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언제까지 이방인일까

by 원더혜숙

사람은 자신이 무리와 다르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어린 시절, 읍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요. 읍 아이들에게 저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낯선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그랬죠. 그들이 모두 학원을 마친 후에 함께 놀았던 반면에, 저는 집에 걸어서 귀가해서 오빠랑 동네서 놀았으니깐요.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럴듯한 교육 혜택도, 읍 아이들과 접촉도 있을 수 없었어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촌과 중소도시의 교육수준 차이, 대학생 때는 소득수준 차이, 일본 유학에서는 언어와 문화 차이, 친구들 간에도 생활 수준 차이를 실감했습니다.


지금은 이방인으로서 독일에 살고 있고, 매일 다른 세계를 마주하면서 다름을 인식하는 것이 제‘일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습니다. 어떤 7살 남자아이가 우리를 보고 ‘중국인 아니야?’들리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라고 들리게 말했어요. 약간 화도 났어요. 둘째에게 “우리는 독일인과 다르게 생겼어. 우리가 다른 것을 보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삼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데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들이 세상이 넓다는 것을 모르는 거야. 아시아라는 곳이 있고 거기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나는 거기서 왔다는 것.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만날 텐데…” 듣는 와중에도 둘째의 눈은 그 아이를 쫓습니다.


남자애는 몸을 흔들면서 히죽히죽 웃었어요. 그 남자애가 다른 곳으로 가자, 둘째는 말하는 저를 아랑곳 않고 그 애를 따라갔어요. 몇 분 후, 그들은 신나게 술래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화면 캡처 2020-09-17 061329.png

다름을 인식하고, 놀리는 그 어린애를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내 아이를 그런 아이와 떼 놓으려고 했는데, 아이는 그것보다 더 멋진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함께 놀면서 친해지기. 술래잡기라는 놀이로 그들은 피부와 언어문화적 차이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헤어지며 잘 가라고 인사까지 했으니 편협한 엄마의 관점보다 낫습니다.

아이들은 다름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필터 없이 내뱉습니다. 그건 어쩌면 차이를 차별하기 위한 행동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한 놀이터, 앞은 짧고 뒤는 긴 폭이 넓은 검은 집시치마를 입고, 놀이터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는 13살 정도 되는 여자 청소년 두 명을 만났습니다.


저를 발견하자마자 ‘아시안 사람.’라고 들리게 말했어요. 순간은 기분이 나빴어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죠. 저도 그중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어린이의 말투와 목소리에서 외국인이라는 표식을 찾아냈고,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남자아이의 피부와 머리와 눈썹 색깔, 높은 코에서 그가 또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냈죠. 표면적으로 내국인처럼 보이는 아이들은 여자 청소년 둘과 남자아이 두 명이었죠. 그렇게 구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죠.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시아인은 눈에 금방 띄어요. 아담한 체격에 까무잡잡한 피부, 비음이 섞인 억양이 오르락 내리락하면 베트남인. 체격은 크고 뭔가 기름기가 흘러 보이는 사람은 중국인. 왜소하고 옷차림이 수수하지만 내구성이 좋아 보이는 옷차림을 하고 얼굴이 핏기가 없고 턱이 좁은 사람은 일본인. 본능적인 판단입니다.


‘아이들처럼 다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입에 내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지. 거기에 차별이 생기기 전이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우리는 정말 다르게 생겼어.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 다름을 인정합니다. 차이를 입 밖으로 던지고, 그걸 들은 제가 차별까지 나아가서 생각하는 것은 어른의 관점으로 아이들을 재단한 것이 아닐까요?


이방인으로 살면서, 가끔 그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팩트에 마음이 조여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릅니다. 누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달라요. 그러면서 우리 모두 사람이고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는 감정이 있고, 인정(人情)이 있어요. 다름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같아질 수 없음을 한탄한다면 슬퍼질 수밖에 없죠. 같은 것을 기준으로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몇 마디라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에 만족합니다.


차이는 이미 존재합니다. 차이를 인식하고 마음의 변화를 바라봅니다. 그 간격이 얼마나 큰 것이냐. 또 극복 가능한 것일까요? 다르기 때문에 나와 너를 구분하는 말을 할 수도 있어요. 반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일종의 본능 같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관용적인 태도를 가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차이를 인식하는 마음은 모두 같으니깐요. 차이는 우리 본능과 인정이 같음을 인정하면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프 마라톤, 혼자하기 알짜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