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 생>모모이야기

로맹가리 저

by 원더혜숙

마음이 아픈 게 싫어서 불행과 가난, 아픈 사람을 외면하고 살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내 삶이 그들보다 낫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도 이기적이라고 생각해서다. 슬픈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낭만적이고 밝은 앤에게 매료되어 몇 시간 동안 붕 뜨고 있었을 때, 모모 이야기가 다가왔다. “사랑해야 한다”라고 끝난 소설의 앞에서 마음이 먹먹했다. 어린 소년이 살아온 삶이 슬프고 고단했고, 그럼에도 사랑해야 한다고 끝을 맺는 이 소설을 어쩔까, 고민했다. 나는 모모를 사랑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었다. 달걀을 훔쳤는데, 귀엽다고 했던 아줌마처럼 모모에게 뽀뽀를 해주고 싶어졌다. 모모는 특별하니깐.



모모 인생은 불행의 전형이다. 모모 주위에는 창녀, 뚜쟁이, 마약에 빠진 소년, 게이, 이민자 등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 그와 사는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 창녀, 모모 엄마도 창녀, 아버지는 뚜쟁이다. 게다가 로자 아줌마는 죽음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중이다. 희망이라고 보이지 않는 그 생에서 모모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모모의 생을 엿보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는 찾을 수 없는 미래를 보장해 주기 위해 쉬페르를 다른 곳에 줘버렸다고 했을 때 아이들이 몇 시간 동안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모모는 개를 훔쳐서 키운다. 개를 사랑하지만, 모모도 안다. 개에게조차 그 집에서는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개를 팔아버렸다. 미친 게 아니냐고,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카츠 의사선생님에게 데려가지만,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나무라며 신경 안정제를 줬다.



“나딘은 때로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귀를 막는 시늉을 했다. 그런 모습이 좀 우스웠다. 사람은 어쨌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261쪽 모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금발 아줌마 나딘은 자기 생과 전혀 다른 모모의 스토리를 듣고 귀를 막았다. 내가 어두운 이야기를 외면하려고 했던 것과 닮았다. 모모는 자신의 스토리도 다른 생과 다름없는 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멋진 소년이다.


카츠 선생님이 로자 아줌마가 조만간 병원에 가야 한다는 선언을 했지만, 모모는 병원은 스스로 생을 끝낼 자유도 주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 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246쪽 이 선언으로 모모는 궁지에 몰린다. 모모도 로자 아줌마도 병원에서 의료 기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붙어있게 한다는 것을 반대한다. 그런 생은 원치 않는다. 모모는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313쪽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123쪽 행복을 위해서 노력을 하기보다 자기 앞에 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한다. 자기 앞의 생은 비참하다. 고단하고, 슬프다. 자기 앞에 생과 다른 세계의 생은 차라리 외면하는 게 모모에게는 쉽다. 그렇다고 해도 모모는 자신을 위로하는 것을 안 잊는다. 모모는 팔다리가 없는 남자 사진을 보고 말한다. “나는 그 사람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는 걸 느끼기 위해 종종 그 사진을 떠올리곤 했다.” 아무리 빌어먹을 인생이라도 팔 다리가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위안 삼는 모모는 삶에 대한 단수가 높다.


모모와 로자아줌마


모모는 아버지가 나타나고 열 살이 아니라 열 네살이라는 법적으로 성인의 보호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에게 나이를 속였다. 그녀에게는 모모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아는 모모도 로자 아줌마밖에 없다. “로자 아줌마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 둘 다 아무것도, 아무도 없다는…” 45쪽 둘을 보살펴 줄 사람은 서로 빼고 아무도 없다. 로자 아줌마는 머리카락도 없고, 돈도 없고, 가족도 없다. 심지어 늙고 못생겼다. 그래도 로자 아줌마는 엄마의 사랑도 못 받고, 아버지 보호도 없었던 모모에게 소중한 존재다. “사람들은 그녀가 냉정하다고 했지만, 세상에 그녀를 돌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육십오 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 왔으니 때로는 그녀를 용서해 줘야 한다.”


자기희생을 하는 기회를 가진 사람은 자기 존재와 생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위해 자기를 희생해야 한다. 아직 어리지만,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못생기고 늙은 로자 아줌마를 돌본다. “따라서 로자 아줌마가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했다.” 왈룸바가 말했다.”211쪽 로자 아줌마의 병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는 모모의 아픔은 더 크다. “아픈 데는 하나도 없는데 딱히 이유도 없이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25쪽 모모의 삶이 얼마나 괴로운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런 상태로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134쪽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들었다가 나갔다가 하는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모모는 괴롭다.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거꾸로 된 세상, 이건 정말 나의 빌어먹을 인생 중에서 내가 본 가장 멋진 일이었다.”141쪽 빌어먹을 생에서 로자 아줌마를 젊게 만들어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 멋지게 보인다. 그만큼 그는 로자 아줌마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와 하밀 할아버지는 물론 아래층 프랑스 남자에게까지 연민을 느낀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나오는 연금이 있다 해도 그 역시 돈 없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노인이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인데 말이다.”174쪽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관심이라는 것을 어린 모모는 벌써 알고 있다. 성숙하다.


“나는 로자 아줌마의 손을 잡고 앉아 그때처럼 경찰이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그토록 나는 불안했던 것이다.”158쪽 로자 아줌마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소년은 무섭다. 그 무서움을 물리치기 위해 경찰을 불러낸다. 외로움을 대신해 우산 친구 아르튀르를 만들고, 생의 괴로움을 잊게 늘 웃는 푸른 광대를 떠올린다. 세상에게 가장 힘센 경찰이 그의 친구가 되어 든든한 지원군이 되는 것을 상상하고, 밤이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핥아 주는 암사자도 만난다. “나는 울지 않았다. 더 울 필요도 없었다. … 한동안 그리고 있다가 나는 상상 속의 경찰을 불러냈다. “189쪽 모모는 특별하다. 자기를 위로할 상상력이 있으니깐.


사랑과 희망


모모의 생은 힘들었지만, 그는 사랑이 무엇이고, 희망이 어떻게 그에게 올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모모에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자 아줌마, 롤라 아줌마, 하밀 할아버지, 친구들과 이웃들이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할 나이에 모모는 어느 가게에 들어가 계란 하나를 훔친다. 그를 발견한 주인 여자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다. 모모는 말썽꾸러기 고아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때 내 나이 여섯 살쯤이었고, 나는 내 생이 모두 거기 달려있다고 생각했다.”19쪽



모모는 사랑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제일 크다는 이유에서 로자 아줌마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았고, 똥을 싸질러댔지만 여전히 제일 아끼는 아이다. “나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그녀에게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존재라고 몇 번이고 맹세했다.”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의 친구이자 정신적 지주다.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때때로 모모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준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그런 것들이 어릴 때 배워야 할 것들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사람은 무엇이든 배울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56쪽 모모는 전적으로 하밀 할아버지가 있어서, 삐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불행한 사람들의 삶은 절망적이고 비도덕적일까. 불행하다고 해서 도둑질을 하고, 몸을 팔고, 마약에 중독되어야 할까. 모모는 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최소한 도덕 기준이 있다. “절대로 엉덩이로 빌어먹고 살지는 않겠다’. 누가 아랍인이라고 놀려도 그는 “그러나 나는 절대로 싸우지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는 일은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13쪽하고 한다. 그의 친구 르 마트르가 마약에 쩔어있는 반면, 모모는 담배는 피워도 마약은 하지 않는다. 그의 최소한 도덕적 기준은 그를 길러준 로자 아줌마와 닮았다. 자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약을 먹여 재우지도 않았고, 폭력적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을 기르는 대가로 우편환을 받았지만, 그것이 끊겼다고 해서 아이들을 빈민 구제 소로 보내지도 않는다. 모모가 아랍인이라고 놀리지도 않는 것도 다 생각이 있어서다. 또 돈을 주고 안부를 묻는 게이 롤라 아줌마, 로자 아줌마를 위해 아프리카 식으로 노래를 불러주는 친구들, 필요한 음식을 주는 이웃들, 의사 선생님을 7층 아파트까지 들고 올라가도록 도와주는 형제들도 모모에게는 희망이고 사랑이다. 그들 덕분에 모모는 꿋꿋했다.


사람은 사랑없이 살 수 있을까


처음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우편환 때문에 자기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12쪽 할아버지는 부끄럽게 ‘그렇단다’고 한다. 모모는 크게 운다. 모모는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자연이 할아버지의 기억을 갉아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모모는 잘 이해했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나딘 아줌마와 그녀의 아이들과 별장에 있으면서, 모모는 이 사람들이 좋아질 것임을 예감한다. 물론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지만, 계속 그리워할 것이지만 그 앞에 있는 생은 그 나름대로 받아들이는 게 모모의 인생관이니깐.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에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모모의 생, 로자 아줌마가 없는 생. 어쩌면 희망을 줄지도 모르는 나딘 아줌마와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결심이다. 그다지도 무자비한 그의 생에서 그를 구원해 줄 것이 오직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며


인생이 험난하다고 해서 인생을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난도 겪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써 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대로 잘 사는 그야말로 다른 세계에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고, 생을 보는 관점 혹은 그 무게는 달라진다. 모모는 열 살이지만, 그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하고 연구한다. 생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세우고 주어진 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나는 영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여러분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그가 생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144쪽 어떤 생이라도, 그 생에서 열심히 살라는 것, 이것이 작가가 하려는 말 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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