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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Apr 08. 2020

어떤 방문

사람이 그립다

1.


지난 주말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먼 서울 근교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요즘 나의 생활에 별일이 없다. 그래서 거의 타의반 자의반 사회적 거리두리를 실천하고 있다. 일도 못하고 약속도 안 잡고 이런 식으로 시간을 흘러보낸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헛되이 쓰기에는 아까워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보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요즘 내 생활에 특별히 발생한 사건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실천도 한두달이 고비였나보다.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냥 사람이 보고 싶어서가 이유가 다였다. 혼자 사는 내가 연애도 안 하고 일도 안 하면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가 않다.  



스마트폰을 들고 전화를 걸까말까 한창 고민하다 마침내 약속을 잡았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뭐가 대수나고 되물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드니 이런 일조차도 쉽지가 않다. 상대의 소중한 시간을 뺐는 일이 아닐까 고민도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괜히 나의 어려운 사정을 넌지시 보여주는 일인듯해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속잡은 지인도 딱히 좋은 사정에 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도 동병상련이랄까, 나이 들어도 공부를 쉽게 포기 못하는 그나 나나 공통점이 있다. 몇 살 위의 형이지만 어렵사리 만나면 공부 얘기며 이런 저런 세상 얘기로 남자 둘이서 시간을 보내니 말이다.



2.


꽤나 험한 길을 운전해 그가 사는 산골짜기 동네에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 한두달 전에 만났을 때 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일단 안심이다. 지난 번 만났을 때 그는 어렵사리 한곳에 정착한 직후였다. 고등학교 이후 딱히 한곳에 오래 살아본 경험이 없는 그에게 이번 정착은 꽤나 의미가 있어 보였다. 공부하고 일한다는 이유로 수년간의 외국생활 이후 사업실패 등이 겹쳐 몸누울 곳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딱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갑게 맞는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걸까.



만나자마자 그의 방언이 터진다. 자신은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공부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내가고 있다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공부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말에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정말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눈빛을 반짝반짝 빛나며 얘기하는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 경제적 곤궁에 힘들어하며 넋두리하던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철학 공부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확 다가오니 내심 괜히 부럽기까지 했다. 사실 나도 공부를 하지만 딱히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삶의 고민이 더 큰 탓에 대학원 이후에는 다른 살 길을 찾고 있어서다.



3.


일요일 점심부터 시작된 얘기꽃은 밤 늦게서야 끝났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나는 차에 올랐다. 가로등도 없는 산길을 달리며 오늘 방문을 생각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만남은 아니었다. 그저 이야기하고 싶어서 간 게 다다. 하지만 잘 왔다 가는구나라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나의 문제가 가장 커 보여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는 자존심 때문에 타인과 만남을 주저했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의 문제는 혼자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 혼자서 이룰 만한 일이 별로 없다. 누군가를 만나 아이디어를 키워야 하고 하물며 돈조차 끌어와 사람 사이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자신의 틀에 박혀 뫼비우스띠처럼 뱅뱅 돌고 있는 자신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온통 세상이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거리를 강조하는 지금에 나는 주변 관계를 생각해본다. 내가 맺고 있던 사람과 관계는 얼마나 가까웠고 얼마나 깊었나. 경조사때 얼굴을 보거나 아니면 연말초 짧은 인사로 끝나는 관계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까. 혼자 있고 싶다가도 사람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사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독자로서 개인은 없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모든 개인은 사회적 개인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만 개인은 의미를 부여받기에 그렇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 야심한 밤에도 사람이 그리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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