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어떤 날인지 설명해 보려고 한다. 평범하게 서늘하게 지나는 시간이라 할 수 있고, 갑작스러운 시그널 같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용건이 없이 보는데 익숙하다. 늘 그랬다. 오늘도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내 앞에서 그가 늙고있는 것 같았다.”는 소설 속 묘사를 떠올렸다. 서로의 얼굴에서 시간의 역사를 본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살아온 시간의 촘촘한 역사를 혼자가 아니라 함께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내가 기억하고 증언해줄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다.
나는 오늘 이야기할 사람을 찾고 싶었다. 아니다, 혼자 생각하고 싶었다. 오늘을 쓰고 싶다가 아무 기록도 남기고 싶지 않고 무시해 버리고 싶었다. 정리해줄 사람을 원했던 것 같은데 그전에 내가 상황을 이해하고 싶기도 했다. 머릿속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표현해보고 싶다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설명할 수 없다. 당장 정신 나간 짓을 하고 싶다가 또 용기가 없다는 걸 먼저 알게 돼서 씁쓸했다.
아침에 잠이 깨자마자 무심결에 “염병”하고 말했다. 욕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평생 처음이었다. 염병이란 말도 처음이다. 이렇게 시작한 것에 대해 기도했다. 죄송해요. 하나님. 이런 하루를 살라고 주신 것도 아닌데. 다만 내 생활은 동력을 잃은 자전거처럼 방향 없이 제 멋대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날들의 어느 한순간이었다.
이유 없이 만나는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이제 우리는 옛이야기를 훨씬 덜 한다. 요즘 취미로 관심 가지는 것들, 회사 이야기, 혼자 생각하는 것들, 지인들 소식에 대해 주로 이야기한다. 오늘도 그랬다. 점심시간에 어울릴 만한. 디저트를 거의 다 먹었을 때 진짜가 시작되었다.
오늘 보자고 한 건 이유가 없지 않아.
오늘은 그동안의 어떤 순간보다 나쁜 일을 듣게 될 거라는 걸 순간 느꼈다. 그동안 이런 유의 대화가 많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시작된다면 분명 나쁜 소식이다. 아마 그 순간 나야말로 그 앞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너 y소식 모르지?
몇 년 전 소식을 끊은 y와 나의 관계를 오늘 처음 입 밖으로 낸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로 넘어가야 했다. 사고를 당한 친구 소식. 짧게 그녀의 소식이 전해지는 동안 나는 말의 무게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그가 말을 마친 후에도 한참 침묵했다. 머릿속은 휘몰아치는데 말을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몇 개월 지내면서 옛날 편지랑 사진을 많이 봤는데, 네가 찍어준 사진이 제일 많더란다. 그 시간을 어떻게 없는 것으로 하겠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 그런데 너에게는 소식 알려달라더라. 네 사진도 보내 달래.
한 사람이 하루에 새로운 소식을 몇 개나 들으며 사는지 궁금하다. 오늘의 불행은 내 주변에 있었다. 이런 소식이 오늘 내 앞으로 전해질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늘이 아닌 어떤 날에도 듣게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소식. 오늘은 염병할 날이 맞았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이렇게 밥을 먹자.
이유 없이 더 자주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오늘 내가 들은 소식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필요해지는 소식이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가능한 모든 필름을 머릿속에서 꺼냈다. 정리 안 된 벽장문을 열자 쏟아져 내리는 물건들처럼 기억이 쏟아졌다. 우리 관계를 정리한 후로 나는 자주 그 관계를 떠올렸다. 좋았던 일, 좋지 않았던 일. 서운했고 화가 났던 일. 내가 잘못한 일. 서로 상처 주고 실수했던 기억을 자꾸 복기했다. 같은 방식으로 또 누군가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덕분에 불안했던 또 하나의 관계를 잘 넘겼다. 한 사람을 잃고 난 후 나는 또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런데 오늘 다시 뒤돌아 지워버린 관계를 깨웠다.
내 곁의 친구들이 이토록 소중하다는 걸 오랫동안 무시하고 산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그 깨달음이 마치 누군가의 고통에 기댄 생각 같아 더욱 죄책감이 든다. 나야말로 염병한다.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나는 누군가의 불행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늘 어쩔 줄 몰라한다. 불행은 어쩜 이렇게도 흔한지. 남의 이야기일 땐 예상 가능한 슬픔도 주위로 다가오면 삶이 이렇게 지독한가 진저리가 난다. 사는 게 지겹다. 매일 듣는 소식에 언제 어떻게 불행이 섞여 날아들지도 모른채 무방비 상태로 귀를 열고 다녀야한다는 사실에 겁이 난다. 내일도 그저 행운을 빌며 조심스럽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