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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키드 Aug 27. 2019

열심히 살지 않아서


어떤 만남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아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었다’. 한 달이나 훌쩍 지난 일을 언급하려니 단순 과거로는 성이 안 찬다. 대과거로 써야 할 듯하다. 갑자기, 아주 갑자기, 한 달 전 일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는 이유는 그 날 어떤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가슴을 찔러왔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 친구와 만남의 주선자는 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언제나 내가 먼저 연락하고 약속시간과 장소를 조율하고 만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누가 하라는 말을 하거나 떠밀지 않아도 내가 그 임무를 맡는 모양세다. 누군가 떠밀지도 않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보고 싶으니까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자주 연락을 하지도 않는다. 일년에 많아 봤자 두세 번이 다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느라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사업을 하느라고 바쁘다. 그래서 모임의 횟수가 그 정도다.



그 날 모임의 인원은 나를 포함해 세 명이다. 정기적으로 내가 만남을 주선하는 이들이다. 대학교부터 절친인지라 시간을 흘러도 다른 모임은 참가하지 못해도 이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임이 특이성이 있다면 술을 안 마시고, 가벼운 저녁식사 이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는 점이다. 그것도 자정을 넘어서까지 말이다. 음주를 안 하니 각자 차를 가져와 주말 늦은 시간 헤어져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 남자 셋이서 저녁 내내 그리고 때로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은 낯설다. 왜냐하면 나조차도 그런 모임은 그 약속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남자들끼리 뭉치는 모임은 의례 술 한잔 나누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 술을 마시지 못해서가 아니라 안 마신다. 그 시간의 얘기가 더 소중하니까. 그 이유가 전부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이야기 주제는 별 게 없다. 결혼을 한 이에게 나는 예의상(?) 제수씨와 아이들 근황을 물어본다. 그리고 사업을 하는 또 다른 이에게는 사업의 사정과 그의 연얘를 묻는다. 그밖에는 주변이의 사정이나 각자의 경제 활동 얘기가 주다. 그 날 내가 신경이 쓰였던 말 한마디의 전후 사정을 말해보기로 하자. 사업을 하는 이는 오래된 여친이 있다. 그 사람은 여친과 드디어(!) 결혼을 결심하고 식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다. 왜냐하면 마지막 연애 이후 지난 수년 동안 연애가 없기 때문이다. 그 모임의 둘은 항상 묻는다. 만나는 사람 있느냐고. 말했다시피 없다. 그러자 결혼을 앞둔 그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말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무엇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걸까. 열심히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할 노력을 안 한다는 건가, 아니면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그 말이 참으로 신경쓰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반박을 한다든지 화를 낸다는지 반응하지는 않았다. 오랜 절친과 우정을 말 한마디로 깨고 싶지 않아서다.



연애를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이유는 단순하다. 인연을 억지로 이어서 되는 게 안 된다는 깨달음(?) 외에 일정한 나이가 지나가니 이성을 향한 호기심 상실이 그 원천이다. 게다가 지난 수년 동안 나는 뜬금없이 대학원에 진학에 공부를 하고 있다. 누구 말을 빌리자면 ‘돈도 안 되는 공부’를 갑자기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 공부의 목적과 계획이 확실한 것 하나 없다. 정말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다. 오로지 쉬어야하겠다는 일념(?) 아래 그냥 소속 없이 백수로 놀기는 싫어서, 학적을 두고 공부하며 논다. 하지만 그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경제적 실천을 무작정 도외시할 수는 없어서다. 그 날 두 사람의 눈에 지난 몇 년간 내 행적은 경제적 활동과 상관없는 놀이로 가득 차 보였을 듯하다. 무언가는 부산히 하는 듯 보이데 돈은 안 버는 그런 거 말이다. 그렇게 보면 나는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상품으로 몸값을 높이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재테크다. 모임에서 얘기를 나눌 때마다 소외감을 느끼는 주제가 있는데 바로 부동산이다. 그들이 얘기를 나눌 때 나는 끼어들여야 할 틈새를 발견하지 못하겠다.



자기 계발과 자기 기술


경제적 실천, 재테크를 중심으로 자기계발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자기기술을 단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폐업 직전의 사업을 휴업해 놓고 있기는 하지만 계속 돈 벌 궁리를 한다. 그리고 혼자 사는 자신을 돌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고, ‘정해진’ 시간에 체육관에 가고, ‘정해진’ 시간에 먹는다. 누구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하기 위해 노력하는 셈이다. 공부도 자기돌봄의 기술 중 하나다. 그 전에 나는 내 일에 전혀 만족감을 얻고 있지 못했다. 거기에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집안의 대소사(가장 큰 사건은 부모님의 죽음이었다)를 치르다 보니 반갑지 않는 손님, 만성피로증후군이 찾아온 적도 있다. 지난 몇 년간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쓰러질 거 같아서 벌인 건전한 일탈(?)이었다. 열심히 살지 않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살지 않은 것을 선택했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지 않고 결혼을 하지 않은 데다가 아파트를 사지 않은 것 등을 예로 들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타박하겠지만 말이다.



매일 나는 수첩에 스케줄을 쓴다. 유일하게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습관 중 하나는 작은 다이어리에 일과를 계획하는 일이다. 그 노트에는 대개 빡빡하게 하루 일과가 시간대별로 기록돼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과거의 행적을 그 노트로 확인하곤 한다. 아주 가끔 비어있는 날도 있지만 대개 평일은 열심히 산 기록이 남겨져 있다. 오늘도 나는 스케줄러를 작성한다. 열심히 살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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