. 코에 니베아 향기가 스친다. 길에는 사람들이 많다. 난민 임시 거주지 철문 안에서 흑인 여자애가 팝송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곧잘 했다. 한 번 같은 길을 지나다가 음악을 들으며 콧노래를 부르던 그 아이다. ‘저머니 팝스타에 나갈 건가?’ 피식 웃음이 났다.


발 폭을 넓어야지. 의식하지 않으면 원래로 돌아간다. 숨이 차다. 이 정도야 보통이야. 무시하고 발을 힘차게 찼다. 열기로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왼쪽에서 차가 급하게 내려온다. 한 템포 낮추고 기다리고 건너려는데 마저 오는 다른 차를 못 봤다. 얼른 후진했다. 그 차도 나를 봐서 둥글게 공간을 두고 지나간다.

다리 왼쪽 집에 오늘은 손님들이 왔다. 2명 이상 모이는 거 금지인데, 저렇게 모여도 되나? 자전거 네 대가 순식간에 씽씽하고 지나갔다. 싸리 눈 같은 꽃을 피운 나무가 햇빛에 바삭하게 말랐다. 이 길을 몇 번이나 지나갔을까.

블로그에 올린 글을 생각한다. ‘고쳐야 할 문장이 많다. 누가 읽기 전에 고쳐야지.’ ‘외국어에 관련 주제로 글을 써야지.’


2킬로


앞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 두 명이 다가온다. 얼른 숲으로 난 왼쪽 길로 꺾었다. 3미터나 되는 나무 탑 피라미드가 양쪽으로 누워 있다. 오르막길이다. 보폭을 유지하면서 오르려고 하자, 힘에 부친다.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젊은 여자가 성큼성큼 왼쪽으로 돌아 나가고, 파란 반바지에 검은 긴 셔츠를 입은 키 큰 남자가 잔 걸음으로 여자를 따라간다. 여자는 프로다.


3미터 앞에 노년 부부가 노르딕 워킹을 하면서 걸어오고 있다. 나를 위해 할머니가 길을 비켜줬다. 의식적으로 갓길로 비켰다. 숨도 조신하게 내쉬었다. ‘할로’ ‘할로’

언덕 위에 개와 산책 나온 사람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좀 떨어져서 이야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후덥지근하다. 소매를 살짝 걷어 올렸다.

코스 절정은 이 오르막길이다. 이쯤 되면 3킬로지. 가볍게 몸을 들어 올리면서 한 걸음씩 발을 옮겼다.


3킬로 평균 속도 7. 33


길이 가팔라서 느리다. 이 길은 나를 위한 500미터 단거리 트랙이다. 사람이 거의 없다. 위로 나아간다. 햇빛이 이 깊은 숲에도 들어왔다. 나뭇결이 훤히 다 보인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이 길을 내려가면서 여러 가지 언어로 혼잣말을 했어. 미쳤었지.’

오른쪽 무릎이 당긴다. 속도를 낮춰야 한다.

이 구간을 지나면,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 허리와 다리는 나를 기계적으로 앞으로 데려다준다.

회색 아스팔트에 락커로 하얀 하트 표하고 Oki라고 적었다. ‘옥희?’ 올겨울부터 생긴 건데, 독일에는 이런 이름은 없다.


고관절이 아프다. 한 번 쉬어 줘야겠다. 가능한 한 빨리, 이리저리 돌리고 풀어주고 다시 레이스에 오른다.

왼쪽으로 소나무 세 그루가 야구장 조명타워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오후 태양빛을 한껏 받고 있다. 벌써 이렇게 마르면 어떡하지. 자갈길도 말랐다. 자작 자작한다. 나를 향하는 해가 무섭다. 이러다가 더 검어지겠다.

여기 키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촘촘히 있었던가. 산속으로 난 트럭 바퀴 자국은, 봄이 시작되자마자 부지런히 일하는 나무꾼들의 흔적이다. 오른쪽 어깨 높이로 갓 태어난 듯 옅은 노란색 나비가 팔랑거리며 나보다 앞서간다.


아스팔트 길이 시작됐다. 공용 그릴 터에 남녀 둘이 앉았다. 연인이겠지. 멀리서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 옆 자전거 길을 왔다가 갈림길에서 다시 돌아간다.

산에 차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막은 바리케이드 터를 살짝 비켜서 자전거 도로에 들어섰다. 이 길을 달리면 날 수 있다. 오늘은 관절이 아프니 천천히 가야 한다. ‘어머 개미들.’ 눈을 크게 뜨고 조심해도 어쩌면 몇 마리는 밟혀 죽었겠지. 따뜻해졌다고 일하는구나.


7킬로 43분 21초. 시속 6:34


오늘은 할당량을 채우는 러닝이다.

파란 셔츠를 입고 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앞바퀴로 지그재그를 만드는 연습하고 있다. 얼마나 많이 탔는지 몸빼바지 엉덩이 부분이 해졌다. 앞에 오는 여자아이의 얼굴이 익다. 우리 골목길에 사는 아이. 가끔씩 할로 하는 그 아이다. 살짝 미소를 짓고 나아갔다.

길가의 그 집에는 아직도 이야기가 한창이다. 코로나를 뚫은 우정. 웅웅 이건 분명히 바퀴가 두꺼운 자전거다. 기어를 제일 크게 높인 힘찬 소리다. 역시 두껍다. 몇 발자국 더 달렸는데 또 웅웅거린다. 이건 더 두껍다. 샴푸 향을 날리며 근육이 탄탄하게 오른 남자의 다리가 지나간다. 역시 더 두껍다.

왼쪽 언덕으로 회색과 갈색이 섞인 그레이트 댄이 느릿느릿하게 주인을 따라 걸어간다. 크다. 도로변에 흰색 수선화가 줄줄이 군락을 이뤘다. 햇살이 비친다.

비비. 저번에도 여기서 새소리를 들었는데, 여기가 집이구나? ‘반갑다 얘. 나도 여기 살아.’

정원에 꽃들이 피고, 나무에는 새 잎이 돋았다. 봄이로구나. 핑크, 하얀, 보라색이 길에 앉았다.


8킬로 55:12

힘들다. 고관절이 아프다. 어깨를 과장되고 뒤로 젖히고, 수평으로 팔로 M자를 만들었다. 통증이 살짝 사라진 것 같다. 지금이면 속도를 내서 집에 도착했을 텐데, 오늘은 무리다. 신발 쿠션이 줄어든 것 같다. 발뒤꿈치가 불편하다. 이렇게 달리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서지.

59분 14초

멈추자마자 땀이 한 번에 터진다. 신발 끈을 풀어 발도 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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