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다 흐름을 타는 바람에 보름 동안 네댓 권의 책을 읽었다. 서점에 가더라도 들춰본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고 나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최근엔 그렇게 운이 좋았다. 우연히도 여성을 주제로 한 책들이 많았는데 여성의 성장기, 여성의 직장 생활, 한국사회 여성에 대한 억압 등이 주제였다. 따져보면 우연도 아니다. 구미가 당기는 주제를 검색했고 맛을 보니 괜찮아서 끝까지 읽고. 수순대로 였다.
안팎으로 책 순환이 활발한 가을이다. 묵은 책은 중고서점으로 빠져나가고 새책이 집으로 흘러드니 택배 아저씨와도 가까워졌다. 거의 매일 박스를 놓고 가고 가져가신다. 이쯤 되면 인정상 초콜릿 쿠키랑 음료수라도 한 번쯤 드려야 하나 생각 중이다.
오늘 아침에도 살포시 은희경 작가님 신작을 두고 가셨다. 서점에서 여러 책을 읽어재끼던 날 첫 서너 장을 읽고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대 기숙사 학생들의 이야기가 중심인 소설의 제목은 ‘빛의 과거’다. 제목이 이렇게 유혹하면 그냥 빼박이지 뭐. 게다가 작가님과 나는 동문이라 그 대학생 이야기가 더 남같지 않았다구.
작가님 책을 꾸준히 읽는 팬은 아니었는데, 지난번 <태연한 인생>부터 인터뷰도 찾아보게 되었고 결국 이번 신작도 이렇게 바로 사는 사이가 되었다. 인터뷰 찾아보면 끝난 거지 뭐. 수순대로. 솔직히 고백하면 잘 읽고 중고서점에 넘길 마음이었는데 처음 10장을 읽고 이건 팔 수 없겠구나 싶었다. 일기장 같은 책은 당연히 곁에 둬야지. 서점에서 서서 읽다가 덥석 잡아들게 된 결정적 문장은 이렇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대할 때 미묘한 권력관계를 만드는 습성이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의 자장을 만들어내고 우월감과 피해 의식을 번갈아 써가며 그것을 정당화했다. 그것에는 증인이 필요했다. 결국 나로 하여금 위성처럼 그녀의 궤도를 따라 돌며 그녀라는 일방적이고 변덕스러운 광원을 반사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분명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런 식의 관계가 처음도 아닌데, 처음이 아니라 싫었다. 만만하게 보이는 것 같아 울화가 치미는 일이 많았다. 오늘은 서점 앱에서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첫인상> 이란 책을 눈여겨보기까지 했다. 나는 속 좋은 사람 아닌데 만만하게 보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촘촘히 등장하는지.
길에서도 나만 잡는다. 덕이 많은 상이다, 위장이 나쁜 상이다. 조상님 묏자리를 바꿔야 할 상이다. 주로 이어폰을 끼고 못 들은 척 지나치는 방법으로 물리쳐 왔는데 한 번은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는지. 저기요, 저기요 하면서 관상이 어쩌고 건강이 어쩌고 조상님 등등하며 5m쯤 따라오더니 급기야 팔을 거칠게 툭툭 치면서 “안 들리세요?” 하는 거다. 그건 선을 넘는 거다. 낯선 사람의 팔을 툭툭 치는 거. 화를 벌컥 냈어야 했는데.
낯선 사람이 만만히 봐도 언짢은데 가까운 사람이 만만히 보면 그냥 끝인 거거든. 수순대로. 나를 만만이로 보던 Z는 급기야 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한테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뭘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
마지막 선을 넘는 순간이었고 결국 Z와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로 끝이 났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는 길에 다른 친구의 전화를 받고 한참을 통화하면서 나를 세워두다가 손짓으로 ‘가’라는 신호를 보낸 X는 전화를 내려놓고 ‘밥 먹는 건 다음으로 미룰 수 있겠냐’고 양해를 구하는 일도 거를 만큼 나를 만만이로 봤다. 이젠 지인들 경조사에서 억지로 마주치는 사이가 됐다. 그때부턴 제대로 어렵고 불편해주는 거다. 선 넘으면 그게 수순이다.
얘가 작가도 아닌데 가서 작가인척 했데요.
그건 나쁜 말이었다. 시작한지 막 4개월 쯤 되었지만 나는 작가라는 직업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넌 입봉을 안했으니 작가도 아니야.’ 라는 뜻이며 동시에 ‘아직 “우리”안에 넌 없어. 여기에서 같이 일해도 넌 우리랑 달라.’ 같은 뜻이었다. 서운했다. 우리 친구 아니었나? 동료도 못 되는 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어도 당신이 작가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버리면 쭉 밀려나줘야 하는 건가? 그때는 불쾌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어렸다. 그런 말도 처음이었고.
까탈스럽고 싶지 않지만 우스워지는 건 짜증이 난다. 이 둘은 동시에 해내기가 쉽지 않다는 딜레마. <빛의 과거>엔 이런 문장도 있다. “그녀는 고독과 가난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받은 모욕이 자신을 작가로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작가와 척지지 마라. 인쇄기로 찍어서 복수하는 자들이다.” 같은 말도 있다. 이제 활자로 찍어 복수하는 일이 모두에게 열린 21세기. 아직 나는 그릇이 애매해서 찍어내지는 못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이행해야 할까 고민이다. 어떤 작가님은 잊지 않는 것도 오랜 복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건 자신 있는데.
며칠이 지났다. 울렁울렁 심경에 파도가 치더니, 나를 사로잡던 그 이에 대한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방 청소를 하다가 나를 좋아해 주던 일들과 수많은 흔적들을 다시 봤기 때문이다. 미움은 꾸준히 증거를 수집한다. 그래서 부풀려진다. 이제 과장된 감정을 쑥 누르고 진짜를 찾아봐야겠다. 나는 너를 좋아해서 서운하고 밉기도 하다는 진짜 마음.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주문했다. 서점에서 다섯 페이지 읽자마자 압도당해버렸다. 그 역시 과거의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2018년 맨 부커상을 수상한 북아일랜드 작가 애니 번스의『밀크맨』. 미움이 소문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