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생활]너와 나는 다르니..

by 원더혜숙

우리는 다섯 번 칭찬을 받으면 겨우 한 번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비판을 싫어한다.

또 어쩔 때는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것에서 묘미를 발견한다.


화면 캡처 2020-09-17 063311.png


놀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안내판이 눈에 띈다.

“작은 놀이터; 3살 이하의 어린이들만 놀 것!”


놀이터 많은 독일에서도 드문 연령 제한, 그것도 작은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우리 아이들은 5살과 6살, 여기서 놀면 안 된다. 보기에도 작은 미끄럼틀과 그네이기 때문에 큰 아이들이 놀면 부서지겠거니와 작은 어린이들이 큰 아이들과 부딪히면서 놀면 다치겠거니, 아이들에게 설명했고 우리는 거기에 있는 모래를 가지고 놀기로 했다. 그 사이13살은 되어 보이는 소녀와 소년이 와서 그네를 타고 놀았다. 나는 그네가 얼마나 심하게 흔들리는지, 아이들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보고 관찰하고 있었다.


“엄마, 쟤네들 봐. 큰 어린이인데 그네 타고 놀잖아. 엄마가 한마디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엄마 말 안 할 거야.”

“엄마, 독일어 못해서 그런 거지?”첫째가 추궁했다.

“아니, 그 정도로 독일어 못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카트린이 아니기 때문이지. 엄마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부모가 와서 말할 거고, 저 정도 나이면 자기들이 규칙은 지켜줘야지.”


소녀는 놀이터 표지판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제 그만두겠지.’하고 생각했는데, 그 둘은 그전보다 더 강하게 그네를 흔들면서 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에 빠져 있던 아버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 놀이터에 왔다.

“여기서 그만 놀아. 너네가 그렇게 흔들어 대면 그네가 망가지잖아.”

딸은 바로 멈추지 않고, “나 그래도 한 번은 더 탈 거야.”하며 그네를 잡았다.

그때 아버지가 딸의 등짝을 찰싹하고 후려쳤다. “한 번 말할 때 알아들어!”

여자애는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건 너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폭력이었다. “그렇다고 울건 없잖아.” 아버지가 말을 이으면서 딸을 감싸려고 하자. 딸은 장난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눈물을 훔치면서 무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말리면서 앞으로 당겼다.


“거봐, 엄마가 말 안 해도 해결됐지? 그런데, 아빠가 너무 하지 않았어? 안 때리고 말했으면 더 좋았을걸. 엄마라면 안 때리고 좋은 말로 했을 텐데. 때린다고 설득이 되겠어? 그냥 폭력에 수긍할 뿐이지.”



아이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모래로 성을 만들었다. 남편에게 내가 본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그런 흔치 않는 작은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를 만든 게 이상하다는 사실에 집착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어쨌든 그런 규칙은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지켜야 하지.” 남편은 겨우 내 말에 동의했다. 또 그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잘했다고 칭찬을 받았다.




11분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A9 고속도로.

옛날 모델 폭스바겐 파란 봉고차. 그 지붕 위에는 서핑보드와 검은 가방을 얹어 묵었고, 트렁크 뒤에는 구식 자전거 두 대를 실었다. 젊은 남자의 잘 그을리고 근육 잘진 팔이 가끔씩 창문 밖으로 나와 바람을 느끼려는 듯했다.

“엄마, 발을 창밖으로 내면 안 되는 거지? 저 여자 봐”

“에이 설마 누가 그러겠니?”

서서히 움직이는 차를 하나씩 보면서 아들이 가리키는 여자를 찾았다. 파란 봉고차 보조석에 여자는 편안히 팔을 얼굴에 괴고 비스듬히 앉아서 까만 발목 양말을 신은 두 발을 가지런히 창밖으로 내고 교통체증이 풀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진짜네. 저러면 위험하지.”

“엄마, 저 여자 미쳤나 봐.” 둘째가 말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이건 평소에 내 말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치지는 않았지. 아들아. 그런데 진짜 저러면 안 되는데, 왜 그럴까.”

그 여자가 어떻게 규칙을 어겼으며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떤 결과가 기다릴지에 대해서 토론하는 중 우리는 흥분했다.


이렇듯 우리는 요즘 규칙을 지킬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대해 자주 토론한다. 만약,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들이 지키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들 행동이 어떻게 해서 잘못되었는지 비판한다. 거기서 은근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또 그러는 동안 나와 아이들은 우리가 얼마나 바른 사람인지에 대해 확인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거나 지적할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판단 기준과 그들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다른가. 가치관이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에 대해 이번 휴가에서 다시 한번 깨달아서다.


아이들과 우노 게임(원카드와 비슷한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이 놀다가, 카트린이 끼어들었다. 한 사람이 카드를 내고 나면 다른 사람도 즉각 카드를 내야 한다고 재촉했다. 아니, 그것보다 “이번엔 네 차례야, 네 차례야”하고 그다음 주자를 바로 불렀다. 그녀의 아들 차례다. 카드 게임에 익숙하지 않는 아이들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 아이들은 보통 자기 패를 다 보여준다. 그녀는 “얘, 4번 카드 내!” 아니면, 카드를 자기가 냉큼 먼저 빼어 들고 대신 냈고, 자기 것도 그에 따라 냈다. 그리고 다음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다.


게임이 아니라, 마치 군인 훈련 같았다. 재미없이, 카드를 빨리 내는 훈련. 아이들은 생각할 시간도 필요하고, 잘못된 카드를 낼 수도 있다. 잘못되면 지게 될 것이고, 잘 내도 질 수 있다. 게임은 게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 인생도 그렇다. 실수 한번 하지 않고 어떻게 쭉쭉 잘 나아갈 수 있을는지. 그것은 그녀의 교육관이고, 내 교육관과 다르다. 내 기준과 그녀 기준은 다르다. 그래서 뒤에서 그녀의 교육관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토론하지만, 절대로 그녀에게 조언하지 않는다.


그런 조언은 쓸데없는 것이고, 실제로 그것은 조언도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볼 뿐.


국도에서 천천히 달리다 보면 추월해서 앞서 달려가는 차들을 본다. 어떤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내 앞을 달리고 싶은 운전자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신호등 앞에서는 나를 추월했던 차나 내 앞에서 천천히 달리던 트랙터도 나도 모두 서서 신호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한 줄에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결국엔 같은 종착점에 도착한다고. 누가 더 낫거나 누가 더 처지는 속도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 없다.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의미 있는 삶을 살면 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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