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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May 14. 2022

정말 당근 때문일까?

유전의 힘에 지배당했다. 흰머리가 많은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유전이다. 마냥 뽑을 순 없고 염색을 자주 하거나 무시하거나 선택해야 한다. 큰 키 덕분에 내 정수리를 누구에게 보일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옆머리를 들추면, 아니 들추지 말자. 곧 미용실에 가야겠다. 마침 여름이라 머리를 좀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염색하러 갔을 때 옆쪽을 가리키며 “선생님 여기 흰머리가 너무 많아요.”라고 했더니 정수리를 가리키며 “여긴 더 많아요. 안 보여서 모르죠?”라고 TMI를 알려 주셨다. 안 물어봤잖아요, 선생님. 이영자 언니는 아직도 염색 없이 검은 머리를 유지한다는데, 역시 유전이 중요해.


올 초에 탈색을 해 보고 싶어서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더니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머릿결이 상하기 때문에 회복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더 우기지 못하고 네에... 하고 말았다. 머릿결이라도 남겨야지. 그리고 무엇보다 흰머리가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때문에 탈색을 한들 흰머리가 눈치 없이 느낌을 망칠 게 뻔하지.  


요즘 나는 너무 노랗다. 손바닥을 펼쳐보면 아주 노랗고 얼굴도 노랗다. 얼마 전 가게에 놀러 왔던 버섯머리도 너무 노란 거 아니냐고 했다. 엄마는 당근을 그만 먹으라고 했다. 몇 해 전에는 하루에 한두 개씩 당근을 먹었지만 요즘은 며칠에 하나만 먹는데, 엄마는 그것 때문에 노래진 게 아니냐고 했다. 정말 그 정도도 먹으면 안 된다고? 버섯머리는 그냥 당근을 며칠에 하나씩 먹는 사람도 드물긴 하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빵 색이 되어야 맞지 않나.


요즘 엄마는 하루 한 번씩 병원 가서 검사 좀 해보라는 말을 한다. 어젯밤에도 “내일은 꼭 병원 가서 검사해”라고 했다. 알았다고 했지만 이번 주는 그냥 넘길 생각이다. 정형외과에 가는 것으로 이번 주 병원 TO 끝이다. 간이나 쓸개가 안 좋으면 노래진다는데, 간이나 쓸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징후가 잘 나타나지 않는 장기라는 게 문제다. 곧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는 해야겠다. 선생님 제가 왜 이렇게 노란 거죠? 하고 물어야겠지. 설마 선생님도 당근을 탓하진 않겠지.


엄마는 오늘 아침 당근론에 이어 새로운 가설을 들고 왔다. 밥을 적게 먹고 반찬을 많이 먹기 때문에 짜게 먹는 게 문제 아니냐고 했다. 그런데 엄마 오늘 왜 마파두부 했어. 짜던데?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 다행이지만 거울을 가만히 보면 노랗긴 노랗다. 곧 병원엘 가야지. 그리고 물을 더 많이 먹어야겠다. 짜게 먹는 게 사실이라면 도움이 되겠지. 물론 지금도 우리 집에서 내가 물을 가장 많이 먹기는 하는데. 


이러다가 결국 영양제만 하나 더 늘리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병원에 갈 때마다 처방과 무관하게 영양제를 늘려가고 있다. 안과에 다녀온 후로 루테인 지아잔틴에 기넥신을 추가했고, 정형외과에 다니면서 MSM을 추가했다. 내과에 다녀와선 어떤 영양제를 추가하게 될까. 어쩌면 그 영양제들이 노랗게 된 원인 아닐까? 하지만 나는 겨우 네댓 알을 먹고 있을 뿐인 걸.

5월 내로 하양과 노랑을 정리해야겠다. 여름이 되면 검정이 추가될 텐데 노랑에 검정이라.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팔 체질 검사를 했을 때 처방전에 노란 선글라스를 피하라고 쓰여있었다. 샤머니즘이 아니라 처방전이었다. 노랑은 나와 사이가 안 좋은 걸까. 오늘은 하얀 그릭요거트를 좀 먹어야겠다. 며칠 전 친구들이 체중조절을 하려면 유제품마저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해서 그릭요거트도 남은 것만 먹고 당분간 안녕이다. 뭐 이렇게 안 되는 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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