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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Sep 12. 2021

섬섬옥수

나의 동경은 손을 향한다. 가늘고 길고 서늘한 느낌마저 어려있는 여릿한 손. 내 손은 그와 정 반대에 있다. 심지어 어린 시절에는 그 손이 아토피까지 겪는 바람에 건조한 계절에는 나무 등껍질 만지는 것 같은 손을 부끄러워하면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벅벅 긁는 괴로움도 견뎌야 했다.


피가 맺힌 손에 바셀린을 바르면서 그게 아토피라는 것도 모르고 내손만 왜 이런지 속상해했다. 가끔 가족끼리 온천여행을 다녀오면 한동안 피부가 매끈해졌는데 그 생경한 느낌이 좋아서 자꾸 손을 만지작 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극심한 아토피도 이겨냈고 그저 환절기마다 오는 간지러움만 이겨내면 되는 정도로 살고 있다. 


20대에도 노트북 위에 손을 올리고 원고를 쓰는 선배들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내 손은 크고 투박해서 영 폼이 나질 않는데 손이 예쁘면 원고도 더 잘 써 보인다. 씁쓸한 일이다. 웬만한 친구들 손은 다 내 손안에 들어온다. 나보다 손 큰 여성은 만나 본 적이 없다. 손이 커서 위험요소와 접촉 면적이 넓기 때문인지 상처도 많이 달고 산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한 것처럼 손 큰 사람이 상처도 많은 것일까. 어젯밤에도 출처 모를 상처를 얻고 피가 맺힌 손등에 후시딘을 발라주었다. 앞 선 상처들이 순차적으로 짙은 색을 조금씩 잃어가는 와중에도 꾸준히 새로운 상처가 늘면서 안 그래도 투박한 손을 얼룩덜룩하게 만드는 바람에 내 손은 우아함이라곤 느끼기 힘든 상태다. 


아주 오래전에 여자는 손으로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런 말이!) 그 말을 고치자면 사람은 손으로 인생을 말한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과거에는 거칠게 고운 손과 거친 손으로 사람의 직업을 표현하는 방식도 있었는데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도닥거리는 사람도 사생활에서 목공 같은 걸 한다면 손이 거칠어질 수도 있으니까 꼭 손이 직업을 말한다는 하고 싶지 않다. (어쩐지 자기변명인 것 같기도 하다.)


손에 대한 오랜 열등감과 동경 때문에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종종 마디가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에 예쁜 실반지를 낀 정갈한 손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적극적으로 치솟는다. 건조한 계절이면 더 거친 느낌이 살아나는 내 손에는 실반지가 웬 말이야. 한동안 반지를 끼기도 했지만 스스로 봐도 참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가끔 손이 예쁜 연예인이라며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남녀 가리지 않고 하얗고 길쭉하고 매끈한 손맵시에 그 '손'의 팬이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연예인 하려면 손마저 예뻐야 하는구나.아니면 손이 예뻐서 연예인 하나?잘생겼다는 말 "handsome"에도 hand가 들어가고.


건조하면 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 사계절 내내 핸드크림을 정성껏 바르고 있지만 아무리 핸드크림을 발라도 고운 손은 틀려 먹었다. 심지어 내 주위에서 유일하게 나보다 손이 큰 여성인 엄마는 "너도 나이 먹어봐. 엄마처럼 커져."라는 악담도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었는데. 마음씨 좋은 친구들이 가끔 "너 정도면 보통 손이야."라고 해주는데 그 말도 큰 위로는 안 된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일부러 나를 위해 보통의 하향평준화를 서슴지 않는 우정만큼은 고맙다. 

 

하얗고 가늘고 길고 매끈한 손. 아무리 애써도 내손은 그렇게 될 수는 없다. 그런 게 참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 어쩌면 이미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꾸준히 존재보다 부재를 발견하는 것이 삶인 것인지. 더 빠르게 늙지 않게, 더 거칠고 투박해지지 않게 오늘도 꼼꼼히 핸드크림을 바르고 있다. 손이 더 거칠어지는 환절기니까 유분이 많은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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