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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an 30. 2020

소규모 성실 라이프

장래희망은 20대에 유효기간이 끝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50대를  만났고 그때에도 여전히 ‘장래희망’ 유효하다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사건이었다.  ‘노후대비’보다 ‘장래희망’이 희망적이니까 낙관적인 것도 같고. ‘엄마는 꿈이 뭐야?’라고 했을 때 ‘없어 그런 거, 너네가 잘되면 되지.’라고 했던 것도 의미 있지만 엄마도 아직 꿈을 가지길 바랬다.


새벽 택시를 자주 타던 때가 일이다. 평소엔 아니지만 새벽 택시에선 맘 편히 잠들기도 걱정 되고 해서 기사님들과 대화를 제법 나누었다. 멋진 60대 후반 기사님은 꿈꾸는 칠순 잔치가 있었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버스를 운전하시다 개인택시를 한지 얼마 안 되었다고 했다.


내 꿈은 매일 천원씩 더 버는 거예요. 매일 천 원이면 별것도 아닌 거 같지? 그런데 매일 천 원씩만 더 벌어도 나는 매일 목표를 이루고 즐거워지는 거지. 이 나이에 큰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나. 매일 즐거운 목표를 세우는 거지.  



기사님의 꿈은 그렇게 매일 천원씩 더 벌어서 그동안 택시에 태웠던 특별한 외국인 손님들과 친구들을 모두 초청하는 칠순잔치를 베푸는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보내 친구들을 초대해서 수십 명이 모이는 성대한 칠순을 맞이하고 싶다고 하셨다. 지금도 공항 손님을 주로 태우는데 그런 쪽으로 택시 기사님들이 딸 수 있는 언어 자격증이 있는 모양이다. 영어, 일본어를 땄고 이제 중국어를 준비 중이라고 하셨다. 아직도 매일 발전하고 싶어서, 어제보다 천 원 더 벌 듯 어제보다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목표를 정해 공부하고 계셨다.


매일을 즐겁게 완성할 이룰법한 꿈. 그것도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이야기였다. 이렇게 자주 콜럼버스의 달걀을 발견한다면 나는 대체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람인지 먼저 반성해야 한다. 기사님을 만났던 것이 4-5년 전인데 그 사이에 칠순을 맞으셨겠다. 부디 꿈을 이룬 후 또 다른 꿈을 꾸고 계시길.



20대에 친구들끼리 마흔에 이루고픈 꿈 10가지를 써보았다. 그중 한 가지만 기억난다. ‘내 이름으로 쓴 책 한 권 가지기’였는데 마흔이 너무 가깝다. 아직 못 이루었다고 하기 애매하고 이룰 수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친구가 항상 말하는 8회의 기적 혹은 9회 말 투아웃의 역전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인데. 불가능은 아니고.


그런 꿈을 꾸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꾸준히 쓴다. 감정의 배설 같은 일기라도 꾸준히 썼고 가게 준비로 짬이 안나는 요즘은 대충이라도 꼭 마감을 지킨다. 그게 꿈을 이뤄주는 담보는 아니다. 그래도 10년 전보다 택시기사님의 천원만큼은 잘 쓰게 되었다. 쓰면서 즐거웠으니까 꿈을 이루지 못해도 좋았다. 최소한 나 한 사람은 글쓰기 덕분에 힘을 내고 의지하며 살았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나를 지으실 때 나만 즐겁자고 작은 재능을 심어주셨을 리가 없지. 분명히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거야. 언젠가 이 작은 달란트도 쓰임 받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줄 때가 올 거야. 지난 10년 간 일기보다는 조금 더 정제된 글쓰기를 연습했으니까 오늘의 나는 그때보단 좋은 글쓰기를 하고 있겠지. 매일 조금씩 좋아지다 보면 아직 오지 않은 “때”가 임박할 거야. 0에서 1로 수렴하는 소규모 성실 라이프를 존중하는 나의 다음 10년을 향한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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