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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 한 조각

by 원더혜숙


마흔 두 살에야 내가 소시지 종류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비엔나소시지, 매운 소시지, 훈제 햄, 살라미 소시지 등등. 발암 물질을 포함한다는 소시지 섭취를 줄이려고 해도 고삐를 놓으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무줄 같다. 늘 다시 먹고 만다. 왜 그런 음식들 있지 않는가. 어릴 때부터 먹어서 그 맛에 대한 디엔에이가 만들어진 것 같은. 그래서 어느 때 어느 순간에는 꼭 그 음식을 입에 넣어야 만족되는 절대 욕구의 정점. 그 욕구가 강렬해서 고무줄을 터트리지 못하고 자꾸 원래로 돌아간다. 그러니 그것이 좋아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집과 논밭, 필요한 것은 다 있었다. 학교 앞 점방에서 심심찮게 뽑기를 할 정도로 내 용돈은 충분했다. 또 홍수나 가뭄이 일지 않은 이상 농가인 우리 식구가 굶을 일은 전혀 없었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꿇지 않았다. 누구네 차가 좋아서 타고 싶다던가, 누구네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사고 싶다든지, 그런 부러움을 느낀 적 없다. 아마도 나는 학교가 있는 읍내와는 떨어진 외곽 동네에 살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면 부러움도 시기도 없어진다.



국민학교 3학년 즈음, 학교에 급식소가 들어오지 않았을 때다. 모두들 도시락을 싸와서 옹기종기 먹었다. 누가 누구와 먹는지는 굉장히 중요한데, 그럴 때 나는 소외당하고 싶지 않았다. 도시락을 꺼내면서 서서히 무리를 이루는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같이 먹자.”라고 말할 만큼 적극적이지 못했다. 누가 그걸 말해주기를 기다리면서, 혼자 먹게 될까봐 덜덜 떨어서 그 자리에 꿈쩍 않고 서있었다.



읍내 종로에 살던 아이들은 수준이 맞고 엄마들의 교류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고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그리고 또 비슷한 부류의 다른 무리가 있다. 그리고 나처럼 외지에서 와서 도대체 어느 쪽에 가야 할지 모르는 놀이의 깍두기 같은 존재가 있다. 나는 그 딴딴한 무리 틈에거 마음이 약한 아이들 혹은 조금 개방적인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깐, 모래 놀이에서 살금살금 모래를 파먹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남희가 날 받아줬고 주희는 남희의 친구여서 같이 먹었다. 한번 같이 먹으면 늘 그렇게 같이 먹게 마련인데, 이따금 영숙이도 함께 먹은 걸 보면, 가끔 다른 무리가 섞이기도 했다. 반의 중심인 종로파 애들도 가끔, 우리 쪽에 오는 일이 있었다. 자기들이 원할 때만이었지만. 남정이는 종로파의 대장이었다. 그때는 아직 예뻤고, 성적도 괜찮았다. 아이들의 관심을 빨아다니는 대세였다.




내 엄마는 김치, 김, 약지, 계란말이, 쥐포 볶음, 분홍색 소시지 같은 평범한 반찬을 도시락 반찬으로 싸줬다. 남정이는 매일 흰밥에 진주햄을 싸왔다. 남정이 도시락 쌀알은 굉장히 길었다. 밥을 해놓으면 윤기가 잘잘 흘렀지만 끈기는 부족하고 식감이 물렀다. 시중에 흔한 그런 특징 없는 쌀이었다. 우리 집 쌀은 노릇한 게 밥을 해놓으면 쌀눈이 까만 게 알알이 씹혔다. 게다가 고소함이 남정이 것과 완전히 달랐다. 도시락 한쪽에는 그런 미끈한 밥이 한 쪽 칸막이에는 햄 세 조각, 그 밑에는 케첩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이들은 밥맛보다 반찬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처음에 남정이의 도시락을 보고 놀랐다. 진주 햄. 그 탱글탱글한 식감과 간간이 씹히는 지방이 짭조름해서 입맛을 돋구는 그 진주햄. 그때는 비쌌는데 그걸 반찬으로 싸 올 애는 돈 많은 남정이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저 남정이가 부러웠다. 화중지병. 진주 햄을 바라보며 나는 멸치를 집어 먹었다. 남희는 깻잎을 입에 넣었다.




남정이 엄마는 창의력이 없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햄 반찬을 싸줬다. 한 달이 지나자 우리는 햄을 보고 눈도 껌뻑하지 않았다. 햄은 뭐 그렇고 그런 반찬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남정이가 우리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반찬을 훔쳐볼 때 상황이 달라졌다.


그날은 남정이가 기름맛이 당겼을지도 몰랐다. “내 햄이랑 네 자반이랑 바꾸자.”그 말을 듣고 우리는 귀가 쫑긋했다. 주희가 남정이 햄을 하나 받았다. 그걸 먹고 나서, 남정이는 그 옆에 오징어 젓갈이 신기했던 건지 또 햄과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 콩볶음을 맛보더니 햄을 내 밥 위에다가 올렸다. 우리는 행복했다. 탱글탱글하고 짭조름한 햄은 맛있었다. 한 입 더 먹고 싶었다. 그 소원은 이뤄졌다. 우리는 질릴 때까지 그 햄을 먹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남정이 엄마의 창의력이 하루 만에 좋아질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남정이 엄마는 똑같이 햄을 싸줬다. 아무래도 큰 진주햄을 사놓고 매일 서너 조각을 썰어서 구워주는 게 분명했다. 이제 남정이는 도시락 뚜껑을 열기도 전에 자기 도시락을 우리 앞으로 놓고 우리 반찬을 대 놓고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맛있는 햄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기뻤고, 남정이는 다양한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반전. 우리가 햄 맛을 처음으로 맛보고 행복했던 시간도 철새처럼 갔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특별히 맛있던 햄도 평범해졌다. 아마 그 즈음 학교에 급식소가 들어왔고 우리는 더 이상 남정이의 진주햄 반찬을 맛보지 못했다.



나는 가끔, 붉은 표면에 격자무늬를 새긴 햄을 보면 남정이와 우리가 햄을 두고 다투던, 어쩌다 함께 섞이며 도시락 먹던 때를 생각한다. 그리고 밥에 케첩을 찍은 햄 한 조각을 올리고 먹는 상상을 한다. 내 욕구의 정점은 다름 아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런 상상이 부푼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도 그 시절의 그리움은 채워준다. 그리움의 고무줄은 자꾸만 뒤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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