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의 건전화합가요를 좋아한다. 그중엔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의 형제 우리의 친구에게도 우리라 말해줘요.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우리에게도 우리라 말해줘요.
한동안 꽂혀서 매일 들었다. 조르조 바사니의 ‘금테 안경’ 속에는 우리라고 불리고 싶은 사람들, 우리가 아닌 집단으로 분류되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면서 존경받던 의사 파디가티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가 존경받는 의사 선생님이던 시절부터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부부가 불을 끄고 잠들기 전 몇 분쯤은 꼭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작고 투명한 사회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공적인 영역과 사생활을 분리하고자 하는 정당한 요구만큼 무분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없다. -13p-
그때의 태도가 선망과 호기심이라면, 시작한 사람이 명확치 않은 소문을 타고 그가 동성애자인 것이 밝혀지면서 관심의 방향은 달라진다.
몸짓과 찡그린 표정이면 되었다. 파디가티가 '그거'라고,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따금 부적절한 일, 특히 동성애와 같은 문제를 말할 때 그러하듯 사투리를 써가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 지역에서도 언제나 사투리는 상류층의 언어보다 훨씬 더 악의적이었다. 그다음엔 우수에 찬 감정이 덧붙었다. -19p-
요컨대 그는 경솔하지도, 성가시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차츰차츰 객실 나무 의자의 팔 분의 일도 안 되는 면적만을 차지할 정도로 더욱더 움츠려갔음, 우리 대부분은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서서히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잃기 시작했다. -47p-
그는 평생 ‘우리’ 안에 속하길 원한 사람이었다. 2등석 기차표를 사고도 굳이 역무원을 성가시게 굴어 3등석으로 넘어오는 것, 비싼 1층 자리 표를 사지만 2층으로 올라와 영화를 보는 것. 그것은 ‘우리’라고 불러주지 않는 ‘그들’의 세계에 속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었던 것 같다. 델릴리에르스가 의도적으로 그에게 모욕을 주고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줄 때도 그는 당당하게 화를 내거나 델릴리에르스에게 맞서지 못했다.
그는 이상하기 짝이 없었고, 몹시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니노와 델릴리에르스가 무례하게 굴수록 그는 더욱더 친절하게 대하려는 헛된 시도에 매달렸다. 두 사람을 향한 상냥한 말과 동조의 눈빛, 유쾌한 미소 등 그는 정말이지 무엇이든 다 했다. -48p-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파르가티 선생님의 비극은 악의적으로 사건을 만드는 델릴리에르스 때문이 아니라 방관하고 소문을 서로 공유하며 그를 절대 ‘우리’라고 불러주지 않은 마을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대부분 실체가 없다. 고독이나 외로움은 상당수 가해자 없는 집단행동 때문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라는 말을 어느 단어 앞에도 붙이길 좋아하는 나라에서 ‘우리’에 속하지 못한다는 소외감은 지극한 고독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구분 없이 사용한다. 더 나쁜 것은 누군가의 약점을(사실 약점이라고 해선 안 되는 것들)을 모든 행위의 원인으로 귀결시키는 성급함이다. 파디가티 선생님을 향해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그거’, ‘그런 사람’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모든 행위를 내려 보듯 말이다.
자신 역시 어느 구분으로는 소수집단에 속하면서도 사람들은 편견을 만들고 차별하기를 쉬지 않는다. 판단의 근거는 허술한데 편견과 차별은 무한 증식한다.
소설 뒷부분에서 파디가티 선생님에 대해 화자의 친구가 말한다.
"역겨워!" 그가 소리쳤다. 그러고는 편지 내용을 과장해서 늘어놓았다. 문투에 대해, 그리고 페라라와 볼로냐를 오가는 그 여정의 길동무가 되어 큰 호의를 베풀었던 나와 우리 모두를 향한 모욕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 이탈리아에서는, " 그는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와 같은 자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행정권에 부여된 모든 권한을 활용해서 처형하는 거야. 그러곤 안녕인 거지. 지금 같아서야 이탈리아 사회가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말을 마쳤다. "놀랍군."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머잖아 나를 불결한 유대인이라고 부르겠지."
이 부분을 읽으며 기억을 스치는 장면들이 있었다. 누군가를 비방하는 칼의 손잡이에서 또 다른 칼날이 솟아 나와 나를 겨누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던 어느 대화들 말이다. 나는 너와 '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순간 선을 긋고 나를 그 밖을 확 밀쳐버리는 것 같은 말들. 쉽게 경계를 만들고, 그 밖에 선 사람들을 극렬히 배척하는 편견. 악의 없는 가해자.
하지만 지금 슬쩍 부끄러워지는 것은 나 역시 모르고, 또 알면서도 모르는 척 선 긋기로 누군가를 저 밖으로 내 몰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이승환의 건전화합가요를 들어보자. “우리의 형제 우리의 친구에게도 우리라 말해줘요.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우리에게도 우리라 말해줘요. “ 앞 가사는 이렇다.
너와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믿을 사람 절대 없다고 늘 생각하지, 살피고 또 살피겠지만 혼자는 싫어. 너와 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이라 진실 거짓보다 재미없어 흥미 없지. 너와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 위기는 더디 가고 평화는 쏜살같아.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혼자가 아냐.
서로 모순덩어리인 채로 '우리' 때문에 상처를 교환 하면서도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나와 우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 같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