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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혜숙 Mar 21. 2024

[시 읽기] 김사인, 바짝 붙어서다

바짝 붙어서다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빈 상자를 집어 묶는다

몸빼는 줄어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 벽에 거미처럼

수조 바닥의 늙은 가오리처럼 회색벽에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 


차가 지나고 나면 

구겨졌던 종이 같이 할머니는 

천천히 다시 펴진다


밀차의 바퀴 두 개가 

어린 염소처럼 발꿈치를 졸졸 따라간다 


늦은 밤 그 방에 켜진 헌 삼성테레비를 생각하면 

기운 싱크대와 냄비들

그 앞에 서 있을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방한구석 힘주어 짜 놓았을 걸레를 생각하면 


(김사인 시인)



이 시의 주인공은 ‘폐지를 줍는 팔순의 할머니’다. 내용물을 꺼내고 남은 쓰레기, 그러나 재활용할 수 있는 빈 상자들을 그러모으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기력이 쇠하고, 가난하고, 천대받는다. 불쌍하다. 늙었다. 같은 부정적인 심상들이 따라다닌다. 


할머니의 고달픈 삶에서 독자는 애처로움을 느끼는 동시에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 1연에서 4연까지 빈틈없이 쌓은 할머니의 이미지가 5연에서 터진다. 시적화자의 감정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독자도 ‘목이 메인다’ 


‘폐지, 몸빼, 거미, 늙은 가오리, 삼성테레비, 기운 싱크대와 냄비와 마지막 방한구석 힘주어 짜 놓았을 걸레까지 할머니의 이미지와 겹친다. 이 단어들을 모으고 쌓으면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몰려온다. 노년의 초라함과 고단한 삶을 알려주는 이 단어 묶음을 폐지 밀차에 차곡차곡 올릴 수 있을 만큼 끝까지 쌓는다.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은 그 폐지를 싸구려 노끈으로 묶었지만, 무게를 더한 폐지 더미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그처럼 우리 마음도 무너진다. 그와 함께 우리가 외면했던, 보지 못했던 혹은 망각한 사회 존재가 환하게 드러났다.


밀차; 밀차는 이 시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할머니의 손에 꼭 붙어 있는 염소. 젊은 염소나 늙은 염소나 염소는 염소…죄다 초라해 보인다. 그 우는 소리마저 처량한 타령 같으니 어찌 밀차가 두 번째 주인공이 아니겠는가. 밀차는 혈육이다. 왜 혈육이 아니겠는가. 혈육보다 더 진지한 목숨줄이다. 저것에 기대어 상자를 모아서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어서다. 


삼성테레비; 할머니의 언어를 닮은 텔레비전은 텔레비전이 아니고 테레비일 수밖에 없다. 할머니 집에는 평면 텔레비전이 아니라, 삼성 혹은 금성 테레비가 있어야 잘 어울린다. 찌그러진 그릇과 부엌, 허리가 굽은 것처럼 세월의 때가 묻힌 그 오래된 ‘테레비’에서 애잔한 정서가 깊어진다. 


‘방 한구석에 짜 놓았을 걸레’가 곧 할머니다. 골목길 한쪽, 더러운 시멘트 벽에 기댄 거미처럼, 그 신세는 주인공이 아니라 그림자, 사회의 그늘이다. 방의 주인공이 아니라, 방을 닦고 다시 닦을 도구 같은 존재 걸레. 이 마지막 한 단어에서, 어쩌면 우리는 더욱더 무너진다. 


우리의 마음을 닦아줄 사람은 시인이다. 시인은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기도 하지만(박연준 <소란>), 시인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가는 사회 그늘을 비춰주는 가로등이어야 하며, 안개를 뚫는 상향 전조등이어야 하며, 전기가 없을 때 밤을 밝힌 케로세인 전등이어야 한다. 너무 바삐 사는가. 나도 힘든가. 나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부엌 구석에 있는 걸레처럼.


“낮고 낮은 저 바짝 붙어서기”에서 희미한 희망을 기대해 본다. 할머니의 삶이 초라하지만, 그 삶에서 어쩔 수 없는 삶이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저 낮은 '붙어서기'는 할머니 나름의 애씀이다. 바싹 붙어설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어쩔 수 없는 태도이긴 해도, 그걸 감당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가오리처럼 수조의 낮은 곳을 기지만, 차가 지나가면 종이처럼 서서히 다시 펴지는 종이처럼. 꽉 짜 놓은 걸레처럼 삶의 의지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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