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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Apr 02. 2020

바이러스 이후

바이러스 시대, 무엇을 모색해야 하나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같은 대학 동기이긴 해도 나이는 서너살 많아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다. 이런저런 의례적인 얘기가 오고가고 경제 문제로 화두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그는 벌써 20년째 사업 중이고 직원도 수십명이나 고용을 하는 처지다. 경기를 심하게 타는 사업은 아니지만 갑작스런 바이러스의 창궐 탓에 일감이 많이 줄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대출에 따른 이자 등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라 요새 더욱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고 전한다. 얼마나 이 질병의 영향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지는 갑작스럽게 부동산을 매각해야하겠다는 그의 선언 속에 드러났다. 꽤나 덩치가 큰(?) 땅에 건물을 짓겠다던 얘기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만큼 이번 바이러스의 영향이 쉽게 끝날 거 같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게다가 10여 전 금융위기와 비교할 때 그 양상이 더 심각하고 오래 가리라는 판단도 한몫 한 거 같다.



전화 통화를 끝나고 나서 나의 마음은 더 심난했다. 지금의 나야말로 불러줄 곳 없는 프리랜서 신세인지라 위기를 심각하게 체감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업적으로 일을 확대해보겠다는 거창한 계획도 세워났건만 대폭 수정해야 할 처지다. 사회적 거리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몇 주 동안 나는 온통 이 바이러스의 영향이 어떻게 흘러갈까 상상(?)하려 노력했다. 2000년대 사스며, 신종플루며, 메르스 등을 거쳐왔지만 지금처럼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걸쳐 이 정도로 심각하게 영향을 끼친 적이 있었나 싶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는 데 빨라봤자 통상 12개월에서 18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사태의 진정은 내년 3월이나 9월이나 되야 종식될 거 같다. 의료 시스템의 과부하를 막으면서 치료제 개발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질병의 충격이 경제를 넘어 정치나 문화 등 다른 영역에 어떻게 전이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나의 삶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으니 더욱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그래야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실천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성공적으로 의학적 대처를 잘 하는 국가로 소개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저 멀리 유럽이나 미국처럼 바이러스가 정점을 향해 나가는 상황이었다면 불확실의 정도는 더 심했으리라. 이제 효율적으로 공공의료가 대처한다는 가정 아래 우리의 경우 경제정책의 대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재난소득을 지급하겠다는 소식이 들리고, 우리나라도 지자체를 포함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재난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결정이 들린다. 수혜폭이나 정도는 누구나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의료정책만큼이나 경제정책 또한 기민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숨쉴 틈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영향이 가기 마련이다. 자영업, 일용직, 계약직, 프리랜서 등이 맨 앞에서 거친 파도를 맞아야 한다. 당장 매출과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나의 경우에는 대출이자가 없으니 다행이라고 자조해야 할까. 그러나 그런 마음의 여유도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듯 하다. 지금 당장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지 않으면 여분의 시간조차 기다려주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나의 요즘 고민거리는 사람 사이 연결이다. 사회적 관계를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만들고 확대할 방안이 없을까 생각하는 중이다. 평상시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사람을 대면하고 대화하는 게 가장 좋은 과정이겠지만 말이다. 어떤 상황이든 연결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다.



자발적 사회적 거리든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는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관계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존재이다. 나는 그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큰 매개가 대화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이 보고 싶지 않다가도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만나 얘기나눠야 하겠다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외적으로 위기가 닥쳐올수록 주변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아마도 그것은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기란 단어는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 아니던가. 위험에서 기회로 전화시킬 힘은 타인과 교류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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