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15킬로 장거리 러닝에서 길을 잃다

by 원더혜숙

15킬로가 목표다. Long Slow Distance 일명 LSD 장거리 달리를 할 거다.

처음부터 오버하면 안 된다.

오늘 갈 길은 머니깐.


오늘은 바람이 유독 세차다. 목토시를 했지만 그 사이를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선 캡 모자보다 털 모자를 써야 했다. 드러난 귀가 시리다. 마이크에 바람 소리가 담기듯 귓가는 요란하다.

파카를 입은 한 무리에 사람들이 인도를 채웠다. 캐리어를 끌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아줌마의 얼굴이 어둡다. 햇빛은 살갑지만, 공기가 차가워 짧은 조깅 재킷 매무새를 단단히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기름칠 안 한 문처럼 삐걱거렸다. 어떻게 나무에서 저런 소리가 날까 하고, 하늘 높이 솟은 나뭇가지를 쳐다봤다. 돛단배가 파도에 흔들하듯 일제히 바람결에 따라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가 다시 반대 방향으로 갸우뚱했다.


4km.


5미터 앞, 왼쪽으로 돌면 Giengen으로 가는 좁다란 길이 나올 거다. 차들이 지나지 않는 틈을 타 재빨리 도로를 건넜다. 오른 편 들판에 초록색 트랙터가 들판에 물거름을 뿌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뿜어내는 거름과 함께 지독한 냄새도 퍼졌다. 냄새를 희석해 주는 바람이 고맙다.

아스팔트에 남긴 트랙터 바큇자국에서 비릿한 암모니아 내가 났다. 폴짝 뛰어넘어, 숨을 참으며 나아갔다. 왼쪽 경사가 완만한 땅에 소나무가 듬성듬성 자라고, 썩은 나무 둥지를 푸른 이끼가 촘촘히 덮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심이 1미터는 될 것 같은 농장 옆 연못을 지나, 졸졸 흐르는 냇물을 따라 또 하나의 야트막한 못이 만들어져 있다.



5.04km. 음성이 울렸다.

15킬로 가려면 10킬로가 남았다. 1킬로에 집중하자. 6킬로라고 울릴 때까지 풍경에 눈을 돌리는 거야.

긴 훈련이 될 것을 염려해, 주머니에 초콜릿과 사탕을 챙겨왔다. 사탕 하나와 초콜릿 하나를 한꺼번에 입에 집어넣었다.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계가 6킬로를 외쳐 줄 때까지 달렸다. 멈춰서 잠시, 몸을 푼다. 줄곧 오르막을 뛰느라 몸이 뻐근했다. 이제는 7킬로를 향해야만 한다.


오늘 따라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해졌다. 왼쪽으로 꺾었다. 이 길로 갔다가 7킬로만 지나면 돌아가야지. 길을 잃을 수도 있어. 아니 이 길로 가면 아는 길을 발견할지 몰라.

내리막길이다. 가속도가 붙고, 멈추고 싶지 않다. 7킬로가 지나고 노란 표지판이 나왔다.


Herbrechtigen 또는 Meggelstetten 방향으로 5.9킬로? 이정표를 보고, 기로에 섰다. 더 이상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아가면 오르막길이고, 이대로는 내리막이다.

멈추지 않고 아래로 달렸다. 길은 다 연결되어 있으니깐. 동네 앞 시멘트 산에 닿으려나.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그 사이로 보이는 산 아래 넓은 들판은 평온하다.


산을 내려와 보니 낯설다.

‘어디지?’ 좀 더 앞으로 가면 힌트를 찾을 수 있겠지. 멀리 밭을 가는 트랙터가 보이고, 앞으로 송전탑 아래 벤치를 지날 때 빨간 얼굴을 한 남자가 기침을 했다. 평지라서 발걸음을 안정되었지만 불안하다.


언덕 위에 집을 올려다보고 앞으로 뜀박질을 재촉했다. 마을에 들어가면 간판으로 여기가 어딘지 알아볼 수 있다. 마을은 생소하다. 표지판에 있는 호텔 이름은 처음 본다. 언덕 위에 집들이 길 곳곳을 막고 있어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동북쪽을 향해 뛰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길이 가파르다. 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초코바를 하나 꺼내 씹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유리병을 분리수거를 하는게 보였다.


멀찍이 서서 입을 가리고 물었다.

‘하이덴하임에 가고 싶은데요.’

'꽤 먼 데…, 쭉 올라가면 숲에 이르고, 더 가면 시멘트 산이 보일 거야. 거기는 표지판이 있어.’

길도 모르는 언덕배기 동네를 올라서, 숲을 지나고 또 산을 넘어야 한다.


이제 9킬로미터.

한 시간 반이 넘었다. 또 한 번 언덕에서 길을 잃은 나는 힘이 쭉 빠졌다. 허벅지와 무릎에 모든 피가 몰려 슬슬 불편하다.


가는 방향은 옳았다. 경사진 길의 끝에 산에 접어들었다. 오른쪽은 아닐 것 같아서 왼쪽으로 갔다. 세모 돌이 박힌 진흙길로 산에 들어갔다. ‘공사 중’ 테이프 넘어 쓰러진 나무토막이 눈에 보였다. 그 옆 오솔길에 들어갔다. 사각모양 벌집 세 통을 지났다. '길이 없을 것 같은데,,,’ 훈련 중이라 멈출 수 없다. 길이 산 아래로 이어졌지만, 오른편 위로는 관목이 발 디딜 틈이 없이 자라 있어서 길이 있을 것 같은 위쪽으로는 가기 어렵다. 왔던 경로로 돌아가면 역방향이다. 그러면 트레이닝이 더 길어진다.

산 아래 익숙한 외딴 집이 보였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위를 미끄러져 산자락 밑에 다다랐다. 집 뒤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니 아는 길이다. 왼쪽 멀리 반가운 b19 국도가 보인다. 방향은 맞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다시 미아가 된다. 그것보다 두 번 모험을 했다간 길에 퍼진다. ‘생명 위험’이라고 쓰인 테이프를 넘고 경사진 내리막을 걸었다. 허벅지에 피로가 쌓인다.


10킬로를 넘었다.


마침내 도로 옆 자전거길을 뛸 수 있었다. 트레일러 트럭이 지나가다가 응원의 클락션을 빵하고 울렸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2킬로를 뛰었다. 15킬로를 채우고 싶어서 가능한 한 천천히 달렸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고관절에 통증이 왔다. 목도 마르다. 계속 달렸다. 벌판에서 찬바람이 나를 쳤다. 오른쪽 팔꿈치부터 손가락까지 얼어서 움직이기 뻑뻑했다. 직진하는 길은 차들이 자기 속도로 달린다. 오른쪽으로 선회했다. 급한 경사가 나를 맞았다. 후회했다. 러닝을 멈추고 걸었다. 2미터를 걸었을까. 더 이상 무리다.


걷는 게 이렇게 편한 것인가.

길을 안 헤맸었더라면 감격할 만한 러닝이었는데.

15킬로를 달릴 수 있다니 대단하다. 하프 마라톤 21킬로를 달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고통을 참으며 묵묵히 길을 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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